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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식품 백신’ 암초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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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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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용 항제가 든 식물을 먹어 질병 예방하는 시대가 올 것인가
유전자 재조합 논란에 투여량 조절 등 의학적 장벽에 부닥쳐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비단 어린이들만 주삿바늘에 공포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먹어도 따끔한 주삿바늘이 엉덩이나 팔에 들어갈 때 긴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삿바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병원 문턱에도 가지 않으려는 사람도 흔하다. 그래서 혈관이나 피하에 약물을 직접 투여하는 주사를 대신하는 약물 전달 시스템을 찾으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질병을 막는 ‘식품 백신’은 주삿바늘의 공포를 획기적으로 줄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식물체 백신에 대한 연구를 10년 이상 했지만 백신을 함유한 식품으로 주사를 대신하는 사람은 없다. 도대체 무엇이 백신 식품의 상용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현재 체내에 약물을 전달하는 데 다양한 방법이 쓰이고 있다. 흔히 파스라 불리는 패치제는 피부를 통한 약물 흡수를 꾀한다. 오래된 근육통이나 관절통에 쓰이던 소염진통제뿐만 아니라 금연을 위한 니코틴 패치,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인슐린 패치, 존슨앤존슨의 자회사인 올소맥닐에서 출시한 붙이는 피임약 올소에브라 등까지 시판되고 있다. 바늘 없는 주사기도 강력한 압축력을 이용해 주사약이 피부를 통해 흡수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주사기는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당뇨병 환자들이 널리 사용하고 있다.

주삿바늘의 공포는 사라질 것인가. 한 어린이에게 경구용 소아마비 백신을 투여하고 있다. (사진/ EPA)


투여량 맞추기 위해 정제 기술도 개발

여기에다 내부에 약물을 넣고 특정물질로 코팅해 원하는 부위로만 정확히 전달하는 마이크로 캡슐 기술과 약이 위에서 미리 녹는 것을 막으려고 표면을 변형시키는 스텔스 기술도 눈길을 모으고 있다. 특별한 냉동 시설이 없었던 200여년 전 백신 치료를 위해 고아를 감염시켜 화농으로 인한 발진을 유도해 상처에서 고름을 채취해 다른 어린이에게 접종했다. 그러니까 고아들이 백신 운반 시스템이었던 셈이다. 이를 생각하면 오늘날의 약물 전달 시스템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한 결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간편한 방법이라 해도 약물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면 거부감을 유발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치료용 항체를 개발해 동·식물체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른바 단일 클론 항체라 불리는 효과적인 치료물질을 음식물에 삽입하는 것이다. 예컨대 유전자 재조합 포유동물이 젖을 통해 치료용 물질을 배출하는 식이다. 그런데 동물의 경우 유단백에서 치료용 물질을 분리하는 과정이 까다로워 연구자들은 주로 식물체에 치료용 물질을 넣으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세계적으로 3억여명의 보균자가 있고 해마다 100만명의 사망자를 내는 B형 간염의 항체도 손쉽게 생산할 수 있다. 치료용 물질이 들어 있는 감자를 섭취하는 것으로 백신 접종을 대신하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식품 백신이 실용화 단계에 접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 애리조나대학 생체설계연구소 설립자 찰스 안첸 박사는 B형 간염에 효과가 있는 백신을 생산하려고 감자를 유전공학적으로 변형시켰다. 그는 지난 2월 날감자 덩어리를 먹은 지원자들 가운데 60%에서 간염 항체가 생성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감자 백신이 실용화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부 연구자들은 식품 백신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백신 식품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만만치 않고 과학적으로도 결함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재조합 식물은 인체 유용물질을 생산하기도 한다. 한국과학기술원 식물유전체 연구실 모습.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무엇보다 유전자 재조합 식품을 ‘프랑켄슈타인 식품’으로 여기는 분위기에서 소비자들이 백신 식품을 곱게 봐줄 리 만무하다. 설령 소비자들이 너그럽게 백신 식품을 받아들여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백신의 투여량을 조절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치명적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백신 함유 감자를 한알 먹으면 B형 간염 항체가 형성된다고 하면 어느 정도 크기의 감자인지가 불분명하다. 만일 크기가 균일한 감자를 만들려고 하면 치료용 물질을 식물체에 넣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토마토나 바나나라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쯤되면 백신 식품을 동물에게 먹이는 것도 주저해야 할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 후진국일지라도 식품으로 백신 접종을 하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게 뻔하다. 아무리 신선한 식품일지라도 백신으로 먹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는 탓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식품에서 치료용 물질을 추출해 가공된 정체로 옮기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다양한 식물에 유전자를 삽입해 재배한 뒤 거기에서 유용 물질을 추출해 투여량을 균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B형 간염 백신을 함유한 감자를 젤라틴 캡슐로 포장해 일정 분량씩 복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애리조나대학 생체설계연구소는 200에이커의 밭에서 백신이 함유된 감자를 재배하면 지구촌 모든 어린이들이 복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장 백신 식품으로 질병을 막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식물체의 효용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식물체를 이용하면 고부가가치 단백질을 저렴하게 생산하는 데 유용하다. 미생물이나 동물을 이용해 단백질을 생산하면 생산 단가가 높다. 만일 인간 면역 글로불린을 동물세포에서 배양하면 1g에 1천달러의 비용이 들어간다. 이에 비해 유전자 조작은 10분의 1 가격이면 되고, 식물은 20분의 1 이하에 생산할 수 있다. 게다가 동물 세포에 들어 있는 다른 단백질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식물에서 인간 유전자의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기술이 확립되면서 식물체의 놀라운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백신을 함유한 유전자 재조합 작물.

국내서도 다양한 백신 식물 자란다

이미 국내에서도 식물이 약품 공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전북대 생명공학부 유전공학연구소에서는 각종 치료용 단백질을 함유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대장암 항체 유전자를 벼 세포에 넣어 대장암 항체 단백질을 만들어내고, 면역조절제 유전자를 넣으면 면역조절제 단백질을 생산하는 식이다. 여기엔 영양분을 집어넣은 배양액에서 세포를 키우는 특수한 식물세포 배양 시스템이 필요하다. 물론 식물체에서 의료용 단백질을 생산해도 당장 치료 물질로 쓰이기는 힘들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유전자 변형 식물로 만든 약품에 어떤 규제를 가할지 결정되지 않은 탓이다.

아직까지 식물 세포배양 기술로 생산 가능한 유용 단백질 가운데 상업성을 획득한 제품은 거의 없다. 아무리 효능을 인정받아도 유전자 재조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식물체 치료용 물질이 약국 진열대에 놓이기 힘들 수도 있다. 식물 백신 캡슐을 만들어도 복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헛일이다. 국내 생명공학 연구기관들이 벼와 고추, 감자 등 18개 작물을 대상으로 유전자재조합(GMO) 농산물 45종을 단독 또는 공동으로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식물 백신이 캡슐로 포장되는 게 먼 미래의 일이 아닌 셈이다. 그것을 먹거나 말거나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녹색의 능력’을 믿으십니까

[숨은 1mm의 과학/ 채소의 항암 효과]

채식을 권하는 사람들은 채소를 많이 먹으면 암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채소에 들어 있는 유효성분이 노화를 억제하고 항암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일부 연구자들에 따르면 십자화과 채소류 가운데 케일이나 브로콜리, 양배추, 배추 등은 높은 항암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브로콜리에 있는 ‘설포라판’이란 식품화합물은 간에서 발암물질을 제거하는 효소를 활성화해 체내에서 발암물질을 분해·제거하는 구실을 한다.

채소의 이로운 작용에는 자연색소가 주요 구실을 한다. 대부분의 식물은 햇빛을 받아 이산화탄소를 녹말로 바꾼 뒤 자신의 영양분으로 사용한다. 이때 강한 햇빛은 식물의 산화작용에 개입해 노화나 암을 유발하는 활성산소를 만들어낸다. 햇빛의 악영향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채소를 먹고 노화를 촉진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런데 채소에 들어 있는 자연색소 ‘클로로필’(녹색 성분)과 ‘카로티노이드’(황색 성분)가 햇빛의 악영향을 막아낸다.

지금까지 밝혀진 채소의 항암 성분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배추의 ‘베타-시토스테롤’이나 무의 ‘캠페롤’은 항암·항비만 효과가 있으며 들깻잎의 식물화합물 ‘파이톨’은 암세포를 없애는 자연살해 세포의 활성을 높인다고 한다. 채소에 많이 들어 있는 식이섬유소 역시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항암·항비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소에 들어 있는 유효성분을 생각하면 채식은 암 퇴치에 주요한 구실을 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채소의 항암 능력을 뒷받침하려는 장기 임상 실험은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연구자들이 건강한 사람 다수를 대상으로 식생활을 장기간 추적 조사했는데 대장암·폐암·유방암 등의 발병률에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은 것이다. 물론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채소를 다량 섭취하는 사람들은 심혈관 질환이 25%가량 적게 발생했다.

채소의 항암 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식단을 바꿀 필요는 없다. 유효성분이 인체에서 작용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탓에 입증이 곤란한 것인지도 모른다.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한 어린이가 30대 이후에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채소가 암을 막지 못한다 해도 건강을 지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채소에서 항암 성분 하나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한 뒤 식품매장에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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