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판타스틱영화제 2005’ 공포·스릴러·미스테리 퀄리티 보장!
지적인 에로물부터 철학적 좀비영화까지 모두 기이하도다 ▣ 이영진/ <씨네21> 기자 해마다 찾던 피서지. 어서 씽씽 달려 시원한 바닷가에 닿았으면 좋으련만. 올해는 사람 헛갈리게 길이 하나 더 늘어났다고 이정표 앞에서 툴툴대실 분이 있을 겁니다. 어디로 가야 더 빨리 목적지에 닿을 수 있나.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한데, 어서 빨리 스트레스 벗고 싶은데, 괜한 걱정을 안겨드리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먼저 제 소개를 해야겠군요. 제 이름은 ‘리얼판타스틱영화제 2005’입니다. 7월14일 서울시 인사동에 위치한 필름포럼이라는 극장에서 태어날 예정이고, 23일까지 열흘 동안만 제 엽기적이고 기이한 모습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부천에서도 같은 날 저랑 비슷한 형제가 태어난다고요? 아. 올해로 아홉 번째 열리는 ‘부천국제영화제’ 말씀이시군요. 오해입니다. 다시 전하지만, 그쪽과 우리랑은 콩 한쪽 나누지 않았습니다.
동구권 SF 특별전… 60여편 대기 중 제가 태어날 수 있도록 옆에서 산파 역할을 하신 김홍준 감독과 9명의 스태프들은, 앞으로 부천쪽으로 오줌도 누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맞는 말입니다. 흥부가 놀부와 화해하는 건 허구 속에서나 가능한 것 아닙니까. 긴 말 않겠습니다. 콘서트 보실 분들은 부천 가시고, 영화 보실 분들은 저한테 오십시오. 푹푹 찌는 여름을 공포로 잊고, 스릴러로 식히고, 미스테리로 요리하던 광(狂)들은 그야말로 환영입니다. 도대체 뭘 가졌기에 그렇게 큰소리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털어놓겠습니다. 가진 거라곤 상영작 60여편이 전부입니다. 부천 놀부네에서 상영하는 270여편의 상영작에 비하면 턱도 없지요.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잖습니까. 제 입으로 말하기 뭣해도 퀄리티만큼은 보장합니다. 겉으로 보면 객기 부려 한달 만에 뚝딱 만들어낸 생명 같지만, 저를 만든 분들 꽤 베테랑이거든요. 지난 8년 동안 해외 영화제 돌 만큼 돌았습니다. 돌면서 든든한 사람, 풍성한 영화 만났습니다. 그렇게 쌓은 인연들이 어디 가겠습니까. 놀부네에서 쫓겨났지만 빈손 아니었습니다. 해외에선 힘내라는 응원이 연일 날아들었지요.
‘마르크스 침공!!! 동구권 SF영화 특별전’이 좋은 예일 겁니다. 사실 이건 부천 놀부네 집에 있을 때 마련하려고 했던 것인데,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포기했던 겁니다. 그런데 쫓겨났다는 소식을 바다 건너 들은 해외 응원군들이 의기투합해서 개막작으로 선정한 최초의 소비에트 공상과학(SF) 영화 <아엘리타>와 함께 희귀 영화 13편을 흔쾌히 보자기에 싸서 보냈더군요. 화성을 배경으로 전체주의 체제를 비판한 <아엘리타>, DVD로 나온 거 아니냐고요? 빙고. 그러나 반만 빙고입니다. 프린트로 보는 기회 흔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번엔 인디 음악에서 꽤나 이름 높으신 송현주 교수가 직접 작곡한 음악이 덧입혀질 것입니다. 아. 이거 하나 알아두십시오. 축제의 시작을 기뻐하는 건 좋겠지만, 음주가무는 금물입니다.
참고로 이 섹션에선 핵전쟁 이후 폐허의 시대를 배경으로 인류 문명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오존 호텔에서의 8월 말>, 남자들이 키스하면 여자들이 힘 못 쓰고 쓰러진다는 황당한 설정에 촌스러운 MTV식 기법을 더한 <섹스미션>,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비주얼과 사운드를 적절히 결합한 <우주 끝으로의 여행>, 모든 구상을 물질화할 수 있는 아마추어 SF 소설가와 그로 인해 지구를 방문하게 된 3명의 외계인의 해프닝을 코믹하게 그린 <은하에서 온 방문자들>, 동유럽산 SF영화의 고전이라 불리는 <고요한 행성>, 노동자 해방이라는 메시지가 싸구려 은색 세트 위에서 빛나는 <성운 속에서> 등은 만남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되는 제 친구들입니다.
여기서 만족하실 분들은 물론 없겠죠. ‘판타스틱 영화세상’ 섹션에서 선보이는 15편의 영화는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동시대 친구들입니다. 얌전한 영화들이 지겹다면, 먼저 <사치코의 화려한 생애>를 추천합니다. 데카르트, 놈 촘스키, 수잔 손탁이 언급되는 에로영화를 보셨나요. 숨가쁜 섹스 도중에도 잊지 않고 이라크 전쟁에 대한 조롱을 날리는 발칙한 놈입니다. <노는 회사 라이엇!>은 거대기업을 상대로 2천만달러를 빼돌린 희대의 사기꾼들에 대한 실제 기록인데, 핀란드에서 날아온 <범죄의 재구성>이라 여기면 될 친구이죠. 잉마르 베리만의 <7개의 봉인>에 버금가는 걸작 포르노를 만들겠다는 남자의 야심을 그린 <토레몰리노스73>, 죽은 자들이 되살아나 산 자들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철학적 좀비영화 <돌아온 사람들>, <미저리>를 연상시키는 <죽을 고생>, <큐브>의 감독 빈센조 나탈리의 신작 <빈센조 나탈리의 휑>, 청력을 잃은 DJ의 고군분투기 등도 사귀길 강추합니다.
<시계태엽장치오렌지> 등 놓치면 후회
지난 1년 동안 한국 장르영화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혈의 누> <달콤한 인생> <귀여워> 등 7편의 한국영화 모듬섹션인 ‘코리안 판타지’, 짧은 호흡, 긴 환상으로 여러분을 안내할 24편의 단편 모듬 ‘짧지만 판타스틱’, 백범 김구 선생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1930, 40년대 기록영화 복원 상영으로도 양이 안 차신 욕심 많은 관객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깜짝 소개팅이죠. 국내에서 필름으로 상영된 적 없는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장치오렌지>와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니콜 키드먼 주연의 <환생> 등 국내 미개봉작의 상영이 영화제 기간 도중 있을 예정입니다. 혹시 주머니에 여유가 가득한 분들, 저희가 마련한 온라인 보금자리(www.realfanta.org)로 입장해서 후원의 뜻을 더하시는 것 나쁘지 않습니다. 푼돈 모아 스크린에서 꿈을 사고 싶어하는 이들의 함성이 줄을 잇고 있거든요. 그게 정 힘드시다고요. 그럼, 그냥 극장에 달려오십시오. 그것만으로 저희의 기쁨입니다. 단, 입장료는 내셔야 합니다.
지적인 에로물부터 철학적 좀비영화까지 모두 기이하도다 ▣ 이영진/ <씨네21> 기자 해마다 찾던 피서지. 어서 씽씽 달려 시원한 바닷가에 닿았으면 좋으련만. 올해는 사람 헛갈리게 길이 하나 더 늘어났다고 이정표 앞에서 툴툴대실 분이 있을 겁니다. 어디로 가야 더 빨리 목적지에 닿을 수 있나.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한데, 어서 빨리 스트레스 벗고 싶은데, 괜한 걱정을 안겨드리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먼저 제 소개를 해야겠군요. 제 이름은 ‘리얼판타스틱영화제 2005’입니다. 7월14일 서울시 인사동에 위치한 필름포럼이라는 극장에서 태어날 예정이고, 23일까지 열흘 동안만 제 엽기적이고 기이한 모습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부천에서도 같은 날 저랑 비슷한 형제가 태어난다고요? 아. 올해로 아홉 번째 열리는 ‘부천국제영화제’ 말씀이시군요. 오해입니다. 다시 전하지만, 그쪽과 우리랑은 콩 한쪽 나누지 않았습니다.
동구권 SF 특별전… 60여편 대기 중 제가 태어날 수 있도록 옆에서 산파 역할을 하신 김홍준 감독과 9명의 스태프들은, 앞으로 부천쪽으로 오줌도 누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맞는 말입니다. 흥부가 놀부와 화해하는 건 허구 속에서나 가능한 것 아닙니까. 긴 말 않겠습니다. 콘서트 보실 분들은 부천 가시고, 영화 보실 분들은 저한테 오십시오. 푹푹 찌는 여름을 공포로 잊고, 스릴러로 식히고, 미스테리로 요리하던 광(狂)들은 그야말로 환영입니다. 도대체 뭘 가졌기에 그렇게 큰소리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털어놓겠습니다. 가진 거라곤 상영작 60여편이 전부입니다. 부천 놀부네에서 상영하는 270여편의 상영작에 비하면 턱도 없지요.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잖습니까. 제 입으로 말하기 뭣해도 퀄리티만큼은 보장합니다. 겉으로 보면 객기 부려 한달 만에 뚝딱 만들어낸 생명 같지만, 저를 만든 분들 꽤 베테랑이거든요. 지난 8년 동안 해외 영화제 돌 만큼 돌았습니다. 돌면서 든든한 사람, 풍성한 영화 만났습니다. 그렇게 쌓은 인연들이 어디 가겠습니까. 놀부네에서 쫓겨났지만 빈손 아니었습니다. 해외에선 힘내라는 응원이 연일 날아들었지요.

“지금 부천에 가면 복잡한 이정표 앞에서 거리를 헤맬 수도 있답니다. 그럴 때 ‘리얼’을 따라가면 당신의 영화에 대한 안목을 확실하게 넓혀줄 것입니다.”영화제 공식 포스터(왼쪽)와 영화 <사치코의 화려한 생애>의 한 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