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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안어벙] 그 연극 ‘어벙’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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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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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쟁이 출신을 부끄럽게 한 대학로 진출 일년차 배우 안상태의 끼
첫 장면부터 낄낄대며 웃다가 또 보고 싶은 마음을 품다

▣ 오지혜/ 영화배우

난 도무지 요즘 TV에서 보여지는 개그들을 이해하질 못했다. 어디서 웃어야 하는 건지 알아차릴 수 없었고 세살 아래 신랑이 난 하나도 웃기지 않은 장면을 보고 키득거리면 세대차이(?)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심지어는 다섯살 먹은 딸내미가 구사하는 유행어를 못 알아듣는 일이 종종 생기기 시작했다. 신랑은 내가 ‘꼰대’가 돼가고 있는 증거라고 놀려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개그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깜박 홈쇼핑’이었다. 특히 안어벙의 개그는 웃기는 건 둘째치고 페이소스가 있는 캐릭터를 너무도 잘 살리는데다 연극적인 발성과 연기가 보여서 ‘오홋! 저 친구 좀 보라지!’ 했드랬다.

초라한 무대에 겁이 덜컥 났지만…


(사진/ 박승화 기자)

한국방송 커피숍엔 안어벙의 막내아들쯤 돼보이는 앳된 청년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는 내가 최근에 출연한 영화 <안녕, 형아>에 특별 출연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매니저에게 섭외 전화를 했을 때 나를 ‘설명’하는 차원에서 그 얘길 했거늘 정작 그에겐 그 사실이 전달되지 않았나 보다. ‘시사’주간지에서 인터뷰를 하러 온다니깐 생뚱맞다 싶은 얼굴을 하고 있던 그는 날 보더니 어디서 뵌 분 같은데요… 하는 거다. 아… 무안해라. 그래도 어디서 본 거 같다고 해주는 게 어딘가. 땀 삐질….

그가 개그맨이 되기 전엔 오랜 시간을 길거리 개그공연을 하며 ‘길거리 생활’을 했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거리로 나섰던 이유는 자신의 성격을 뜯어고쳐보고 싶어서였다. 부모님과 얘길 해도 조금만 대화가 길어질라치면 귀까지 벌개질 정도로 숫기가 없고 심하게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대학 초년생 때 그를 잘 모르는 친구가 MT 때 그에게 사회를 덜컥 맡겼고 눈 딱 감고 한번 해보자 했던 게 ‘먹힌’다. 그 이후로 개그는 그에게 꿈이요 사는 이유가 된다.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깜짝 놀란 것이 ‘계기’가 된 거다. 친구들에게 웃긴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인터넷 유머란을 뒤지다가 전유성씨가 코미디를 하고 싶어하는 청춘들에게 무료로 코미디를 가르쳐준다는 소문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된 것이 좀더 구체적인 계기가 됐다고 한다. 첫 스승이 전유성이었다니 참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맘 맞는 친구 셋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공연을 해댔다. 잠은 고시원에서 자고 추운 겨울에도 길에서 아이디어를 짜고 길에서 연습하고 길에서 공연을 했다. 달리는 전철에 뛰어들어 기습개그(?)로 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혹은 즐겁게) 하고 백화점, 편의점 등 안 들어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미친 듯이 사람들을 웃기려고 애를 썼다. 자신이 뭔가를 해서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란다. 그저 그 맛에 한달에 30만원 벌어보는 게 소원이던 상황을 견뎌낸 거리의 세 청춘들은 나란히 한국방송 공채 개그맨 시험을 보고 기적처럼 셋 다 합격한다. 그야말로 ‘열심히 하니까 되더라’의 신화가 아닐 수 없다. 그의 고향인 충남 아산시 인주면 밀두리 주민은 마을 입구에 ‘안상태군의 KBS 19기 개그맨 합격을 축하합니다. 밀두리 주민 일동’이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그리고 그는 잠깐의 단역을 거쳐 안어벙을 만난다. 꿈에 그리던 개그맨이 된 것도 얼떨떨한데 개그맨이 된 지 일년도 안 되서 완전히 ‘떠’버린 것이다.

그런 그가 다시 대학로를 찾았다. 배부른 치기라는 소리도 있고 다시 돌아올 자리가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TV에 나오는 것만이 성공한 딴따라의 상징이라고 오해하는 데서 오는 기우였다. 그가 다시 돌아온 대학로는 예전의 그 춥고 험한 길거리가 아니라 어엿한 지붕이 있고 정식 관객이 있는 극장이었다. 그것도 ‘안어벙’이 아닌 안상태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말하자면 모든 코미디언들이 품은 꿈의 공연을 하는 극장을 말이다. 바쁜 그의 스케줄 덕에 쫓기듯 인터뷰를 한데다 ‘딴따라’ 인터뷰 사상 처음으로 매니저가 한 테이블에 앉아서 마치 감시당하듯 치른 인터뷰라 절대적으로 내용이 부족하기도 했거니와 그의 ‘날카로운 턱선’에 빠져 있던 차에 인터뷰를 치르는 동안 그의 인간성에마저 빠져버린 난 홀리듯 그의 공연장을 찾았다.

“더 ‘센’ 연극인들, 저희 포용해줘요"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안상태씨는 필자 오지혜씨(오른쪽)가 출연한 영화 <안녕, 형아>에 특별 출연한 적이 있다. (사진/ 박승화 기자)

막상 공연장 입구에 도착하니 내가 보려 하는 공연이 연극인들이 그렇게 무시하고 텃세를 부리는 개그맨의 공연이라는 생각에 표를 들고 있는 손이 민망해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동료 연극인들의 공연을 자주 찾지 못해놓고 개그 공연 ‘따위나’ 보러 다닌다고 소문이 나면 어쩌나 하는 한심한 걱정이 덜컥 들었다. 게다가 동료들 공연은 대부분 음료수 한 박스로 때우고 들어가면서 이런 ‘개그맨 공연’을 거금 2만원이나 주고 보다니…. 배신자가 된 거 같기도 하고 좀 쪽팔리기까지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극장을 안내하고 표를 파는 속칭 '삐끼‘들을 이렇게 가깝게 마주한 것도 처음이라 내심 어색해하던 차였다.

괜히 인터뷰를 한다고 했나 하는 소심한 걱정을 하며 극장에 들어섰다. 연극쟁이 눈엔 한심할 정도로 열악한 극장 시설과 초라한 무대를 보고 겁이 덜컥 났다. 게다가 너무 작은 소극장이라 ‘안 온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TV 개그 프로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이 없는 내가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을 오로지 개그만 하는 걸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한 시간 반 공연을 하루 4회(토요일은 5회)를 한다는 스케줄을 보고 너무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짜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난 첫 장면부터 낄낄대며 즐기기 시작했다. 첫 장면은 안상태가 나오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제 겨우 스물여덟이라는 안상태가 최고 고참인 듯 보이는 이 개그쇼엔 애오라지 개그에만 인생을 올인한 듯한 열댓명의 젊은 청춘들이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관객을 웃기고 있었다. TV에서 하는 ‘허무개그’ 같은 걸 이해 못하는 나 같은 아줌마들을 위한 배려인지 공연에서 보여진 그들의 개그쇼는 논리적이었고 상황설정도 유니크했으며, 구성도 참신하고 끼들이 넘쳐흘렀다.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안상태의 힙합과 랩 실력 또한 제대로 된 ‘쇼’를 즐기게 하기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쑥스러울 정도로 흥분된 맘으로 극장을 나서다가 그제야 인터뷰 때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대학로 연극인들의 텃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내 질문에 “세상엔 여러 가지가 있다. ‘배제’하지 말고 다양성을 인정해줬음 좋겠다. 연극인들이 우리들보다 모든 면에서 더 ‘센’ 분들 아니냐, 포용해줬음 좋겠다”라고 대답했드랬다. 이런 제기랄, 이제 겨우 일년차인 개그맨 안상태보다 ‘예술’을 십수년 했다는 배우 오지혜의 그릇은 온갖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해 턱없이 작았다. 이왕 이렇게 고백하는 거 대학로 동료들에게 욕먹을 각오하고 한마디 더 하자면, 안상태 쇼… .솔직히 말하면 너무 재밌어서 또 보고 싶을 지경이다. 가만… 연극을 보고 나서 또 보고 싶어했던 게 몇번이나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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