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6명으로 시작해 80년만에 화려한 성공 이뤄낸 영국 료열발레단
<신데렐라> <마농>으로 고전과 현대의 접목을 시도하다 ▣ 문애령 무용평론가 지난 1978년부터 내한공연을 시작한 영국 로열발레단은 한국 관객들에게 가장 친근한 외국 발레단이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레 실피드> 등을 처음 본 과거의 관객들은 문화적 충격을 좋은 쪽으로 흡수했다. 무대에 출연한 마고 폰테인의 환갑을 함께 축하했고, 당시의 스타였던 제니퍼 더닝과 앤서니 도웰의 아름답고 완벽한 기교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며 행복해했다. 단원 6명 시절부터 안무가 발굴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 각국의 유명 발레단들이 차례로 한국을 거쳐가게 되었고, 한국 관객들의 순수하던 열정도 갈수록 무덤덤해지기 시작했다. 스타들만 골라 보는 갈라 공연이 생겼는가 하면 고전발레보다는 현대발레나 파격적인 현대무용을 선호하는 관객층도 생겨났다. 같은 <백조의 호수>라고 하더라도 안무가의 버전을 따지며 감상하고, 좋아하는 발레 스타들을 점찍어 팬을 자처하는 마니아들도 생겨났다. 이런 변화로, 로열발레단의 이번 내한공연을 보고 무작정 환호한 관객들이 예전처럼 많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고전발레와 현대발레를 두루 살핀 경험자들에게는 로열발레단의 <신데렐라>와 <마농>의 정체가 상당히 궁금했을 것이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발레임에는 분명하지만 고전발레도 현대발레도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고전과 현대를 연결시키며 한 시대를 장악했던, 영국 로열발레단을 대표하는 이 두 작품을 설명하다 보면 그 발레단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실망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은 어떻게 세워가는 것인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해준다. 이 답안은 현재 한국 발레가 찾고 있는 미래상과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영국 로열발레단’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그 역사가 수백년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영국 왕실의 역사나 궁정발레의 전통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환상과 달리 로열발레단의 시작은 비참할 정도로 미약했다. 2001년 102살로 사망한 니네트 드 발루아가 1926년 6명의 무용단원으로 시작한 단체가 바로 오늘의 로열발레단이다. 왕실의 개입은 1956년에 시작됐고, 그 이후로는 공주와 왕자들이 차례로 발레단장직을 맡고 있다.
드 발루아는 ‘디아길레프 러시아 발레단’의 단원이었다. 디아길레프는 1909년 러시아 발레의 우수성을 유럽에 알리기 위해 발레단을 조직한 인물이다. 그는 러시아 고전발레에 싫증을 느끼던 당시의 청년 무용가들을 자극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파리 등지에서 각광받았으나 러시아 혁명과 함께 유랑생활을 해야 했던 1920년대 말경에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같은 러시아의 고전작품들도 공연했다.
남성 무용수가 언니 역…계모 아예 없어
영국 발레는 디아길레프 발레단의 활동상을 모태로 삼아 고전작품의 수용과 함께 창작발레를 병행했고, 이때 프레더릭 애슈턴이 안무가로 등장해 발레단의 힘을 키웠다. 디아길레프의 철칙은 혁신적인 안무가 발굴이었는데, 애슈턴의 스승인 마리 램버트 역시 디아길레프의 단원이었다. 오늘날 영국 발레가 유명해진 이유는 수십년 전에 이미 좋은 안무자를 육성해야 한다는 의지와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과 교사와 안무자를 고루 확보한 니네트 드 발루아가 왕실이 보기에도 흡족한 모습의 발레단을 운영했기에 오늘의 로열발레단이 탄생된 것이다. 왕실이 너무도 발레를 사랑해서 학교를 세우고, 발레단에 재정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굳게 믿었던 허상이 깨져 실망스럽지만 예술가들의 자생력이 없이는 수준 높은 예술 활동이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일화다.
이처럼 짧은 역사를 지닌 영국이 언제부터인가 발레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프랑스, 러시아, 덴마크의 전통이 영국에 앞서는 것은 물론이지만 20세기 창작발레에서만큼은 영국이 결코 뒤지지 않는데, 그 대표작에 <신데렐라>와 <마농>이 포함된다.
발레 <신데렐라>를 안무한 사람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프레더릭 애슈턴이 안무한 로열발레단의 <신데렐라>를 유독 좋아한다. 애슈턴의 <신데렐라>는 1948년에 초연됐다. 초연 당시 애슈턴과 함께 유명한 무용가 로버트 헬프먼이 나쁜 두 언니로 분장했던 전통에 따라 매번 두 남성이 신데렐라를 구박하고 왕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주책을 떠는 배역을 맡는다. 또한 계모가 등장하지 않아 계모와 연관된 기억을 가진 관객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속 깊은 배려도 있다. 신데렐라의 계모 역시 죽은 것으로 상황 설정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세 딸들만 나온다.
<신데렐라>는 프로코피예프의 동명 음악이 작곡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는데, 계절의 요정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기법은 고전발레 형식이지만 언니들의 가면 분장과 희극적인 몸짓, 그리고 줄거리를 상세하게 묘사하는 진행 방식은 팬터마임과 유사하다. 발레의 환상을 유지한 극적 접근이 동화의 세계와 어울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마농>을 안무한 케네스 맥밀런은 애슈턴보다 거의 한 세대가 어린 만큼 안무 성향에서도 세대차를 보인다. 발레 전통이 약했던 영국에 고전적 취향을 주입한 안무자가 애슈턴이라면 맥밀런은 20세기 중반에 유행한 ‘드라마틱 발레’에 가담했다. 이 안무법의 특징은 춤과 극이 혼합된 형태로 <마농> 3막에서의 2인무가 뚜렷한 증표다. 마농이 죽어가는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 데 그리외가 마농을 공중에서 두번 돌려 휘어잡는 동작이 반복되다가 마농이 점차 쓰러지며 걷다가 눕는다. 애인을 깨우려는 남자의 몸부림과 결국은 죽어버리는 여자의 종말이 춤 동작 속에 담겨 있어 어디까지가 춤이고 어디까지가 연극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애슈턴과 맥밀런은 모두 영국 로열발레단 예술감독을 지냈고, 그들의 작품은 세계 유명 발레단에 수출되어 레퍼토리로 공연되고 있다. 짧은 기간에 가장 큰 가시적 성과를 올린 영국 발레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영국 발레의 이런 성공 사례는 한국 발레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한국 발레는 최근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그 내막은 영국과 달리 매우 소모적이다. 발레단 소속 발레학교가 없기 때문에 아직도 발레를 배우러 외국으로 나가야 기본기를 공인받을 수 있는 분위기다. 학생 교육이 이 정도니 안무자 교육에는 신경쓸 여유가 없다. 발레단에 전속 안무자가 없는 것도 문제고, 이전 예술감독들이 제작한 작품을 소중히 여기는 전통도 빈약하다.
한국 발레, 전통을 어떻게 세울까
한국의 창작발레를 애타게 원하고 있지만 <신데렐라>나 <마농> 같은 소재는 비한국적으로 보기 때문에 작품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세계 무대에서 보편성 획득이 문제로 남는다. <마농>의 원저자는 프랑스 작가지만 그 내용이 영국을 대표하는 발레가 되었다는, 발레는 발레적인 시각에서 다뤄야 한다는 의미에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발레를 수용하려면 모든 절차를 외국과 동일하게 따라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원칙이 선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한국 발레의 가장 큰 문제다.
<신데렐라> <마농>으로 고전과 현대의 접목을 시도하다 ▣ 문애령 무용평론가 지난 1978년부터 내한공연을 시작한 영국 로열발레단은 한국 관객들에게 가장 친근한 외국 발레단이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레 실피드> 등을 처음 본 과거의 관객들은 문화적 충격을 좋은 쪽으로 흡수했다. 무대에 출연한 마고 폰테인의 환갑을 함께 축하했고, 당시의 스타였던 제니퍼 더닝과 앤서니 도웰의 아름답고 완벽한 기교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며 행복해했다. 단원 6명 시절부터 안무가 발굴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 각국의 유명 발레단들이 차례로 한국을 거쳐가게 되었고, 한국 관객들의 순수하던 열정도 갈수록 무덤덤해지기 시작했다. 스타들만 골라 보는 갈라 공연이 생겼는가 하면 고전발레보다는 현대발레나 파격적인 현대무용을 선호하는 관객층도 생겨났다. 같은 <백조의 호수>라고 하더라도 안무가의 버전을 따지며 감상하고, 좋아하는 발레 스타들을 점찍어 팬을 자처하는 마니아들도 생겨났다. 이런 변화로, 로열발레단의 이번 내한공연을 보고 무작정 환호한 관객들이 예전처럼 많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영국 로열발레단은 끊임없는 실험으로 전통을 만들어냈다. 로열발레단이 1948년에 초연한 <신데렐라>는 동명의 작품 가운데 명품으로 대접받는다.

영국 로열발레단의 레퍼토리인 <마농>은 프랑스 소설가 아베 프레보의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졌지만 영국을 대표하는 발레 작품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