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소녀들은 왜 공포영화를 찾는가

569
등록 : 2005-07-21 00:00 수정 :

크게 작게

<분홍신> <여고괴담4: 목소리>에 환호하는 여고생들의 호러홀릭
“꺅~" 소리로 억눌린 일상 풀면서 귀신에게 슬픔까지 투사한다

▣ 박수진 인턴기자 lenne21@freechal.com

“꺄~악.”
7월8일 명동 CGV, 비명과 함께 옆자리의 팝콘이 내 자리로 쏟아졌다. ‘분홍신’을 신고 관능적 눈빛으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배우 김혜수가 뒤돌아보는 순간, 뭐가 나타났나 확인할 겨를도 없이 옆자리 교복 소녀들의 팝콘이 내게로 쏟아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최윤정(장원중3)양은 “엄마랑 딸이랑 싸우는데 정말 살 떨렸다”며 몸을 떨었다. 이날 영화관은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마다 여고생들의 비명으로 가득했다.

‘공포영화= 10대소녀’ 이미 정설


10대 소녀들이 여름을 맞아 속속 개봉하는 공포영화 스크린 앞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날 극장 앞에서 만난 28명의 여중고생 중 4명을 제외하고 모두 <분홍신> 티켓을 샀다. CGV 스태프로 일하는 김한규씨는 “요즘 시험 끝난 여고생들이 <분홍신>을 눈에 띄게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올해 처음 개봉한 한국 공포영화인 <분홍신>은 유난히 여고생에게 인기가 많았다. 영화사 청년필름은 <분홍신>을 관람한 100만명의 관객 중 70%가 10대라고 밝혔다. 소녀들의 공포영화 선호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여론조사 업체인 ‘데이브 컴퍼니’에 따르면, 6월 넷쨋주에 개봉한 영화 중 10대 여성들의 <분홍신> 선호도는 34.1%로 가장 높았다. 나이대별로 비교해도 10대의 <분홍신> 선호도는 20대 여성에 비해 높고(20대 초반 여성 16%, 20대 후반 여성 8.1%) 10대 남성(28.6%)에 비해서도 높았다. 7월 셋쨋주에 개봉하는 <여고괴담4: 목소리>의 경우 10대 소녀들의 최우선 선호도는 51.2%에 달해 같은 주에 개봉하는 다른 영화보다 훨씬 높았다(오차범위는 95% 신뢰도 기준에 ±3.6). .

영화계에서 공포영화의 주타깃층이 10대 소녀들인 것이 정설이다. 1987년부터 94년까지 약 10년간 맥이 끊긴 한국 공포영화는 98년 교복 입은 귀신과 함께 부활했다. 그 첫 테이프를 끊은 <여고괴담>은 전국 18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흥행순위 2위를 차지했다. 그 뒤에도 여고생 귀신의 행렬은 이어졌다.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2002년 <폰>, 2003년 <장화, 홍련> <여고괴담3: 여우계단>이 소녀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은 이런 ‘소녀 귀신’들이 나오거나 ‘소녀적 감수성’을 건드린 공포영화들은 대체로 성공했지만 미국에서처럼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슬래셔 무비는 망했다. 2000년에 <가위> <해변으로 가다> <찍히면 죽는다> <하피> 등 무려 네편이 ‘10대 살인영화’의 관습에 따라 제작됐지만 흥행에 참패했다. 흥행 참패로 이런 유형의 한국 공포영화는 맥이 끊어졌다. 반면 ‘소녀적 감수성’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들이 <분홍신> <여고괴담4: 목소리>를 통해 2005년까지 지속되고 있다. 영화 <장화, 홍련>의 마케팅을 담당했던 박혜경 마술피리 마케팅 실장은 “처음에는 다양한 관객층을 의식한 마케팅을 했지만 티저 포스터가 나간 뒤 소녀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영화 상영 중반부터는 철저하게 10대 위주로 전략을 다시 짰다. 아마 다시 호러영화를 한다면 처음부터 10대를 타깃으로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여중고생 ‘언니’들은 왜 공포영화를 소비하는 것일까. 이들이 ‘공포’라는 장르를 통해 바라보는 자신들은 어떤 모습일까. “우린 학교에서 욕도 마음대로 못해요. 남자애들은 공부 잘해도 욕만 잘하는데 여자애들이 욕하면 이상하게 생각해요. 조신하게 살아야죠. 뭐.” 대일외고 1학년 유아무개양은 말도 마음대로 못하는 학교에서 억눌린 마음을 공포영화로 푼다. 그렇다. 공포영화는 소녀들의 억눌린 일상이 “꺅~” 소리와 함께 풀어헤쳐지는 공간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공포영화는 그 시대에서 가장 억압된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고 말한다.

1등, 예쁜아이…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는 98년 <여고괴담>을 공포로 만들게 된 계기로 장르적 속성을 꼽았다. “당시에 10대들의 학교폭력과 입시지옥 등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로 내용이 치달을 경우 심의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죠. 결국 ‘공포’영화가 이런 내용들을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포영화의 ‘표현의 자유’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공포영화는 우리가 실제로 생각하지 않는 것에 대한 영화인 판타지 장르에 속한다. 그리하여 공포영화는 무의식의 세계를 검열 없이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억압된 것이 귀환’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는 “문명 유지의 필수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과잉 억압의 경우, 공포영화에서 그 경계성을 문제시하는 괴물이 출현한다”고 말했다. 사회가 피하고 싶어하고, 억압하고 싶어하는 존재들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공포영화고, 한국에서는 학교가 그러한 공간의 대표격인 것이다. 오 대표는 “여고생은 여성이면서 학생”이라며 “그들은 제도나 관습으로부터 소외당하기 쉽고 그만큼 원한도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공포영화에 소녀들이 많이 등장하고, 또 소녀들이 이를 많이 보는 이유일 것이다.

영화평론가 남다은씨는 소녀들이 한국 공포영화를 많이 보는 이유를 ‘소녀’와 ‘귀신’의 모호한 정체성에서 찾는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소녀’와, 사람도 아니면서 한 때문에 저승으로 가지 못한 채 경계에 놓여 있는 ‘귀신’은 통하는 것이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소녀들은 귀신에게 공포뿐 아니라 슬픔까지 투사한다. 공포영화라면 웬만하면 다 보는 김수지(성심중2)양은 “<여고괴담>은 무섭지만 참 슬프다”고 말한다. 저마다 사연이 있는 귀신들에 그녀들은 감정이입하며 영화에 몰두하고 ‘귀신’들을 퇴치 대상이 아닌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최근 한국 공포 영화는 대부분 '소녀적 감소성'에 호소하고 있다. 왼쪽부터 영화 <분홍신>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여고괴담 4: 목소리>.

소녀와 귀신은 감정의 코드에서도 유사성을 보인다. 한림대 의대 정신과의 이병욱(55) 교수는 흔히 말하는 ‘시기심’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부러움(envy)은 나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 나보다 예쁜 친구를 부러워하며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입니다. 질투(jealousy)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내 것을 남들이 가지려 할 때 생기는 미움과 같은 감정이죠. 살인 욕구, 강한 적개심이 개입되는 치명적 감정은 질투가 아니라 부러움입니다.” 부러움은 훨씬 원초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적개심도 더 강하다는 것이다. 20대 여성이 주인공인 드라마에서는 삼각관계가 빠지지 않으면서 항상 질투를 매개로 한 감정싸움이 이야기의 주축을 이룬다. 하지만 여고생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에서 가장 많이 드러나는 심리는 ‘질투’가 아닌 ‘부러움’이다.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인 <여우계단>편에서는 친한 친구에 밀려 늘 2등인 ‘진성’이가 결국 ‘소희’ 대신 1등이 되고 싶어한다. 뚱보 ‘혜주’역시 예쁜 ‘소희’를 동경의 대상으로 여기고 여우계단을 올라 자신의 소원을 말한다. 항상 친구들과 경쟁해야만 하는 여고생들에게 단연 ‘질투’보다는 ‘부러움’이 일상생활에 좀더 가까이 존재하는 감정이다. 이런 감정들로 몇날 며칠을 뒤척이며 고민하다 친구랑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소녀들. 이런 감정과 욕망이 ‘공포’라는 코드로 재현된 영화를 보기 위해 그들은 기꺼이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이런 ‘소녀 귀신’ 이야기들을 대략 ‘뼈대 공포영화’와 ‘속살 공포영화’로 분류한다. 전자는 <여고괴담1>과 <폰>처럼 학교와 가정이라는 뼈대, 즉 제도의 폭력성과 허구성을 폭로한 것이고, 후자는 <여고괴담2>와 <장화, 홍련>처럼 ‘소녀 섹슈얼리티’의 금기와 긴장을 건드린 영화를 말한다. 이런 영화들은 학교에서 가정으로 공포의 공간을 확장하고 감정의 영역도 ‘원망’ ‘한’에서 ‘부러움’ ‘탐욕’ ‘정체성의 고민’ 등으로 확장하고 있다.

소외된 10대, 귀신과 함께 슬퍼하는가

한국 공포영화에서 ‘소녀’의 영역은 아주 조금씩 확장돼왔지만 한국의 문화 시장은 여전히 그들을 ‘틈새시장’으로만 여기는 듯하다. 소녀 대상 공포영화를 기획한 이들에게 “왜 10대들을 대상으로 공포영화를 기획했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그들이 많이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부분이다. 10대 소녀가 공포영화 흥행을 주도하지만, 그들이 공포영화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한 치밀한 마케팅적 분석은 미흡한 것이다. 심지어 소녀들의 공포영화 선호는 대중문화 분석에서도 밀려나 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시청률 30%대일 때부터 각종 매체는 20대 중반, 30대 초반 ‘삼순이’들의 심리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호기심의 대상’ ‘제약과 규제의 대상’인 10대 소녀들의 심리와 이야기들에는 귀기울이거나 담론화하지 않는다. 덕분에 다른 창구가 없는 한국의 소녀들은 공포영화에서 무한반복 재생산돼온 ‘소녀 귀신’들에 감정이입하며 ‘잠깐’ 무서워하고 ‘오래’ 슬퍼하는 것은 아닐까.


울부짖는 동성애 코드

가부장제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소녀들의 연대

▣ 남다은/ 영화평론가

영화 <장화, 홍련>

최근 한국 공포영화들 속에서 소녀들의 존재는 남성 판타지가 걸러낸 기존의 전형적 이미지에서 벗어난다. 사춘기 소년들의 통과의례를 위해 그들의 언어 안에서 정의되던 따분하고 비현실적인 소녀들은 자신의 욕망과 상실감에 귀기울이기 시작한다. 소녀들은 더 이상 소년들을 위한 한순간의 마스터베이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남근 중심적 언어로는 자신들의 삶과 관계를 도무지 표현할 수 없음을 알아버린 이 똑똑한 소녀들은, 그 똑똑함 때문에 광기와 우울에 사로잡히고 귀신이 되거나 귀신을 보지 않고서는 자신을 언어화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이제 소녀들은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공포의 주체가 되어 오랜 시간 서사의 중심이었던 남성 인물 없이도 촘촘한 이야기의 그물을 엮는다.

남성 주체와 여성 대상 사이의 일방향적 서사가 있던 자리에는 가부장제의 엄격한 금기 속에서 뒤틀려 죽음이 되어, 혹은 더 이상 현실계의 모습이 아닌 채로 돌아온 소녀들의 욕망의 이야기가 존재하게 된다. 이 소녀들의 욕망에는 남성이라는 매개체가 없다. 오직 귀신이 된 소녀와 귀신을 보는 소녀들 사이의 긴밀한 유대만이 존재한다. 이것은 이성애 중심적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불안정하고 비정상적이다. 그러므로 <여고괴담> 시리즈나 <장화, 홍련>을 비롯한 일련의 공포영화들 속에 숨겨진 동성애적 의미들은 이성애 중심적 사회의 호기심을 자극할 기이함 혹은 장르적 특성이 아니다. 기존의 영화 속 이성애 담론이 성 본능 자체에만 몰두할 때, 공포영화들 속 동성애 담론은 곧 소통과 관계에 대한 절박한 문제의식으로 연결된다. 그녀들은 모두 학교와 집이라는 가부장제의 상징화된 폐쇄적 공간 안에 갇혀 그 공간의 규범 속에서 자신들의 언어를 잃고 관습화된 관계에 고통받는다. 남성 중심적 질서의 금기에 억눌려버린 그녀들의 언어는 죽지도, 애도되지도 못한 채 상처 난 몸이 되어 현실로 돌아온다. 온몸을 언어로 만들어 귀신의 모습으로 귀환한 소녀들과 그 귀신의 모습을 온몸으로 아파하고 함께 피 흘리며 받아들이는 살아 있는 소녀들은 가부장제 내에서의 소통의 불가능성을 이처럼 ‘함께’ 몸으로 체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들 속 동성애는 사회적 승인 욕구가 아닌 관계에 대한 욕망이며 여성 언어, 여성 서사에 대한 욕망이다. 또한 그것은 현실의 비극적 징후가 된다.

현실의 소녀는 아이와 어른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무정형성을 유지하는 존재이다. 이 소녀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모호한 존재, 귀신과 대면하거나 귀신이 되는 것, 그리고 그녀들에게서 사회의 규범적 언어를 거부하는 동성애적 관계가 보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정의를 거부하는 것들의 정의될 수 없는 만남. 여기에 소녀들의 필연적인 운명과 공포와 슬픔이 있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