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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민주화돼서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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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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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도청 사건을 통해 본 시민들과 기득권세력의 팽팽한 ‘힘겨루기’
민주화의 과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범개혁세력이 지혜를 모으자

▣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결코 거룩하지 않았던 고요한 밤, 누군가 엿듣고 있었다. 이름하여 ‘미림팀’.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국가안전기획부가 다시 국가정보원으로 바뀌어도 미림이란 이름은 변하지 않았다. 처음 미림이란 이름은 1960년대의 ‘요정 정치’에서 나왔다. 미림이란 특정한 요정의 이름이 아니라 술자리의 시중을 드는 많은 미녀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한다고 해서 ‘미녀들의 숲’이란 뜻으로 부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동백림 사건이 시초가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그 이후에도 무림사건, 학림사건, 부림사건 등 공안사건에 유달리 ‘림’자 돌림이 많았다.) 미림이란 이름이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도록 유지됐다는 사실은 엿듣는 습관이 변함없었다는 뜻이지만, 엿듣는 장치는 진화(?)를 거듭해왔다. 처음에는 미녀들이 인간 도청기로 쓰였다면, 장비가 발달하면서부터는 고성능 도청기가 미녀들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미림 팀장의 자술서를 보면 때로 도청기를 설치한 사실이 발각되는 경우도 있었다지만, 도청을 당한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경찰이나 언론에 도청당한 사실을 밝히지 않았던 것 같다.


공안검사가 도청사건 조사를 한다고?

미림팀의 도청 사실이 처음 알려진 때에는 정치권과 경제계와 언론 사이의 더러운 유착이 세인의 관심을 끌더니만, 어느 사이엔가 테이프의 내용은 사라지고, 도청만이 남게 되었다. 꼭 1992년의 ‘초원복집 도청 사건’을 보는 기분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전 법무부 장관 김기춘은 부산 지역의 지검장, 경찰청장, 안기부 지부장 등 힘있는 기관장들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기관장들은 너나 없이 김영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부산, 경남 사람들은 “영도다리에서 칵 빠져 죽어버리자”느니 “우리가 남이가?”라는 등의 말을 하면서 철저한 지역감정에 기초하여 공권력을 이용해 대통령선거에 개입하려는 모의를 한 것이다. 그 현장이 당시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쪽에 의해 도청된 것이다. 대화 내용이 공개되자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고, 모두들 이 사건이 김영삼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 내다보았다. 그러나 역시 김영삼이었다. 사오정을 능가하는 뱃심으로 그는 자신이 최대의 피해자라며, 불법 도청 문제를 치고 나왔고, 수구언론들도 다 이를 따라갔다. 고위 공무원,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에 기초해 불법 선거를 모의한 사건은 사라지고 도청만이 남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실제 선거에서도 부산·경남 지역에서 오히려 김영삼 지지표가 위기의식을 느껴 결집하는 바람에 김영삼은 큰 이익을 보았다.

‘초원 복집 도청 사건’은 오히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계기가 됐다. 1992년 당시 초원복집에서 진행된 현장검증. (사진/ 보도사진연감 93)

지금도 일이 돌아가는 상황은 비슷해 보인다. 뇌물로 볼 수밖에 없는 불법 선거자금 수수와 정·경·언의 더러운 유착은 사라지고 도청의 불법성만 남은 모습이다. 국정원이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과거 불법 도청의 실상을 밝히고 사과했음에도 불똥은 이상한 방향으로 튀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불법 도청을 근절시킨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권 대통령’ 시절에도 도청이 자행됐다는 점만 부각되는 것이다.

현상만 보면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과 삼성의 이학수 부회장 사이의 대화를 담은 테이프의 내용은 불법 도청에 묻혀버린 것처럼 보인다. 기득권 세력이 또다시 초원복집식의 역전승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초원복집보다, 이번의 삼성-중앙 도청보다 더 심한 사건들도 덮어버릴 수 있는 것이 독재정치였다면, 몇명이 덮고 싶어도 덮으려야 덮을 수 없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다. 불법 도청은 불법 도청대로 철저히 근절해야 하지만, 초원복집 사건 때처럼 도청이 피운 안개 속으로 불법 선거라는 더 큰 악이 숨어버리는 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끈질기게 불법 선거와 정·경·언의 더러운 유착에 대해 파헤쳐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도청을 중단하지 않았던 것은 심히 유감스럽고 잘못된 일이며,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는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미림팀의 도청 테이프가 삼성과 <중앙일보> 사이의 더러운 관계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언론사의 ‘역겨운’ 행태에 대한 생생한 증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수구 언론은 도청 자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도청이 국민들에게 준 충격이 꼭 수구언론의 여론 조작 때문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불법 도청이 자행되던 시절에 안기부에 파견나간 공안검사 출신이 한나라당의 도청사건 진상조사단장을 맡는 현실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조사하려는 ‘퐝당한 시추에이션’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국민들이 김대중 시절의 도청에 더 충격을 받는 이유는 겨 묻은 개가 아니라 사람이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쇼, 쇼, 쇼’도 민주화의 부산물

이 점은 김영삼·김대중 양김 정권에 이어 노무현 정권에서도 예외 없이 발생한 부패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도청이 행해진 범위가 군사독재 시절이나 문민정권 시절과 비교되지 않음에도 김대중 정권에 더 타격이 간 것처럼, 부패도 마찬가지였다. 김영삼 정권 시절에 발생한 민주계 인사들의 부정부패 사건에 대해 수구언론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은 민주화운동 세력도 별수 없구나 하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김대중 시절이나 현 정권하에서 적발된 부정부패 사건에 대해서는 민주화 세력이 오히려 더 심하구나 하고 짜증을 냈다. 이런 분위기에 부패의 액수나 수법을 들이밀며 억울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어차피 민주화운동을 주요한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세력이나 개인에게는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법 도청은 철저히 근절해야 하지만,불법 선거라는 더 큰 악이 숨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미림팀 팀장 공운영씨의 사무실 컴퓨터를 조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 (사진/ 한겨레 이종찬 기자)

흔히 6월항쟁 이후 지금까지를 ‘87년 체제’라 부르지만, 이 87년 체제 안에서도 끊임없이 민주화돼갔다. 지금 한국이 누리는 절차상의 민주주의는 서방의 선진 제국이 부럽지 않을 수준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우리의 정신을 빼놓는 이 모든 ‘쇼, 쇼, 쇼’가 그간의 민주화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에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퇴직 직원이 어디 감히 도청 테이프나 녹취록을 들고 나와 정보부를 상대로 협상을 할 꿈이나 꾸었겠는가? 고향 땅에서 쟁기질하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 원내 최다선이던 정일형 의원이 국회에서 쫓겨나야 하던 유신 시절에 어찌 대통령 탄핵을 꿈꿀 수 있었겠는가? 정부를 비판했다고 언론사주가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고 결국은 신문사를 빼앗겨야 했던 저 ‘겨울 공화국’이었다면, 어찌 지금처럼 대통령에 대한 비판 정도가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언사를 퍼붓고도 무사한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겠는가? ‘권력의 시녀’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문다”라는 말을 창피한 줄 모르고 기자들에게 해대던 검찰이 법적인 근거도 없는 평검사회의를 들먹이며 대통령에게 대드는 것도 다 민주화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 판결을 한 판사들이 줄줄이 법복을 벗는 것을 본 뒤 공안사건의 경우 공소장의 오자까지 베껴쓰는 참담함을 묵묵히 견뎌낸 엘리트 법관들은 이제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되어 사법 전성시대의 최고의 권력과 영광을 누리고 있다. 독재자에게 밉보이면 국제그룹처럼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되기도 했던 재벌들은 이제 더 이상 정치자금을 강탈해가지 않는 민주화된 세상에서 신자유주의와 금권숭배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아직도 전두환이거나 육사 ○○기의 군인 아저씨였을지 모르니 세상 참 많이 좋아졌나 보다.

죽 쒀서 개 줄 것인가

그러나 권영길 의원식으로 물어보자. “시민 여러분, 민주화되어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87년 체제의 한계는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민주화돼 좋은 점을 시민들이나 과거의 민주화운동 세력이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점인지도 모른다. 죽은 박정희와 색깔론에만 집착하면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수구세력도 짜증나지만,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진보도 일반 시민들을 끌어안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직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철저하지 못하다고? 현 정권의 초기를 보면, 민변 출신의 대통령에 민변 출신의 국정원장에 민변 출신의 법무장관이 있었지만, 국가보안법은 그 질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민주화 운동 출신의 대통령에 총리에 장관에 청와대 비서관에 국회의원이 즐비하건만, 되는 일은 없다. 탄핵 직후의 4·15 총선을 거치면서 기득권 세력이 의회를 더 이상 장악할 수 없게 됨으로써, 한국 사회는 선출되는 권력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사법부를 비롯한 선출되지 않는 국가권력이나 재벌, 언론, 학원, 교회 등 세습되는 봉건적 기득권 세력은 비록 정권은 놓쳤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의연히 유지하면서 선출된 권력과 아니, 기득권 세력 대신 새로운 권력을 창출한 시민들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재벌이 가진 만큼만 누리게 하는 것이 개혁일 것이다. 3월9일 ‘투명사회협약’ 체결식에 참석한 재계 인사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팽팽한 힘겨루기! 동북아 정세는 요동을 치는데, 87년 체제가 그 틀 안에서 성장하며 만들어낸 이상한 힘의 관계는 한마디로 빼도 박도 못하는 나쁜 균형을 이룬 것이다. 이 와중에 도청 테이프가 공개된 것이다. 때마침 생방송에서 터져버린 아랫도리 노출사건은 스스로 벗어던진 것이라면, 이건 기득권층이 가장 폼잡고 싶은 순간에 ‘아이스케키’를 당한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밝혀진 내용은 단순히 망신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한개가 터져도 이 야단인데, 테이프가 274개라니….

지금 국회의원 명단을 보면 과거에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즐비하다. 그 당시에 ‘20년쯤 지나 내가 국회의원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운동에 투신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감옥 가기 싫었지만, 저들이 잡아넣으면 할 수 없이 가는 거지 하면서 또 주어진 상황을 피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그랬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절대 다수는 좋은 세상이 오리라고 믿으며 운동을 했지만, 내가 꼭 어떤 자리에 오르리라고 기대하면서 운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시절에 꿈꾸던 좋은 세상은 오지 않았는데, 그때 차마 꿈꾸지 못했던 무언가가 돼버린 사람은 너무나 많지 않은가? 그때 같이 싸우던 사람들과 함께 꾸던 꿈은 어디로 간 것일까? 20대의 꿈을 그대로 실현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 되기 위한 발판으로 운동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 차지하게 된 자리의 힘을 동원해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위한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해버린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국회의 권력은 최상이다. 그리고 여당은 이 국회에서 과반을 얻고 출범했고, 지금도 큰 차이로 제1당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여당은 정당정치를 철저히 무시하고 초계급적 지도자로 군림하기를 원했던 이승만 집권 초기의 원내 자유당 이래 최약체의 여당이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푸념일랑은 하지도 말라. 혁명이 개혁보다 쉬우면 혁명을 하지 왜 개혁을 하겠는가? 혁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들 아프게 그 꿈을 접고 개혁을 택한 것이 아닌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민주화의 과실은 재벌이, 수구언론이, 신자유주의의 전도사가 된 관료들이, 야당이 된 구세력의 국회의원들이 다 누리는데, 죽 쒀서 개 주고 배 곯면서 억울하지 않은가?

재벌의 것을 다 빼앗아 민중에게 나눠주자던 과격한 주장이 혁명이라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재벌이 가진 만큼만 누리게 하는 것이 개혁일 것이다. 실제 지분율은 3∼4%에 불과한 재벌 일가가 일반 서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놀음을 통해 그룹 전체를 장악하고 이를 세습하는 구조를 깨고, 그들의 소유권은 존중해주되 그들이 가진 만큼만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드는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 헌법에 상당한 수준으로 반영돼 있는 경제 민주주주의의 정신은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다. 1인1표제가 정치적 민주주의라면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경제’ 민주주의는 1인1표가 아니라 1원1표로 돈을 가진 자가 지배하는 민주주의가 돼가나 보다. 그러나 제발 가진 만큼만 지배하라.

시스템 개혁을 해야 할 때

시스템의 개혁, 정말 중요하다. 상상하기 싫지만, 혹시 기득권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더라도 함부로 돌이킬 수 없게 시스템을 바로잡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현 헌법하에서 현 정권이 남은 임기 안에 그 작업을 완수할 수 있을까? DJP 연합이라는 너무나 큰 한계를 갖고 출범했던 김대중 정권의 최대 업적은 물론 6·15 공동선언이지만, 다음가는 업적은 정권 재창출일 것이다. 수십년의 군사독재가 남긴 유산의 개혁, 이는 단판 승부가 아닌 장거리 릴레이 경주다. 이제 노무현 정권도 반환점에 다다랐다. 지리멸렬 흩어졌던 범개혁세력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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