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현대미술의 거성 칸딘스키가 규정한 검정색은 ‘침묵하는 색채’이자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선지 검정과 연관되는 이미지들 역시 이 주장을 증언합니다. 야쿠자·경호원·암살범, 급기야 장례식 광경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는 무거운 침묵 또는 죽음과 관련을 맺는 도상들이며, 검정 유니폼과 한쌍이 될 때 기억 속에 완성됩니다. 부정적인 연상에도 불구하고 검정은 선호도가 높은 색입니다. 최고급 세단, 파티 연미복, 연주회 복장 등에서 발견되는 드레스코드 블랙은 침묵이나 죽음이 아닌, 품위와 중후함과 관계 있습니다. 동일한 색채가 지닌 이 상반성의 진상은 무얼까요? 검정은 본디 빛을 흡수하는 무채색으로서 내막 혹은 속내를 은폐하는 위장술에 능한 색입니다. 검정 선호의 바탕에는 내약외강, 즉 겉은 센 척하지만 속은 나약한 자의 두려움이 깔렸는지도 모릅니다. 위세 등등한 검정 정치학은 우리의 판단을 흡수해버리는 작은 블랙홀에 지나지 않습니다. 검정 앞에서 주눅 들지 말고 원색 좀 입읍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