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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흥행은 오래오래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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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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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인 인기 열풍 일으키는 비틀스 베스트 음반 <1>… 기획 상품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퀴즈 하나. 세계 음반사 역사상 가장 바보 같은 실수는 뭘까?

정답은 바로 영국 굴지의 레이블 데카가 저질렀던 실수다. 1961년 영국 리버풀의 클럽에서 활동하던 네명의 더벅머리 젊은이들은 당시 잘나가던 음반사 데카에서 오디션을 치른다. 당시 데카 레코드 담당자는 이들의 연주를 들어보고는 단 한마디로 이들을 거절했다. “기타 밴드는 별볼일 없어.”

음반 역사상 가장 큰 실수는?


데카의 오디션에서 떨어진 네 젊은이들은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얼마 뒤 영국을 대표하는 음반사 EMI 산하의 한 레이블과 계약을 맺는다. 이들은 원래 이름 앞에 붙던 ‘실버’라는 단어를 떼고 뒷부분만을 이름으로 정하고 대망의 데뷔 음반을 낸다. 이들이 바로 비틀스였다. 그 이후 비틀스가 거둔 성공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데카의 실수는 팝 음악사상 최악의 오판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고, EMI는 비틀스라는 똘똘한 효자 덕에 40년 동안 음반을 팔며 앉아서 떼돈을 벌고 있다.

70년 해체된 비틀스가 꼭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전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1월13일 전세계 동시 발매한 음반 <1>이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음반판매순위마다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비틀스가 발표한 노래 가운데 영국과 미국 인기순위 1위에 올랐던 노래 27곡만을 모은 이 음반은 발매 두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새 음반 <1>의 인기는 놀라울 정도다. <1>은 발매 뒤 다섯주 동안 전세계에서 무려 1800만장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12월 한달 동안 1초마다 6장씩의 음반이 팔린 셈이다. 미국에서만 지금까지 600만장 이상이 팔렸고, 전세계 35개국 음반판매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 미국 최고의 인기그룹 백스트리트보이스의 새 음반에 잠시 음반판매순위 1위를 빼앗겼던 <1>은 지난해 12월23일 다시 빌보드 차트 정상을 되찾는 위력을 발휘했다. “죽은 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도망가게 한” 것처럼 60년대의 스타 비틀스가 2000년대 인기스타들을 누르고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 음반 발매와 함께 개장한 공식 비틀스 홈페이지(www.thebeatles.com)에는 달포 남짓 동안 2500만명 이상이 방문했다.

국내에서도 비틀스의 새 음반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11월13일 발매된 첫날 3만장이 팔렸고, 지금도 매일 5천장 이상 팔리고 있다. 지금까지 총 판매량은 23만장 이상으로 추정된다. 23만장이란 판매고는 비틀스가 해체하고도 한참 뒤에야 태어난 10대와 20대가 반응하지 않고서는 나오기 힘든 수치다. 이런 열기 덕분에 새 음반 <1>은 발매 1주일 만에 지금까지 발매된 비틀스 음반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됐다. 외국 직배음반사들이 들어오면서 EMI코리아가 설립된 92년 이후 집계를 보면 그동안 가장 많이 팔렸던 비틀스 음반은 이른바 ‘화이트 음반’으로 불리는 <더 비틀스>로 모두 5만여장 팔린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번에 <1>이 단숨에 몇배나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중요한 점은 판매곡선이 꺾이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어 열기가 계속될 전망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10대도 열광

그렇다면 왜 지금, 그리고 이 비틀스 베스트 음반이 이처럼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 인기는 지난 2000년 한해 동안 계속 이어진 비틀스 붐의 연장선에서 비틀스 열풍의 절정에 해당된다. 숨진 존 레넌을 뺀 나머지 비틀스 멤버 3명은 지난해 처음으로 자신들이 스스로 밝힌 비틀스 이야기 <비틀스 선집>을 냈다. 이 책은 나오기도 전에 선주문만 150만부가 예약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또한 지난해는 존 레넌의 사망 20주년이어서 다양한 추모행사가 벌어져 세계적으로 비틀스에 대한 관심이 어느 해보다도 높았던 한해였다. 쿠바의 카스트로가 존 레넌 20주기 추모식에 참가해 “존 레논을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고 이야기한 것도 세계적 화제가 됐고, 일본에 존 레넌 기념관이 세워지는 등 2000년 내내 비틀스는 세계 매스컴의 주요 화제로 떠올랐다. 새 밀레니엄과 세기말을 맞아 각 언론에서 발표하는 다양한 기획에서 이들이 다시 조명된 것도 한몫을 했다.

음반 <1>은 동시에 또다른 재미난 반응도 촉발하고 있다. 대중적으로는 비틀스에 대해 잘 모르는 요즘 젊은 층에 가장 적합한 알짜 비틀스 음반으로 꼽히지만 전문가들과 일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비틀스 최악의 음반’이란 혹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평판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최근 음악전문잡지 <오이뮤직>이 국내 주요 음악평론가와 전문기자들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은 2000년 최고의 음반과 최악의 음반 순위 모두 5위에 올랐다. 무엇보다도 이번 음반이 너무나 상업적이란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1>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사실 이번 음반이 비틀스의 너무나 뻔한 레퍼토리를 이용한 또 하나의 베스트 음반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동안 나온 비틀스의 ‘베스트’ 음반은 이른바 ‘빨강 음반’과 ‘파랑 음반’으로 불리는 각 두장짜리 음반에 88년 발매된 <패스트 마스터즈> 두장, 그리고 각 2장짜리 3가지인 <앤솔로지> 시리즈까지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런데도 굳이 다시 베스트 음반을 낸 것은 오로지 음반사 EMI가 돈벌이 목적으로 비틀스를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부 열성팬들도 “비틀스를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는 음반사의 기획상품에 불과하다”고 이 음반에 대해 못마땅해하고 있다. “비틀스의 완벽한 디스코그라피에 억지로 끼워넣은 싸구려 음반”, “미발표곡 하나 없는 기존 노래들을 모아놓은 것일 뿐”이라는 비난의 글들이 인터넷에 심심찮게 올라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일부 마니아들이 이번 음반에 대해 부정적인 것도 모두 ‘비틀스’이기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 이전까지 싱글 음반으로만 발매되던 팝시장에서 꽉 짜인 완성도 높은 ‘음반’ 자체의 가치를 처음으로 인식시킨 그룹이 비틀스이기 때문이고, 또한 다른 가수들이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모차르트에 비견될 예술가로 평가받는 비틀스이기 때문에 이런 논란이 나오는 것도 분명하다.

음반 판매량 최고기록 깰까

이제 관심은 과연 <1>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등극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단일 음반은 미국 그룹 이글스의 <그레이티스트 히츠>와 마이클 잭슨의 <드릴러>다. 두 앨범은 모두 2700여만장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음반업계에서는 <1>이 지금 추세라면 단기간의 폭발적 반응보다도 꾸준한 인기로 이 두 음반을 따라잡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퀴즈 하나 더. 지금까지 비틀스의 음반은 전세계에서 과연 몇장이나 팔렸을까?

정답은 ‘알 수 없다’다. 비틀스가 활동한 지 10년이 채 못 된 시점이었던 1967년 히트곡 <페니 레인>이 나왔을 당시 EMI는 그때까지 비틀스 음반이 전세계적으로 2억장이 팔렸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비틀스는 자신들만의 음반 레이블 애플사를 만들어 자신들의 음반과 곡을 직접 발매하면서 판매량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정확한 집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팝 전문가들은 비틀스의 음반판매량이 5억장을 넘긴 것은 분명하다고만 추정하고 있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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