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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간과 함께 ‘진화’한 먹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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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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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밀은 지금의 밀과 전혀 달랐다?… 인간에 의해 개량되어온 먹을거리의 변천사

인간은 필요에 의해 주변 사물을 바꾸고 개량한다. 그 대상은 자연물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먹을 것을 제공하는 짐승이며, 인간에게 유용한 곡물의 형질을 더욱 극대화하고 인간에게 불필요한 부분은 최대한 억제하는 방식으로 고치고 다듬어왔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먹을거리들은 그렇게 고대부터 ‘만들어져’온 것들이다. 그것들이 처음 지구상에 등장했을 때, 그러니까 인간이 먹기 이전 모습과 성질은 지금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그렇다면 과연 고대인들은 과연 어떤 것을 먹었고, 그 먹을거리들을 어떻게 인간의 식량으로 개발해왔을까.

곡물이 문명에 끼친 영향

미국 식물학자 찰스 헤이저의 <문명의 씨앗, 음식의 역사>(장동현 옮김·가람기획 펴냄·1만1천원)는 바로 이런 질문에 답해주는 책이다. 인간의 식량인 동식물들을 인간이 어떻게 활용해왔는지 그리고 선사 이래 발전해온 식량의 쓰임새와 분배에 관한 변천사를 풀이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인간이 수렵이나 채집으로 배를 채우다가 직접 농사를 지으며 식량을 생산하게 된 1만년 전부터 시작된다. 주로 식물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그것은 지은이가 식물학자여서가 아니라 인간이 대부분 식물에서 더욱 많은 단백질을 섭취하는 데 따른 것이다. 지은이는 세계 각지에서 재배되거나 사육되는 주요 식용 동식물을 종류별로 그 기원과 영양학적 효능, 그리고 이런 곡물과 식품이 인간의 문명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까지 다루고 있다.

가령 아시아 사람들의 주식인 쌀에 관한 설명에서는 쌀의 대표적 품종인 자포니카종과 인디카종 각각의 특성을 구분해주고 쌀을 재배하는 논과 쌀 자체의 장단점 등등을 낱낱이 알려준다. 지은이가 꼽는 쌀 농사의 가장 중요한 부산물 가운데 하나는 쌀이란 식물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바로 논이다. 논이 중요한 이유는 논이 물고기의 양식장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쌀은 주식으로서 밀보다 단백질 함량이 떨어지지만,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인들은 논에서 작은 물고기를 키워 단백질을 쉽게 얻는다. 또한 이처럼 논에서 물고기를 키우는 것은 쌀의 생산성을 더욱 높이는 것 이외의 부수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논에 물이 고여 있음으로 해서 모기들이 논을 번식처로 이용하기 때문에 물고기가 장구벌레를 잡아먹어 질병을 막아주는 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미국 농업의 우수성 강조

반면 서구사람들의 주식이 된 밀은 무엇보다도 번식력이 강하고 재배가 쉬운 점이 강점이어서 인간에 의해 선택됐지만 인간이 재배하기 시작되면서 인간의 입맛에 맞게 많은 변화과정을 거쳤다는 데 중점을 둬 설명한다. 야생의 밀은 열매자루가 부서지기 쉬워 낟알이 떨어져 씨앗을 퍼뜨리기 쉬웠지만 인간은 낟알을 한꺼번에 수확하기를 원했다. 곧 열매자루를 좀더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 밀농사 발전의 역사였다. 반면 밀이 어떻게 지금처럼 널리 재배되는 작물이 됐는지는 아직도 학자들에게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은이는 밀 기원에 대한 학설들과 현재 진행중인 연구도 덧붙였다.

책은 이처럼 다양한 먹을거리에 대해 개별적으로 다루면서도 전체적 관점에서 음식과 문명의 발전사를 다루고 있다. 먼저 밀과 보리가 재배되고, 이들을 보충하는 콩과 녹말식품인 감자 등이 보충된다는 식의 ‘큰 그림’ 아래에서 농업과 문명사를 풀어주는 점은 이 책의 미덕이다. 반면 지은이의 서구, 특히 미국적인 시각은 다소 거슬릴 수도 있다. 지은이가 음식물과 농업을 바라보는 관점은 주로 그 생산성과 현대과학에 의존하는 개량의 중요성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동양권의 전통적인 농법의 환경친화적, 문화인류학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다품종 대량생산을 주도해온 미국 농업의 수치상 우수성을 누누이 강조하는 편이다. 물론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 독자 눈높이에 맞춰 읽는 데 큰 부담은 없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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