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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콘돔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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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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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그 남자에게 내 친구가 ‘꽂힌’ 결정적인 순간은 여관에 들어갈 때였다. 남자는 종업원에게 정중하게 “콘돔 있나요?”라고 물었다. 다음날 친구는 양볼 가득 홍조를 띠고 “그 예쁜 입으로 의젓하게 콘돔을 달라고 하다니. 크크크”를 연발하며, “잠자리에서는 뭐니뭐니 해도 책임감 있는 남자가 최고”라고 침을 튀겼다. 바로 전날까지 그 남자가 구사할 줄 아는 단어는 스무개도 안 된다, 손만 잡고 자도 애가 생기는 줄 아나 보다며 투덜대던(표현은 다양하나 “왜 같이 자자고 안 하는지 모르겠다”는 용건이었음) 친구는 안면을 싹 바꿔 한때는 ‘서툰 남자’였던 그 ‘의젖하고 책임감 있는 남자’와 잘 지내고 있다.

피임은 수많은 남녀에게 절체절명의 과제다. 오늘도 무수한 잠자리에서 피임을 둘러싼 쟁투가 벌어진다. 오르가슴이나 발기력보다 100만배쯤은 더 중요한 ‘현실’이다. 가장 효과적이고 간편하며 안전한 피임법으로 꼽히는 콘돔 실천율을 보자. 남녀 차이가 도드라진다. 우리나라 30대 남성의 31.3%만이 콘돔을 쓴다(‘2003년 한국 남성들의 성생활보고서’). 25∼34살 여성의 52.5%가 콘돔 사용을 요구하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의 34.8%는 그 이유가 “파트너가 콘돔 사용을 싫어해서”라고 답했다(지금은 폐간된 <허스토리> 2004년 7월호). 놀라운 것은 앞서 30대 남성의 21.4%가 ‘질외사정’을 무식하고 당당하게 피임법이라고 꼽았다는 사실이다. 사정 전 흥분 상태에서도 수백만 마리의 정자가 나올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하루 1억번의 성교가 이루어지는 지구에서 이만큼 지구와 인간에 도움 되는 물건은 없다”(존 라이언,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는 극찬을 듣는 콘돔은 ‘쉬었다 가는’ 웬만한 곳에는 비치돼 있다. 가까운 지하철역이나 편의점을 이용해도 된다. 할인점에서 싸게 사 머리맡에 두거나 지갑에 넣어다니기도 좋다. 그런데 왜, 왜, 왜!

콘돔 사용을 꺼리는 이들은 ‘번거롭다’ ‘성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댄다. 심지어 ‘불량률이 높다’는 사실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메이드 인 코리아’ 콘돔의 3대 제조사(유니더스, 동국물산, 한국 라텍스) 개발팀이 들으면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이다. 콘돔 불량을 논하기 전에 사용법과 타이밍이 선량했는지를 먼저 따져볼 일이다.

품질 좋은 ‘보통 콘돔’을 놔두고 해바라기니 낙타 눈깔이니 기기묘묘한 돌기들이 부착된 ‘기능성 콘돔’에 열 올리는 이들은 특히 명심해야 한다. 그러면 좋을 것 같다는 남자는 봤어도 그래서 좋았다는 여자는 단 한명도 보지 못했다. 꼭 수영 못하는 애들이 ‘빤스’ 탓 한다. 개중 ‘이기적인’ 남자들은 돌기가 난 부분을 뒤집어 자기쪽에 오게 해서 쓰는데, 까불다 사고 친다. 삽입 전에 끼라고 있는 콘돔을 사정 직전에 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서두르다 말려 올라갈 수도, 손톱으로 흠집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발빠른 정자들이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는지 모른다. 혹시 부모 몰래 이 꼭지를 읽는 청소년들아. 이건 성인용이다. 그래도 굳이 보겠다면 다 까먹어도 “내 콘돔 내가 챙기자”만큼은 기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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