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 ‘세계 국가·도시 시리즈’ 한국편 <러프 컷>
2주간의 한국 체험으로 만든 몸짓들은 한국적 인간을 표현하고 있는가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이제는 연극의 미래로 여겨지는 ‘탄츠테아터’(Tanztheater·무용극)의 면모를 실감나게 보여준 피나 바우슈. 현대 무용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돌프 폰 라반 문하에서 싹튼 탄츠테아터의 꽃을 피운 것으로 평가받는 그는 30여년 전 ‘탄츠테아터 부퍼탈’을 창단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지난 2003년 포르투갈어로 ‘불타는 마주르카’를 뜻하는 <마주르카 포고>를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렸을 때, 관객들은 포르투갈 전통음악 파두의 서정성과 브라질의 격정적 리듬인 삼바를 가슴으로 품을 수 있었다. 당연히 그가 LG아트센터 개관 5주년 기념 공연으로 지난 6월21일부터 6일 동안 무대에 올린 한국 소재의 신작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다. 그동안 피나 바우슈는 인간과 삶의 본질에 다가서는 작품을 선보였다. 물론 극적으로 매듭을 엮어 일목요연하게 보여준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플롯 없이 춤의 동작과 연극적인 이미지의 나열만으로 놀라운 성취를 보여줬다.
남자무용수, 배추로 덮히다 그가 추구하는 무대예술의 종착점은 인간이라는 사실도 시사적이다. 독일의 무용평론가 요헨 슈미트는 <피나 바우쉬: 두려움에 맞선 춤사위>에서 “피나 바우쉬의 관심은 언제나 ‘인간’에 있다. 사랑과 두려움, 좌절과 공포,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기억과 망각 등 인간 실존에 관한 핵심적 질문들이 특별한 양식과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출된다”고 밝혔다.
그렇게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피나 바우슈와 단원들은 지난해 10월 2주에 걸쳐 국내 곳곳을 ‘탐색’했다. 당시 이들은 경남 통영 해란마을의 수륙새남굿에 흥을 보태고, 안동 하회마을과 부석사에서 한국의 미를 맛보는 등 빈틈없는 일정을 소화했다. 심지어 김장을 하고 사물놀이에 빠지기도 했다. 한국을 담은 작품을 준비한다고 해서 날것 그대로의 한국이 무대에 오른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누구도 피나 바우슈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1986년 로마를 소재로 한 <빅토르>에서 비롯된 ‘세계 국가·도시 시리즈’의 열세 번째 작품 <러프 컷>(Rough Cut)은 제작만으로도 국내 공연예술의 일대 성취로 여겨졌다.
정말로 피나 바우슈는 한국적 서정과 인간을 담아냈을까. 일단 관객들은 객석에 앉자마자 그의 자유로운 예술적 영감에 기가 눌릴 법했다. 무대 위로 거대한 암벽(빙산으로 느낄 수도 있다)이 위풍당당하게 놓여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한국적 풍광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 암벽은 공연 내내 다양하게 변신하면서 관객의 눈을 자극한다. 암벽 등반가가 안전용 자일을 이용해 오르내리고, 진달래 동산·파도치는 바다·백화점 에스컬레이터 등을 비추는 프로젝션판으로도 쓰인다. 한국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암벽이 화강암이 아닌 것은 뜻밖이었다. 마치 유럽에 흔한 석회암벽을 설치해 관객들이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러프 컷>에 한국의 면모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술에 취해 귀가한 남편이 이불 위에 고꾸라지고, 공주병 아가씨가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아기 엄마가 누워서 우리 귀에 익숙한 자장가를 부르고, 여자가 남자의 등목을 돕는 장면도 나온다. 여기에 김민기의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나 어어부밴드의 전자음악과 거문고를 비롯한 전통악기의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특히 반라인 남자 무용수의 몸을 절인 배추로 덮으면서 배춧잎을 ‘부채’로 사용하는 듯한 장면은 예술적 영감이 빛나는 대목이다. 만일 그것이 부채질이라면 김장철(초겨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홍콩·포르투갈편에 대한 비판과 옹호
이렇듯 피나 바우슈가 무대에 올린 한국에 현실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맥락이 통하지 않는 게 눈에 띈다. 피나 바우슈 탄츠테아터의 한국인 무용수 김나영씨가 자장가를 부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기를 보듬고 자장가를 부르는데, <러프 컷>의 자장가는 아기를 재우는 엄마가 옆으로 기다랗게 누워서 부른다. 진달래 동산에서 이뤄지는 낭만적인 남녀간의 만남도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연극평론가 장은수(한양대 교수·독문학)씨는 “전체적으로 그림은 되는데 맥락이 맞지 않는 듯하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2주 동안의 체험만으로 우리 정서를 담는 데 한계가 많았다. 한국적 이미지가 외국인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시각을 미리 경계하려는 의도였을까. 피나 바우슈는 <러프 컷>의 세계 공식 초연을 앞두고 “한 나라에 대한 나의 시각과 그 나라 스스로의 시각은 다르게 마련이다. 그런 기대나 긴장은 언제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러프 컷>의 한국은 피나 바우슈가 추상적 언어로 표현한 것일 뿐이라는 말이다. 피나 바우슈 무용단원 레지나 아드벤토는 “어떤 화가가 풍경을 보고 추상화로 표현하는 것과 같다. 우리 작품에 한국이 곳곳에 녹아 있지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부분은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어쨌거나 한국에서 영감을 받은 <러프 컷>이 무대에 오르는 데 지불한 비용은 10억원이었다.
사실 피나 바우슈가 세계의 국가와 도시를 무대에 올리는 프로젝트는 이런저런 뒷말이 많은 편이다. 특히 홍콩 반환을 앞두고 만든 <유리 청소부>(The Window Washer)는 홍콩을 배경으로 했을 뿐 내용은 다른 작품의 복사본이며 “홍콩 사람을 놀림감으로 만들었다”는 혹평을 들을 정도였다. 포르투갈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마주르카 포고>도 성과 환경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거세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러프 컷> 역시 한국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절제된 언어를 통해 역동적인 춤으로 귀환하는 모습을 확연히 보여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러프 컷> 공연을 통해 피나 바우슈는 더욱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눈이 한층 밝아졌을 수도 있으리라. 만일 <러프 컷>이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견인차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면 피나 바우슈가 가슴으로 한국을 만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만 한국적 풍광이 이국적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예술적 속살로 세계인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러프 컷>은 제목의 본디 의미처럼 미완성본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예정된 세계 순회 공연 과정에서 다른 면모를 보일 수도 있다. 이때에는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역동적인 몸짓에 한국적 서정이 덧입혀지길 바란다.
2주간의 한국 체험으로 만든 몸짓들은 한국적 인간을 표현하고 있는가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이제는 연극의 미래로 여겨지는 ‘탄츠테아터’(Tanztheater·무용극)의 면모를 실감나게 보여준 피나 바우슈. 현대 무용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돌프 폰 라반 문하에서 싹튼 탄츠테아터의 꽃을 피운 것으로 평가받는 그는 30여년 전 ‘탄츠테아터 부퍼탈’을 창단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지난 2003년 포르투갈어로 ‘불타는 마주르카’를 뜻하는 <마주르카 포고>를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렸을 때, 관객들은 포르투갈 전통음악 파두의 서정성과 브라질의 격정적 리듬인 삼바를 가슴으로 품을 수 있었다. 당연히 그가 LG아트센터 개관 5주년 기념 공연으로 지난 6월21일부터 6일 동안 무대에 올린 한국 소재의 신작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다. 그동안 피나 바우슈는 인간과 삶의 본질에 다가서는 작품을 선보였다. 물론 극적으로 매듭을 엮어 일목요연하게 보여준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플롯 없이 춤의 동작과 연극적인 이미지의 나열만으로 놀라운 성취를 보여줬다.
남자무용수, 배추로 덮히다 그가 추구하는 무대예술의 종착점은 인간이라는 사실도 시사적이다. 독일의 무용평론가 요헨 슈미트는 <피나 바우쉬: 두려움에 맞선 춤사위>에서 “피나 바우쉬의 관심은 언제나 ‘인간’에 있다. 사랑과 두려움, 좌절과 공포,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기억과 망각 등 인간 실존에 관한 핵심적 질문들이 특별한 양식과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출된다”고 밝혔다.

무용극 <러프 컷>은 한국을 소재로 삼아 '인간'을 표현해낸피나 바우슈의 신작이다.

지난해 가을 방한한 피나 바우슈 무용단원들이 풍물놀이 몸짓을 배우고 있다. <러브 컷>의 휴지 뽑기 손놀림에서 풍물놀이의 흥을 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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