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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성격과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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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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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우리 편집장은 변태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비슷하다.

지난 5월 지면개편을 앞두고 섹스칼럼을 신설하자는 주문을 할 때를 보자. 평소처럼 사람을 불러놓고 웅얼댔는데, 귀기울여 접수한 결과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아주 야하되, 품격을 잃어선 안 되며, 일정한 전문성이 있고, 글발도 살아야 한다 등등등이다. 세상에 그런 칼럼 봤는가.

잠자리에서 도저히 병립 불가능한 것들을 동시다발로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변태이거나 변태를 지향하는 자임이 틀림없다. 우리 편집장하고 자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저자가 혹시 지적·정서적·미적 감수성을 최대한 발휘하되, 수차례 쾌락의 정점에 도달하며, 매번 다른 사람과 하는 것 같은 긴장을 주는 동시에 익숙한 사람에게서만 느낄수 있는 안정감을 주는, 그런 복잡다단한 섹스를 원하는 자가 아닐까?

그런 섹스 없다. 과문한 내가 ‘모르는 세계’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나보다 몇배는 긴 섹스라이프를 갖고 불철주야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들에게서도 그런 경험담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섹스를 하면 성격이 드러난다는 사실도 우리 편집장에 대한 심증을 굳히는 데 한몫한다. 카드빚 돌려막느라 바쁘면서도 서울 평창동 북악파크텔이나 혹은 그 앞 올림피아호텔쯤의 방을 잡아야 하는 이는 섹스에서도 “당신이 최고다”라는 답변을 얻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고깃집에서 저 혼자 실컷 먹고는 “난 됐는데 더 시킬래?”라고 하는 자는 잠자리에서도 자기만 만족하면 상황을 멋대로 종료시킬 확률이 높다. 예기치 않은 하룻밤을 보낸 뒤 상대가 ‘정리와 평가’의 시간을 갖고자 전화를 하면 마치 스토킹이라도 당하는 듯 피하며 뭉개는 사람은 섹스에서도 뭉기적거리다 날밤 새우기 마련이다. 회사 동료의 팔뚝을 보고 “와, 진짜 굵다. 내 거랑 함 대보자”고 하는 자는 중요한 순간에 “와, 진짜 무겁다. 몸무게 얼마니?”라고 물어 성욕 감퇴는 물론 염장까지 지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악의 상대는 그 모든 걸 합해놓은 성격의 소유자다.

다행인 것은 잠자리 매너가 좋은 자는 일상에서도 성격이 빛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꼭 자봐야만 섹스 태도를 알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의 매듭을 잘 짓는 자는 섹스에서도 수위와 완급 조절을 잘한다. 깔끔한 사람은 피임과 그 뒤치다꺼리도 흔적 없이 잘한다. 낙천적인 자는 자기가 좀 ‘달려도’ 상대를 들볶지 않으며, 과감한 자는 할 때와 멈출 때를 알고, 모험심 많은 자는 각종 체위를 시도한다. 뿐만 아니다. 주도면밀한 자는 조명부터 이불까지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놓고, 섬세한 자는 전희와 후희에 충실하며, 믿음이 강한 자는 육체적 한계를 극복한다. 파트너가 이 중 하나라도 특징으로 갖고 있다면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다. 한번에 모든 걸 얻으려고 욕심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생에는 복병이 있다. 콘돔 사용법부터 알려주며 엉덩이 두드리고 코 닦아 그럴듯하게 키워놨더니, 뾰르르 날아가버리는 상대도 있다. 한마디로 남 좋은 일만 시킨 거다. 해도 어쩌랴. 누군가 잘 훈련시켜놓은 상대를 얻는 요행을 기대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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