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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얼마나 마시면 취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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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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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민/ 학민사 대표 · 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큰딸애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어느 날 아침 밥상에서 나에게 물었다. “아빠, 술을 몇잔 마셔야 취하는 거예요?” 신입생 환영회다, 고등학교 동문회다 연일 친구들과 어울리며 난생처음으로 소주잔을 입에 댄 모양인데, 술 좋아하는 아빠를 닮아서인지 소주 한병 이상을 마셨는데도 정신이 말짱하다는 것이다.
“음, 그건 취할 때까지 마셔봐야 아는 거다.” 동문서답 같은 내 대답에 아내와 딸 모두 박장대소했지만, 모르시는 말씀, 이것은 우문에 대한 현답이다. 곧 취하기 직전까지 마신 술의 총량을 자기 주량이라고 한다면, 주량은 체질과 체격, 나이와 성별에 따라 각각 다를 수밖에 없으니, 내가 딸애가 취할 때까지 마신 술잔을 옆에서 세어 보지 않는 이상 딸애의 주량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주량에 대해 <사기> 골계열전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순우곤은 제나라 위왕의 신하였는데, 어느 날 초나라가 제나라를 침공해왔다. 위왕은 다급한 나머지 순우곤을 시켜 조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조나라 왕이 정병 10만을 보내자 초나라가 군사를 이끌고 물러가버렸다. 위왕이 크게 기뻐하며 순우곤을 불러서 술을 내렸다.

(일러스트레이션/ 황은하)

“경은 얼마나 술을 마셔야 취하오?”
“신은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취합니다.”
“경이 한 말을 마시고 취한다면 어찌 한 섬을 마실 수 있소?”
“대왕이 계신 앞에서 술을 내려주신다면 법을 집행하는 관원이 곁에 있고 사관이 뒤에 있어서 신이 두려워하여 엎드려서 마시게 되니, 한 말을 넘지 않아서 곧 취하게 됩니다. 만약 어버이에게 귀한 손님이 있어 신이 옷깃을 바르게 하고 꿇어앉아 앞에 모시고 술을 대접하면서, 때로 나머지 술을 받고 술잔을 받들어 손님의 장수를 빌어 자주 몸을 일으키게 되면 두 말이 지나지 아니하여 곧 취하게 됩니다. 만약 사귀며 놀던 벗과 오래 서로 보지 못하다가 졸지에 만나게 되면 즐거워서 지난날의 일들을 말하고 사사로운 정회를 펴게 되니 대여섯 말을 마시면 곧 취합니다. 만약 마을의 모임으로서 남녀가 섞여 앉아 서로 상대방을 머물러서 술을 돌리고, 쌍육과 투호를 벌여서 상대를 구하고, 남녀가 손을 잡아도 벌이 없고, 눈이 뚫어져라 바라보아도 금함이 없으며, 앞에서는 귀고리가 떨어지고 뒤에서는 비녀가 어지러이 흩어지는 경우면, 신은 이런 것을 좋아하여 여덟 말 정도를 마실 수 있으며, 두세번 취기가 돌 것입니다. 날이 저물어 술자리가 파하게 됩니다. 술병을 모으고 자리를 좁혀서 남녀가 동석하고 신발이 서로 뒤섞이며, 술잔과 그릇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마루 위의 촛불이 꺼집니다. 주인이 신만을 머물게 하고 다른 손님은 배웅합니다. 엷은 비단 속옷에 손이 닿으면 가볍게 향기가 움직입니다. 이런 때를 당하면 신의 마음이 가장 기뻐지며, 한 섬은 마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술이 극도에 이르면 어지럽고, 즐거움이 극도에 이르면 슬퍼진다’고 하는데, 모든 일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곧 사물이란 극에 이르면 안 되며, 극에 이르면 반드시 쇠한다는 것을 들어서, 주색을 좋아한 위왕을 넌지시 경계한 것인데, 이로부터 위왕이 밤새워 술 마시는 것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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