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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 댓글에 감동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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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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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튈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인터넷 댓글 놀이의 진화
새로운 콘텐츠 제공하는 ‘댓글 저널리즘’에서 베스트셀러 문학 실험까지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5월9일 네이버에는 팝뉴스에서 제공한 ‘토목공학도들의 동전 쌓기 놀이 열풍’이란 글이 떴다. 이 기사는 미국 텍사스 공과대학 학생들이 시작한 ‘동전 쌓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는 해외 토픽이었다.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쌓아올린 동전들이 기사에 사진으로 첨부되어 있었다. 기사는 “이 같은 ‘동전 쌓기’를 취미로 삼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동전 쌓기 놀이는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로 끝난다. 이 진화는 동전 쌓기와는 전혀 무관한 방향으로도 튀었다.

폐인 네티즌들에겐 축복과도 같은 것


이 기사에 댓글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올라왔던 것이다. 네티즌들이 “전자공학도의 관점에서 봤을때 한쪽끝에서 다른쪽 끝까지는 전기가 통한다”(songminan), “군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삽질이다”(michipagoi) “토목공학도들의 라이벌 조목공학도들의 관점에서 우리는 지폐 쌓기 놀이를 만들어야겠다.”(boysmemory)등 “○○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다”식의 글을 계속해서 올리며 (이후 칭하기를) ‘관점 놀이’를 시작한 것이다. 이 ‘놀이’는 한달간이나 계속되었다. “몇 주 전, 글 쓴 사람의 관점으로 봤을 때, 니들 아직도 쓰냐? 지친다 지쳐”(ibsagui)가 1611번째로 글을 등록된 시점은 5월28일이다. 놀이가 계속되는 중에 앞의 페이지까지 가는 수고를 해서 누가 맨 처음에 이 놀이를 시작했는지를 가리는 댓글의 댓글도 달리기도 했다.

댓글의 등장은 게시판 기능의 진화와 궤를 같이한다. 기본적으로 조회수가 따라 붙던 게시판에는 읽은 사람이 글을 추천하는 기능이 붙었다. 그리고 글에 대한 답글 기능을 보완하여 한 페이지 내에서 반응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댓글 기능이 추가되었다(현재 답글, 댓글, 덧글, 리플 등은 혼재되어 쓰이는데 여기서 쓰인 ‘답글’은 페이지가 다른 글을 말한다). 제로보드 등의 무료 게시판이 1998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1999년부터는 답글 기능을 탑재한 게시판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답글놀이의 양대산맥은 1999년 문을 연 디시인사이드와 2000년 웃긴대학. 디시인사이드가 사진에 대한 평 형식으로 웃긴대학이 글에 대한 평 형식으로 서로 다르게 진화했다. ‘댓글 공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았다. 광고글, 도배글, 시비걸기글(악플) 등이 손쉬운 만큼 많이 올라온다.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는 운영자가 “순위권, 반복리플, 욕설, 도배리플 등은 삭제됩니다”라고 댓글을 달아놓지만 이 글 자체가 가끔 동작 빠른 1등, 2등에게 밀리기도 한다. 여러 포털 사이트에서는 금지어를 걸러내는 장치를 개발하고, 로그인을 해야만 댓글을 남길 수 있는 등의 접근성을 차단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욕설-광고글 등을 지우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네이버에서는 6월27일부터 ‘덧글’ 열고 닫기 기능을 추가하였다.

댓글은 놀라울 정도로 부지런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게을러서 ‘한 큐’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폐인 네티즌들에게 축복과도 같았다. 댓글은 놀이로 발전하며 세포분열을 시작했다. 초기 댓글 놀이의 스타는 디시인사이드에 2001년에 등장한 ‘쿠키닷컴’이다. 이 글은 디시인사이드의 명예의 전당에 등록되어 있는데,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는 설명에 따르면 이 사진은 4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인터넷 명소가 되었고 “워낙 많은 리플을 포함하고 있어 로딩 시간만 5분이 넘게 소요되기 때문에 몇몇 자들은 ‘쿠키닷컴’ 게시물 로딩 시간을 PC 벤치마크 테스트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이 글은 “오늘 산 중저가형 모델 싸게 팝니다..”라는 제목으로 등록되었다. 글을 열면 한번 입으로 베어문 쿠키 사진이 보인다. 글은 중고 상품을 팔기 위해서 내놓는 글을 패러디하고 있다. “오늘산 중저가형 모델인 쿠키닷컴을 팝니다. 보다 고급 기종인 칙촉으로 가고 싶어서 내놓게 되었습니다. 롯데 정품이구요 110 좀 넘게 샀는데 100정도 받고 팔고 싶습니다.(생략)”(복숭아맛) “최고가 구입합니다.” “기스 자국으로 보아 내가 도둑맞은 것이 확실하다” “초코칩 장착이 가능한가” 등의 초기를 거쳐서 “다들 너무하시네요... 다른 곳이 싼 건 사실이지만 낱개로 구입하는 건 드물죠” “그 가격에 좀만 보태면 몽셸통통 삽니다” “단종된다는 말이 있어서 그런지 요즘 매물이 많군요” “왜 연락을 안 주시는 거죠” 등 포복절도할 리플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이 글은 7월7일 현재 조회수 451,611, 리플 15,928건이 등록돼 있다.

2004년 6월16일 엠파스에 등록된 ‘[초초기법] 인터넷 속도향상 비법 공개’의 글도 이와 비슷한 사례다. 제목을 누르고 들어가보면 “모니터를 닦았더니 인터넷이 빨라졌어요. 여러분들도 속는 셈치고 한번 해보세요. 원래 2M밖에 안 나왔었는데, 지금은 5M가 나오네요”라고 나와 있다. 댓글도 재치가 넘친다. “마우스 닦아보세요~ 하드 용량이 늘어납니다~” “창문을 열었더니 윈도우가 빨라졌어요” “고양이를 키우니 마우스가 빨라졌어요” “모니터를 다림질하니 완전평면이 됐어요.”

‘쿠키닷컴’이나 ‘속도향상비법’ 같은 경우는 글 내에 유머 코드를 내장하고 있다. ‘위트’에 ‘위트’로 대응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기사에서 댓글 공세가 펼쳐질지 장담할 수 없다. 앞의 ‘동전쌓기 놀이’에 대한 반응이 그러했다. 디시인사이드 ‘여자친구 갤러리’에 5월16일 올라온 사진에 대한 댓글도 마찬가지다. 여자친구 사진을 올린 글에 답변으로 ‘장병장’이 군대에서 일어난 일을 쓰기 시작하고 네티즌들이 그 댓글에 맞장구를 치면서 본글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이어나갔다. 댓글놀이는 진화한다. 진화가 돌연변이로부터 시작되듯이 이 댓글 놀이의 진화 또한 돌연변이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고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

'연애 숙맥' 전차남, 댓글로 결혼하다

'연애 숙맥'이 아름다운 여성과의 결혼에 성공하는 이야기인 <덴샤오토코>는 인터넷 댓글에서 출발한 'true story' 실제상황이다.

독과점적 저널리즘에 반대되는 ‘댓글 저널리즘’이라 불릴 만한 현상 또한 등장했다. 연예인 관련 기사에 이니셜이 등장하면 댓글은 모두 그 연예인을 실명으로 거론한다. 명확하지 않을 경우 이니셜 연예인 사냥에 나서기도 한다. 김익현은 <인터넷 신문과 온라인 스토리텔링>에서 “다음 커뮤니케이션즈에서 2003년 5월 기획기사로 선보였던 ‘위기의 지방대학’ 시리즈는 기사보다 댓글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전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한다. 각종 신문은 댓글을 기사 반응을 살피고 여론의 동향을 파악하는 잣대로 삼는다.

최근 일본의 사례에서 댓글 진화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덴샤오토코>(電車男)은 작년 일본에서 출판된 책 중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틀어 유일한 밀리언셀러다. 이 책은 ‘연애 숙맥’ 재택근무 시스템 엔지니어가 한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하게 과정을 그린 책인데 순전히 인터넷 댓글로만 이루어져 있다. 실제로 ‘전차남’은 사이트 2ch에 데이트 장소, 데이트 방법, 연애 기법에 대한 도움을 구했고 네티즌들은 정성을 다해 충고를 해주었고 책은 이 글을 묶은 것이다.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6월 초 개봉했다 7월7일부터는 TV드라마로 방송되며 8월에는 연극도 공연된다(상자기사 참조).

전차남은 댓글을 바라고 글을 시작했다. 댓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서였다. 첫 제안만을 할 뿐 글 등록자가 바라는 것은 댓글, 댓글이다. 2004년 7월 진보누리에서 ‘집단창작’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서영석의 공헌’ 댓글놀이 역시 이런 형식으로 전개되었다. 서영석씨가 “(내가) 우리사회의 도덕 수준을 높였다고 본다”고 말한 것을 빗대 제안자는 작정하고 “강도가 사회의 보안 수준을 높였다” 등의 패러디를 해보자고 요구하고 나섰다. 개인 사이트에서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고른 수준의 이야기를 잇대어가는 글이 가능하다. 팬 사이트에서도 이런 예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다음의 루시드 폴 팬카페에서는 릴레이 소설을 댓글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댓글소설 <덴샤오토코> 성공은 댓글의 문학적 가능성까지 제시하는 걸까? 최근 블로거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ch2의 한 글을 보자. 이 글은 “전기밥통에게 고백받았어”로 댓글 릴레이를 시작했다. 첫 포스팅은 “지금까지는 단순한 기계로만 봤기 때문에… 싫다던가 좋다던가 하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일단 대답은 나중에 하기로 했어. 난 어떻게 하면 좋지?”였다. 이후 “아직 늦지 않았어!젓가락과 밥그릇 들고 그녀를 쫓아가라!” “밥솥이랑 차분히 얘기를 했습니다. 그 녀석의 수명이 인간보다 짧다는 것, 그것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역시 좋아한다는 것, 마음 속을 전부 전했습니다” 등의 글이 올라온다. 이 글을 자신의 사이트로 퍼나르는 네티즌들의 반응은 “처음에는 피식피식 웃다가 나중에는 눈물이 줄줄…”이다. 2ch의 글을 많이 낸 코아매거진의 제2편집부 이나노베 타츠야 씨는 사이트의 글이 문학화되는 것에 대해서 “감동의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고 말한다.

문학적 평가가 어떻게 내려지든지 간에 이미 네티즌들은 댓글에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당신도 인터넷의 글에서 댓글 많은 기사를 찾아가서 기사를 읽고 댓글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마음대로 생겨나고 보급되고…

[인터뷰/ 2ch 운영자 니시무라 히로유키]

NHK온라인과 아사히닷컴보다 방문자가 많은 게시판 서비스 2ch

▣ 도쿄=정리 황자혜 전문위원 jahye@hanmail.net

‘2ch’는 형태상으로는 게시판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반복 방문해, 최신 뉴스를 알거나 특정 테마에 관해 정보를 얻거나 그것에 대한 반응을 읽거나 하는 의미에서는 하나의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조사업체인 ‘네트 레이팅스‘에 따르면 2ch는 2004년 11월 현재 700만명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ch의 유니크 유저(동일 인물의 복수 방문도 1사람이라고 셀 때의 방문자 수)는 484만명(2003년10월)으로 아사히신문사의 <아사히닷컴>(asahi.com) 222만명, NHK 온라인 273만명에 비해 2배 수준이다. 방문자는 2003년 10월 현재 여성 32%, 남성 68%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연령대로는 10대 20%, 20대 22%, 30대 29%, 40대 19%, 50대 이상 9%로 고루 분포돼 있다. 2ch는 니시무라 히로유키 혼자가 운영하는 1인 회사인데, 그는 은둔하는 마니아(우리나라의 ‘폐인’ 정도가 아닐까)로 남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린다.

2ch를 만들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었나.

1999년 5월. 재미있을 것 같다는 단순한 동기로 시작했다.

언제부터 의식하게 되었나.

점점 사람이 모이게 되고, 서버 늘리고, 또 모여들고, 또 서버 늘리고 하는 느낌. 뭔가 계속 하고 있다는 느낌.

지금 하루 방문자 수는 어느 정도인가.

알아볼 방법은 없지만 2천만 페이지 뷰 정도일까.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가.

불가능하다.

문화란 게 돈이 되는 순간에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다. 그러니 지금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스태프는 없나.

없다. 2ch는 철저하게 내가 관리하고 운영한다. 그러니 개인 사이트다. 기본적으로 나 혼자다. 게시판도 내가 뭔가 쓰지 않아도 누군가 마음대로 쓰니까,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2ch의 유행어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가.

마음대로 생겨나고 보급되고, 내가 모르는 것도 상당히 많다.

당신은 매일 글을 얼마나 보나? 그렇게 많은 걸 매일 모두 볼 리는 없을 텐데.

그다지 많이 보고 있지는 않다. 친구가 “야, 이런 거 있다”고 말하면 그때서야 보기도 하고… 스스로 재미있는 거 있나 하고 찾아보지는 않는다.

서버 용량은 어느 정도 되나.

지금 게시판에서 사용하는 것은 40대 정도. 게시판이 400개 정도인데, 각 화제의 댓글이 대체적으로 20만개 정도 항상 움직이고 있다.

*이 인터뷰는 ‘2ch 공식가이드 2004’ 내용 중 발췌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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