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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늙어서 말썽을 일으킬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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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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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로 복수 3부작 완결한 박찬욱 감독 인터뷰
‘마지막 한방’을 벼르고 있는 모범생 감독의 기이한 영화는 계속된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금자씨에게 설교를 시켰던 이유는?


(사진/ 윤운식 기자)

사실 <친절한 금자씨>의 시사회 이후에 흥행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잖아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박찬욱의 브랜드 파워가 예상보다 훨씬 세다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이영애씨의 파워겠죠. 내가 공이 있다면, 폭력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과 만났을 때 이영애는 어떨까. 그런 궁금증을 유발한 정도죠.

이번에 <친절한 금자씨>가 경쟁부문에 초청된 베니스 영화제에서 가장 탔으면 하는 상도 여우주연상인가요?

네. 희망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우리나라 관객은 이영애씨의 기존 이미지를 거스르기도, 활용하기도 하는 재미로 <친절한 금자씨>를 보잖아요. 그런데 베니스 심사위원들은 일단 그것을 빼고 봐야 하니까….

박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이 젊은이들에게는 스타일리시한 소비가 된 것 같아요.

그런 면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겠죠.

즐기면서 소비한다기보다는 꼭 봐야 하는 영화가 된 것 아닌가요?

그런가요? 이창동 감독 영화라면 모를까…. 제 영화는 워낙 극단적인데다….

박 감독의 영화가 지적이지만, 지적으로 설명하려 든다는 비판도 있어요. 특히 <친절한 금자씨>가.

설명은 모르겠고, 설교는 좀 해야죠. 다른 영화는 안 그랬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복수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니까. 전 영화나 문학에서 설교를 듣는 것을 늘 싫어하지는 않았어요. 예술작품에서 쓸모 있는 교훈을 한마디 얻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19세기에는 그런 것을 즐겨했는데. 이제는 그런 태도를 쿨하지 않다고 생각하죠.

쿠엔틴 타란티노와 자주 비교되는데,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타란티노의 폭력은 즐겁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한다면, 나는 고통스러운 것을 추구하니까 반대라고 할 수 있어요. 항상 폭력 그 자체를 미화하지는 않으려고 했어요. 오히려 폭력을 당하는 사람의 고통, 심지어 가해자가 받는 충격까지 생각하면서 폭력신을 만들어왔어요.

뜻밖에 박찬욱의 복수는 가족의 살해에서 비롯돼요.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 보이>에서 복수의 동기는 ‘내’ 딸, ‘내’ 누나의 죽음에서 시작되구요. 가족을 가장 나중 지닌 것으로 생각하세요? 가족주의 혐의가 엿보여요.

가족주의랄 것까지야…. 혈육은 글자 그대로 혈육이기도 하지만, 비유이기도 해요. 누구나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한 비유요. 하지만 금자씨의 동기는 달라요. 금자씨는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으니까 처형하겠다”고 말해요. 앞의 두편에서 한 단계 나아가려고 했던 포부가 표현된 부분이죠. 자기의 혈육이 희생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에도 사죄받으려는 민감한 죄의식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죠.

<복수는 나의 것>에서 송강호가 자기 딸의 주검을 부검할 때 처참하게 울먹이지만, 신하균의 누나가 부검을 할 때는 하품을 하는 장면이 대비돼요. 복수심 속의 이기심에 대한 이야기죠. 그렇다면 금자씨의 민감한 죄의식은 피해자에 대한 연대의식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나요?

연대의식이라고 하면 쑥스럽죠. 다만 나와 내 혈육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났다고 할 수는 있죠.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 추구하는 ‘금자교’

박찬욱 복수 3부작 <복수는 나의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위부터) 복수의 발생학, 복수의 연쇄고리, 속죄와 구원의 주제를 담고 있다.

<친절한 금자씨>의 주제가 결국은 기독교적 회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어요.

<친절한 금자씨>가 종교적이라고 해도 꼭 기독교는 아니에요. 말하자면 구원이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추구하는 ‘금자교’죠. 죄의식, 속죄, 구원 같은 개념이 서구에서 이식된 것이라고 말하는데, 지식인들의 생각인 것 같아요. 속죄 의식은 이미 우리 것이 됐죠. 죄의식을 벗어나 깨끗한 상태로 가고 싶어하는 욕망은 어느 문화권에나 있는 것 아니에요?

복수 시리즈의 소재는 사적 복수잖아요. 박찬욱이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지. 아니면 논란거리 아니겠습니까?

맞아요. 영화가 일종의 비유라고 말할 때, 사적 복수를 다룬다고 이런 행위가 용서돼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이런 욕망을 사람들은 가지고 있고, 그런 욕망을 마냥 부인만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거죠. 사적 복수심이란 모든 금지된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복수는 나의 것>은 계급 같은 사회 코드가 강해요.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갈수록 주제가 사적인 차원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어요.

사적이기보다는 근본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친절한 금자씨>는 도덕에 대한 이야기인데, 도덕은 사회를 빼놓고는 성립하기 힘든 것이잖아요. 그래서 사회와 멀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복수는 나의 것>은 흥행에 실패했고, <올드 보이>는 흥행에 성공했어요. 두 영화는 스타일의 차이가 있어요. <복수는 나의 것>의 칙칙한 작업복과 뒷골목의 사무실보다는 <올드 보이>의 새끈한 양복과 멋진 펜트하우스가 대중에게는 매력적이었을 거예요. 그 스타일이 흥행요소가 되지 않았을까요?

물론 그런 면도 있겠죠. 하지만 관객이 더 좋아한 것은 <올드 보이>가 치열한 대결구도로 짜였고, 정점을 향해 몰아가는 리듬감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심지어 금자씨는 “예쁜 게 좋아. 무조건 예쁜 게 좋아”라고 스타일을 찬미하기도 해요.

그 대사가 이렇게 큰 오해를 낳을 줄은 몰랐어요. 단지 인물의 심정일 뿐이고, 제 의도가 실린 말은 아니에요.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가 그렇게 예쁜 것을 추구하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올드 보이>에 비해 세트촬영 분량도 오히려 적어요. 오직 스타일만 추구할 경우, 스타일리시하다는 말을 비판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텐데, 제 영화가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내가 바랬던 인생 이게 아닌데…"

박 감독은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의 영화에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기독교의 흔적들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대학교 공대 학장을 지냈고, 큰아버지는 대한변협 회장을 역임했다. 한마디로 지식인 집안 출신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전시회도 자주 다녔다고 한다. 그의 배경이 그의 예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의 성공이 그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물었다.

성당에는 언제까지 다녔나요?

박찬욱 감독은 필요하다면 사회참여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2년 여중생 추모집회에서 삭발을 한 박찬욱 감독.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고등학교 1학년 때. 신부님이 저를 신학교 보내라고 해서 안 갔어요. 제가 왜 독신으로 살아요. (웃음)

혹시 가족 사이에서 고립감을 느낀 적은 없었나요?

없어요. 내가 영화를 못 만들고 힘들게 지내던 시절에, 가족 모임에 가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기는 했죠.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어요.

성장배경도 그렇고, 결핍이나 상처를 찾기 힘들어요. 그런데 왜 저 사람 영화는 저렇게 폭력적이야, 이런 의문이 들어요.

나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폭력을 탐구하는 예술가나 사상가들이 항상 엄청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사람들은 뭔가가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해요.

모르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어떤 학대를 받았는지도. (웃음) 그냥 어릴 때부터 문화적 취향에 관해서는 늘 독특한 것을 좋아했어요.

과학은 황우석, 스포츠는 박주영, 문화는 박찬욱, 이런 연상이 떠올라요. 게다가 사회참여에 르네상스인의 풍모까지 갖췄잖아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역할모델, 진정한 모범생이라는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만드는 영화의 내용을 생각해볼 때, 참으로 이상한 일이죠. 근친상간 뭐 이런 영화나 만드는 사람이 어찌하여 이렇게 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죠.

그래서 불편하세요?

제가 덕을 보는 부분이 크죠. 광고에 출연해서 돈도 벌었고. 영화를 조금은 대담하게 기획해도 투자가 되고, 스타를 캐스팅할 수 있고. 물론 불편한 일도 있지만 감수해야죠. 아내와 가끔 집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해요.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내가 바라던 인생은 이게 아닌데. 훨씬 더 조용하게 살면서 영화만 한편한편 찍는 삶을 바랐는데. 돈도 생활할 수 있는 정도면 되고, 상도 필요 없고. 그것이 내가 꿈꾸던 인생인데. 지금은 어딜 가나 알아보는 사람이 많고…. 어디서부터 이게 꼬인 걸까, 그런 이야기를 하죠. 제가 바라는 것은 언제나 본전을 약간 넘는 흥행이거든요. 그런데 세상 일이 원하는 만큼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어떤 때는 넘치고 어떤 때는 모자라고….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성공이 오래가지는 못할 거라는 거죠. 이건 예상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웃음)

그 사실은 어떤 사실에 근거하나요?

나보다 더 성공한 어떤 감독이 그랬으니까요. 그런 과정을 거쳐 몰락했으니까.

언젠가 봉준호 감독이 흥행 감독의 지위을 잃을 날이 머지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제빵 기술을 배워두려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생계 대책은 생각해두셨어요?

저는 다른 기술은 없어서 돈을 모아두려고 하죠. (웃음) 먹고살 만큼.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마지막 한방을 위해서 모아두는 거죠. 아무도 돈을 안 대줄 때, 내 돈으로라도 최후의 한편은 만들 수 있도록.

최후의 한편은 뭘로 만들지 생각해두셨나요?

아직은 정하지 못했어요. 다만 아주 저예산일 수밖에 없을 테고, 저예산에 걸맞게 아주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영화가 됐으면 해요. 지금은 아니지만, 늙은 다음에는 아주 논쟁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늙어서 현명한 척하는 예술가보다는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음은 망상증 소녀, 다다음은 흡혈귀…

지금은 하고 싶은 영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요?

데뷔 시절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다른 영화를 한다고 얘기했어요. 요즘은 달라졌어요. 지금 누가 나에게 관객이 0명이 들어도 좋으니까 마음껏 만들어보라고 100억원을 준다고 해도 특별히 지금과 다른 영화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아요. 이미 내가 마음대로 찍고 있기 때문은 아니에요. 상업영화 감독으로 오래 살다 보니 상업영화에 필요한 조건이 내면화돼버린 거죠. 예전에는 아방가르드 영화, 울트라 하드고어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박찬욱 감독은 차기작으로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라는 고화질(HD)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정신병원에서 만난 망상증 소녀와 자신이 발명한 기계로 타인의 영혼을 훔칠 수 있다고 믿는 청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을 계획이다. 그 다음 작품으로는 흡혈귀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 모범생 감독의 기이한 영화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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