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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캐릭터오디세이/ 사랑에 목말라하는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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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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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빅 히어로>의 존 버버, <잔다르크>의 잔다르크

(사진/리틀 빅 히어로)
영웅의 으뜸가는 요건이라면 물론 보통 사람이 따를 수 없는 탁월한 능력과 덕성이겠지요. 그러나 영웅을 완성하는 것은 대중의 숭배입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헥토르의 유해가 트로이 진영에 실려 오자마자 시인들이 불려와 주검을 둘러싸는 대목은 그런 점에서 상징적입니다. 자고로 사람들은 비범한 인물의 측근에서 흘러나온 소문 위에 내심 귀인에게 바라는 면모를 덧붙이고 가필해 영웅담을 엮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설화 속 영웅들의 팔자는 대동소이하지요. 고귀한 피를 이어받고 변방에서 태어나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출한 다음 방랑을 거듭하다가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더라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옛 가객들을 대신해 현대의 영웅에게 송가와 만가를 불러주는 것은 언론입니다. <리틀 빅 히어로>(1992)는 영웅을 점지하는 전파의 권력을 보여주지요. 좀도둑질과 사기로 살아가는 버나드(더스틴 호프먼)는 재판 도중 변호사의 지갑을 슬쩍할 만큼 한심한 남자지만 어쩐 일인지 위기만 닥치면 투덜거리면서도 남을 돕는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폭풍우치던 어느 밤, 그는 비행기 추락을 목격하고 사람들을 구하지만 “나서지 않는 게 이득”이라는 평소 신조에 따라 황급히 사라집니다. 현장에 떨어진 구두 한짝을 들고 영웅을 찾아나선 방송사가 100만달러 상금을 내걸자, 버나드와 우연히 마주쳤던 떠돌이 존 버버(앤디 가르시아)가 나머지 구두를 들고 나타납니다. 미남인데다 소박하고도 감동적인 화술을 갖춘 버버는 브라운관에서 대중의 총애를 차지하지요. 진짜 히어로 버나드는 뒤늦게 진실을 폭로하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맙니다. 버버야말로 대중이 마음속에 그려온 영웅과 닮은 사내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건 누가 정말 훌륭한 행위를 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포토제닉한 영웅 역할을 잘 연기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고, 그런 연기에 소질도 의욕도 없는 버나드는 깨끗이 물러난 셈입니다.

<리틀 빅 히어로>의 버버가 대중의 주문을 정확히 이행하는 영웅이라면 <잔다르크>(1999)의 잔(밀라 요보비치)은 신이 준 소명에 몸을 불태웁니다. 뤽 베송 감독은 잔다르크를 마치 흠모하는 스타로부터 개인적 부탁을 받고 신열에 들뜬 10대 소녀처럼 묘사하지요. 그럴 만도 합니다. 그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절대자가 아니라 외롭고 두려울 때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말을 걸어오는 다정한 신이니까요. 지옥 같은 전장에서 잔은 오로지 신이 보시기에 자신이 얼마나 흡족한 존재일까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그 때문일까요? <잔다르크>의 전장에는 민중의 모습이 없는 반면,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내내 드리워져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 잔은 고해하지요. “절망과 복수심으로 싸웠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구원으로 믿고 계속 피흘리게 했습니다. 저는 오만하고 편협했으며 잔인했습니다.” 하지만 쓸쓸한 각성 뒤에도 화형의 순간 잔의 시선이 고정된 곳은 십자가입니다.

소녀 잔은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초인이 됐지요. <리틀 빅 히어로>의 버버는 가짜였지만, 아무도 자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기에 타인을 도움으로써 사회와의 끈을 찾으려 했다는 그의 고백은 진짜 영웅 버나드의 진심이기도 합니다. 이런 영웅심은 치기와 종이 한장 차이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우리를 살게 하는 큰힘인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영웅이건 범인이건 말입니다.

필름누에verme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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