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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세상 어디서나 아이들은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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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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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가로 변신한 열화당 이기웅 사장이 펴낸 두 권의 책… 어린이 다룬 이색 사진집 눈에 띄네

출판사 열화당 이기웅(60) 사장이 최근 두권의 책을 한꺼번에 냈다. 출판에 몸담으며 느꼈던 점을 쓴 글을 묶은 <출판도시를 향한 책의 여정>(눈빛 펴냄·1만5천원)과, 평소 여행다니면서 열심히 찍었던 사진을 모은 <세상의 어린이들>(열화당 펴냄·2만5천원)이란 사진집이다. 지난해 초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펴낸이가 아닌 옮긴이로 나온 책 <안중근 끝나지 않은 전쟁>을 낸 것까지 합하면 지난 한해 세권의 책을 직접 쓰며 출판인이 아니라 저술가로 더 많은 활동을 한 셈이다.

10여년간 찍어온 아이들 사진

재미있는 대목은 출판계의 중진으로 요즘에는 파주 출판도시 건설작업에 매달려 있는 그가 뒤늦게 책을 냈다는 점이다. 평생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수백여종의 책으로 내온 그가 환갑 나이에야 처음으로 책을 낸 점도 눈길을 끌고, 게다가 <출판도시를 향한 책의 여정>은 자신의 출판사가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냈다는 점도 특이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출판계의 중진인 그가 글이 아니라 사진으로 <세상의 어린이들>이란 사진집을 냈다는 점이 이채롭다. 그래서 이씨가 이 책을 낸 것은 요즘 출판계에서는 화젯거리다.


사진집 <세상의 아이들>은 제목 그대로 그가 우리나라 곳곳, 그리고 방문했던 외국의 어린이들을 찍은 사진만을 모은 책이다. 사진은 87년부터 지난해까지 10여년 동안 그가 찍었던 아이들 사진에서 고른 것들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어린이들은 학교에 갈 때는 걸어갑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는 뛰어옵니다”라는 한 항공사의 광고카피처럼 그가 만난 세상 어린이들은 나라가 다르고 피부색이 달라도 다들 똑같다. 포대기에 쌓여 엄마 등에 업힌 채로 열심히 빙과를 빨고 있는 제주도의 여자아이와 온몸에 뻘흙을 뒤집어쓰고 장난하는 전남 진도의 섬아이들, 윗도리만 입은 채 대문가에서 노는 네팔 안나푸르나의 꼬마, 엄마 어깨에 무등을 타고 세상구경에 여념이 없는 모스크바의 어린이까지 아이들의 눈매는 맑고 발간 볼에는 생기가 감돈다. 그리고 이방인의 렌즈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동자에는 낯선 이와도 쉽게 친해지는 아이들만의 허물없는 친근함이 담겨 있다.

원래 이 사장이 사진집까지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지난 80년대 평소 친하던 소설가 조세희씨와 사진작가 강운구씨와 국토순례를 다니며 틈틈이 찍었던 사진일 뿐인데, 그가 어린이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주변의 지인들이 ‘꾀는’ 바람에 용기를 냈다고 한다. 사진작가 강운구씨가 책에 실을 사진을 골라줬는데 “찍은 사람 맘에 드는 사진들은 많이 빼버리고 강운구씨 보기에 괜찮은 것만 고르더라”며 이씨는 웃었다.

본업에 충실하는 계기

늘 책에만 파묻혀 살던 그가 세계 여러 나라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외국 아이들은 처음 만났을 때 우리 아이들보다 훨씬 밝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은 처음 만나면 좀 어두워요. 사회의 우울한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덧씌워져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한 20, 30분 동안 사귀고 나면 아이들은 다 똑같습니다, 보석들이에요.”

평소 “세상 어린이들과 사귀는 것이 인생의 주제”라고 말하고 다닐 만큼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씨에게 그래서 이번 책은 첫 번째 책이라는 점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출판인이란 본업에 더욱 충실해지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자극도 됐다고 한다. 글과 사진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그렇게 쑥스럽고 신경쓰이는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평소 원고가 늦는 필자들을 다그치고 독촉하던 그가 직접 필자가 되고 나서 ‘역지사지’로 느낀 소감이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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