영국인 대니얼 고든 감독의 두 번째 평양 다큐멘터리 영화 <어떤 나라>
“매스게임 체조선수 현순과 송년의 모습으로 북쪽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지금부터 25년 전 축구에 관해서라면 아마에서 프로까지 줄줄 꿰던 아홉살배기 소년 대니얼 고든은 비디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966년 영국월드컵 북한과 이탈리아의 8강전이었다. 북쪽의 승리로 경기가 끝났을 때 선수들의 백넘버가 그의 머릿속에 남았고, 박두익(당시 북쪽 선수)은 그의 영웅이 됐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뒤 스포츠 프로덕션 ‘스카이 스포츠’에서 일하던 청년은 ‘귀환’ 뒤 사라진 영웅의 오늘이 궁금했다. ‘은둔의 제국’이라 불리는 땅을 밟기는 쉽지 않았다. 다행히 베이징에서 북쪽 관광을 주선하는 고향 사람 니컬러스 보너를 만나, 오랜 기다림 끝에 2001년 4월 ‘방북’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4년 뒤, 대니얼 고든 감독은 북한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두편의 국내 정식 개봉(26일)을 앞두고 서울을 찾았다. 평양은 13차례나 방문했지만 서울은 두 번째다. 그에겐 ‘색깔’이 다른 남쪽이라 해서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북쪽에서 만든 영화를 남쪽에서 상영하는 감회가 남다를 뿐이었다. “처음 평양을 방문했을 때 각종 선전탑과 동상 등 낯선 장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다음에 방문했을 땐 사람들만 보였다. 대형 선전탑도 익숙해지니까 별 게 아니었다. 서울과 평양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영국 월드컵과 첫 작품 <천리마 축구단> 최근 민족대축전을 통해 남과 북이 멀리 있지 않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심지어 8·15 북쪽 대표단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통일이 아닌가’ ‘통일은 됐어!’라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10년 전 “북쪽을 사실 그대로 알리려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기성세대의 고정화된 ‘북한관’이 가장 큰 문제”라던 한 탈북자의 지적이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다. 남쪽의 북한관이 바뀌는데 서로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면 그가 찍어온 북쪽의 일상만큼 효과적인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북쪽의 일상을 그대로 담아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데 맞춤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첫 번째 북쪽 다큐멘터리 영화 <천리마 축구단>(2002)의 화면은 익숙하다. 이미 공중파를 통해 눈에 익은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가 유년기의 추억을 현재화하는 <천리마…>는 북쪽 선수단이 월드컵에서 보여준 놀라운 저력을 시종일관 추적한다. 거기에서 북쪽의 오늘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견줘 <어떤 나라>(2004)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던 북쪽의 삶을 눈으로 확인하게 한다. 놀랍게도 그는 ‘집단체조’(매스게임)를 통해서 북쪽의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북쪽의 집단체조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산물로 집단 의식을 고취해 지배 이데올로기의 토대를 구축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면서 스펙터클이 있었으면 했다. 어디에서도 매스게임만 한 스펙터클을 발견할 수 없었다. 매스게임은 일종의 메타포(은유)다. 철저히 집단에 복속하는 매스게임에서 혼자 튀면 대열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집단을 움직이는 한 몸 같은 사람들. 집단에 있으면서 드러나지 않는 개인을 보여주고 싶었다.” <천리마…>가 조선중앙텔레비전으로 10여 차례나 방영되면서 그의 다음 작업은 북쪽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북쪽의 한 영화사가 양각도호텔에 머물던 제작팀(감독·촬영·음악 등 3명)의 도우미로 촬영지를 섭외하고 일정을 조절하는 것을 지원했다. 그의 팀에 대한 당국의 간섭은 일체 없었다고 한다.
집단의식과 땡볕훈련을 이해하는 방법
애당초 <어떤 나라>는 청소년 3명을 주인공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그는 매스게임을 하는 체조선수 2명(여학생)과 카드섹션 참가자 1명(남학생)의 섭외를 요청했다. 북쪽의 미래를 짊어진 아이들의 마음 상태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 만난 게 박현순(13·평양 모란봉 1중학교 4년)이었다. 운전사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조부모와 함께 사는 현순은 이미 세번이나 ‘장군님’ 앞에서 매스게임 공연을 펼친 탁월한 예술체조 선수였다. “외동딸인 현순을 만날 때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후배 김송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위로 언니가 둘이나 있는 것을 몹시 부러워했다. 송연 역시 현순의 체조 실력을 배우고 싶어했다.”
이렇게 해서 서로 보완 관계에 있는 현순과 송연으로 체조선수를 확정했다. 문제는 카드섹션 참가자였는데, 매스게임을 펼칠 전승기념일 행사가 실내 체육관으로 결정됐다. 대규모 카드섹션이 불필요해졌기에 남학생은 따로 섭외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어떤 나라>는 2003년 2월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장군님 모시고 행사하는 그날을 그리며 아픈 것도 참고 훈련한다”는 현순이와 “체조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겠다고 장군님 초상화 모시고 결의를 다진다”는 송연이의 체조연습장과 학교·가정 등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상을 네 차례(한번에 보통 2~4주 체류) 방북을 통해 추적한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가 ‘북쪽의 마음’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현순과 송연의 입에서 속사포처럼 터져나오는 “장군님…”을 바깥 사람이 머리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가 두 작품을 끝낸 뒤 얻은 결론은 “모든 것을 북쪽의 시스템 속에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혹독한 훈련 과정조차 집단의식 강화 과정으로 여기는 북쪽의 분위기를 이해하고, 땡볕 아래 훈련을 하면서도 나름대로 성취감을 느끼며 기뻐하는 매스게임 참가자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때론 훈련에 매진해야 한다는 매스게임 담당자들과 공부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교육 담당자들의 논쟁도 심심찮게 봤다.
영화 <어떤 나라>의 원제는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State of Mind)다. 이를 해석하는 것은 저마다 다르다. 북쪽에서는 ‘마음의 나라’로 표기했고, 프랑스에서는 ‘평양의 작은 소녀들’이라고 했다. 그가 처음 전하려고 했던 의미는 ‘나라의 마음’(Nation's Mind)과 ‘개인의 마음 상태’ 두 가지였다. 영화를 통해 북쪽 사회를 지탱해주는 이데올로기와 정신을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라의 마음이란 게 개인에게서 멀리 떨어진 게 아니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무장한 개인의 마음이 모여서 나라의 마음이 되기도 했다. 나라의 마음이 개인의 상태임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짐작하는 '북쪽의 아이'는 실재를 닮았을까. 영화엔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하고 학교 조회에 지각하는 ‘낯익은 아이’가 있고, 장군님을 생각하며 고난도 묘기를 훈련하고 밤잠을 설치는 ‘낯선 아이’가 얽혀 있다. 송연의 아빠가 찾아간 평양에서 30마일 떨어진 원하리 마을에선 ‘또 다른 북쪽 아이들’을 만날 수도 있다. 어학연습실까지 갖춘 학교에서 ‘외국어는 생존을 위한 무기’라며 영어 지문을 줄줄 외우는 풍경은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100시간 분량의 촬영 필름을 93분으로 압축하다 놓친 장면도 있다. 대표적인 게 현순의 할머니가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세번 째는 60년대 월북한 주한미군 얘기"
앞으로 대니얼 고든 감독의 북쪽 이야기는 한 차례 더 이어질 예정이다. 1960년대 비무장지대를 넘어 북쪽으로 간 주한미군 4명의 이야기를 다룬 ‘크로스 더 라인’(Cross The Line)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처음이라 이방인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던 <천리마…>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여파로 3개월 동안이나 국경을 열지 않았던 <어떤 나라>보다 수월하게 일이 진행될 게 틀림없다. 그땐 매스게임 그림을 뒷면에 새긴 그의 요즘 명함이 무엇으로 바뀌게 될까. “남과 북은 다른 것보다 같은 게 많다.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풀어나가면서 서로의 마음을 읽게 되길 기대한다.”
“매스게임 체조선수 현순과 송년의 모습으로 북쪽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지금부터 25년 전 축구에 관해서라면 아마에서 프로까지 줄줄 꿰던 아홉살배기 소년 대니얼 고든은 비디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966년 영국월드컵 북한과 이탈리아의 8강전이었다. 북쪽의 승리로 경기가 끝났을 때 선수들의 백넘버가 그의 머릿속에 남았고, 박두익(당시 북쪽 선수)은 그의 영웅이 됐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뒤 스포츠 프로덕션 ‘스카이 스포츠’에서 일하던 청년은 ‘귀환’ 뒤 사라진 영웅의 오늘이 궁금했다. ‘은둔의 제국’이라 불리는 땅을 밟기는 쉽지 않았다. 다행히 베이징에서 북쪽 관광을 주선하는 고향 사람 니컬러스 보너를 만나, 오랜 기다림 끝에 2001년 4월 ‘방북’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4년 뒤, 대니얼 고든 감독은 북한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두편의 국내 정식 개봉(26일)을 앞두고 서울을 찾았다. 평양은 13차례나 방문했지만 서울은 두 번째다. 그에겐 ‘색깔’이 다른 남쪽이라 해서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북쪽에서 만든 영화를 남쪽에서 상영하는 감회가 남다를 뿐이었다. “처음 평양을 방문했을 때 각종 선전탑과 동상 등 낯선 장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다음에 방문했을 땐 사람들만 보였다. 대형 선전탑도 익숙해지니까 별 게 아니었다. 서울과 평양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영국 월드컵과 첫 작품 <천리마 축구단> 최근 민족대축전을 통해 남과 북이 멀리 있지 않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심지어 8·15 북쪽 대표단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통일이 아닌가’ ‘통일은 됐어!’라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10년 전 “북쪽을 사실 그대로 알리려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기성세대의 고정화된 ‘북한관’이 가장 큰 문제”라던 한 탈북자의 지적이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다. 남쪽의 북한관이 바뀌는데 서로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면 그가 찍어온 북쪽의 일상만큼 효과적인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북쪽의 일상을 그대로 담아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데 맞춤하기 때문이다.

(사진/ 윤운식 기자)

대니얼 고든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북쪽의 일상을 보여주며 마음을 느끼게 한다. <어떤 나라>에 등장하는 집단체조 모습과 <천리마…>의 주인공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