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돌연변이로 노화 지연해 수명 연장… 게놈의학의 불치병 퇴치 연구 활발
인간이 노화를 억제하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밀의 문에 다가서고 있다. 한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통해 수명이 두배가량 늘어난다면, 불로초를 찾다가 50살에 숨진 중국 진시황이 무덤 속에서 통탄할 일이다.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고자 했던 연금술사들의 수고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최근 미국 코네티켓 대학병원의 스티븐 헬판드 박사를 비롯한 연구팀은 ‘인디’(indy: I’m not dead yet)라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초파리가 장기 기능이나 생식능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수명이 크게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디 유전자는 ‘소디움’(sodium)이라는 단백질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소디움 단백질은 특히 포유동물의 소화기관, 간, 콩팥, 뇌 등 여러 기관의 세포막에서 대사물질을 운반하는 구실을 한다. 만일 인디 유전자의 활성을 없애면 초파리가 정상적인 식사를 해도 대사활동이 더디게 이뤄져 마치 다어어트를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적게 먹으면서 에너지 대사활동을 낮춰 장수에 이르는 것이다. 저칼로리 식사는 DNA 활동을 통제하는 유전자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효모의 수명을 연장하기도 한다.
초파리 수명을 2배 늘린 인디 유전자
연구자들의 실험실에 있는 초파리들은 70일 동안 생존했다. 이에 비해 실험실 밖의 간장, 술이나 썩은 과실 주위에 있는 초파리들의 수명은 평균 37일 정도이다. 만일 이런 수명 연장의 비법을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150살의 노인을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비법을 인간에게 곧바로 적용하기는 힘들다. 1990년대 중반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대학 헤카이미연구실에 있는 선충류들은 일반적인 선충류보다 4.5배나 많은 50일 동안 생존했다. 이를 인간에게 적용하면 무려 300살이 넘을 수명이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드물다. 실험실의 선충류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거의 먹지도 않으면서 배지가 깔린 접시 위에서 생존했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냉동인간을 만드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문제는 얼마나 건강하게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가이다.
생명현상에 관한 가장 오래된 수수께끼는 노화의 원인과 예방에 관한 것이었다. 태어나서 정해진 기간 동안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노화의 규칙. 그 불변의 규칙에 균열이 생긴 것은 노화의 원인이 밝혀지면서부터이다. 노화 연구의 새로운 시대의 서막은 해부학자 레오나르드 헤이플릭이 열었다. 그는 1961년 세포분열 횟수가 제한된 까닭에 노화에 이른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노화에 관한 세포 내 대사가 생물체의 종과 속의 차이에 관계없이 동일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초파리와 선충류의 사례가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노화 연구자들은 인간이 성장해가면서 짧아지는 염색체 끝부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하나의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염색체 끝 ‘말단소립’(telomere)의 길이가 짧아져 결국에는 분열을 중지해 죽음에 이른다고 여기는 탓이다. 만일 퓨즈(fuse)를 마모시키는 화학적 발화를 통제할 수 있다면 인간은 노화를 멈출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현재 시판되는 텔로머라아제는 텔로미어의 길이를 적절히 유지해 세포분화를 계속하도록 하는 효소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텔로머라아제라는 효소가 텔로미어의 길이를 마치 수도꼭지를 여닫듯 마음대로 조절하는 노화 조절 알약으로 개발되지는 않았다.
인간 생명의 비밀을 밝히려는 다른 과학자들은 음식물을 소화할 때 나타나는 세포의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연료를 소모할 때 생성한 폐기물이 세포를 어떻게 오염시키는지를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음식물 섭취에서 비롯되는 노폐물이 세포를 오염시키는 과정이 노화와 연결되는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파괴 작용을 유도할 수 있는 탓이다. 인체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 내 발전소에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음식을 산화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유 라디컬’(free radical)이라는 아주 위험한 분자를 만들어내 생명현상을 파괴한다.
분자 세계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자유 라디컬은 전자 하나를 더 갖고 있는 산소성 분자로 미토콘드리아에 상처를 입혀 에너지 활성 기능을 잃어버리게 한다. 종양, 주름이나 관절염 등 노화의 일반적인 증상들은 바로 자유 라디컬이 분자세계의 파괴자 구실을 톡톡히 한 결과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운동이나 식욕 억제제, 비타민E 등으로 건강한 미토콘드리아 수를 보충하면 노화가 지연될 것이라 기대하기도 한다. 어쨌든 적은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은 노폐물이 세포를 오염시키는 걸 막아내는 유력한 방법이기에 노화연구자들은 소식을 권한다.
이런 연구는 생명현상에 관한 총체적 이해를 통한 유전학적 성과에 따라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인간 유전자 지도를 손에 쥔 상태에서 사람의 노화를 유도하는 유전자의 염색체 위치를 밝혀내 인위적으로 수명을 연장하길 기대하는 것이다. 유전자 염기 서열 규명 이후 모든 동물의 생계시계를 조절하는 ‘시계 유전자’(clock genes)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현재 수명에 관련된 몇몇 유전자가 발견되었다. 태어날 땐 정상인이었다가 20대 무렵에 노화가 진행되어 심장병 동맥경화 등으로 시달리다 40대에 사망에 이르는 ‘워너 증후군’의 원인 유전자 등이 밝혀져 정상인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규명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유전자들이 직접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는 논란이 많다. 사람의 경우 단지 몇개의 유전자가 노화 과정을 조절한다고 해도 최소한 수천개의 유전자가 생명현상을 보조할 수 있는 탓이다. 척추동물이나 포유동물에게 노화 과정을 조절하는 유전자가 있다 해도 총제적인 기작을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성별과 환경이 유전자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수명 연장 유전자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다. 하지만 생명체 자체를 암호화하는 유전자를 재조합하는 상황에 이른다면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계 유전자의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유전자보다 훨씬 복잡한 분자물인 단백질이 생명연장의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단백질은 세포의 일부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구성단위이며, 다른 단백질은 세포와 인체가 알맞게 작동하도록 유지하도록 돕는 분자기계 장치인 효소와 호르몬, 항체 등으로 쓰인다. 그중에서도 ‘프로티움’(proteome)이라 불리는 인체 단백질을 이해하게 되면 과학자들은 다양한 질병을 퇴치할 수 있다. 예컨대 덴마크 프로티움 분석센터에서 분리한 갈렉틴이란 단백질은 췌장에 존재하는 인슐린 생성세포가 사멸되어서 유발되는 당뇨병을 퇴치할 가능성이 높다.
유전자와 단백질을 좀더 깊이 이해한다면 효과적인 암치료제도 개발할 수 있다. 만일 전립선암 세포에서 고도로 발현되지만 다른 세포조직에서 발현되지 않는 유전자가 발견되면 해당 유전자의 발현을 차단하는 방법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혈액 시험을 통해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양의 특정 약물 반응 효소가 존재하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의사들이 특정 사람의 유전자 구성에 따라 약물 투여량을 조절하거나 그 사람에게 맞는 주문 설계 의약품을 처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게놈의학의 처방은 생물학적 시계를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늦추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노화에 관한 풍부한 이해와 함께 적용된다면 불치병 정복을 통해 인류에 더 오랜 삶을 선물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인체 단백질 연구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생체시계를 인위적으로 늦출 수 있을 것인가. 대부분의 노화연구자들은 시기가 문제일 뿐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유전자를 직접 다루는 차원에서 노화를 피하진 못하더라도 그 유전자가 영향을 끼치는 몸의 부위를 다루는 차원에서 수명을 연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북이나 상어 등 물고기에서 보듯 노화는 동물세계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은 아니다. 언젠가 그런 동물처럼처럼 뼈가 부서지지 않고 피부가 처지지 않으며 감각이 살아 있고 면역과 기억력이 감소하지 않을 날이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불로장생은 인류의 오랜 꿈인 동시에 생의 두려움이기도 하다. 죽음이 없는 경우에는 삶에 대한 의지도 없기에 민간 전승이나 문학은 불사를 비극적으로 다루었다.
김수병 기자soob@hani.co.kr


사진/인간에게 불로장생의 꿈을 심어주고 있는 초파리. 특정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수명을 늘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