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꼴 상자를 뛰쳐나온 ‘한겨레체’의 신문활자 혁명… 디지털 텍스트 문화 주도하며 진화할 듯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한 중견 언론인은 ‘눈물의 신문 블루스’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를 맨 처음 그 네모난 틀 속 활자매체의 황홀경으로 안내한 것은 무엇이었던가?”라고 자문했다. 그만큼 네모글꼴은 신문의 상징 구실을 했다. 한글전용 가로쓰기가 대세를 이뤄도 갑갑한 네모글꼴을 무너뜨리는 것은 금기에 속했다. 한때 전국의 신문사가 가로쓰기의 가독성을 높일 수 있는 공동연구소를 설립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네모글꼴의 오래된 ‘권위’ 앞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신문 글꼴이 네모틀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놀라운 현실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점 하나 어디에 찍어야 하나” 놓고도 논쟁 지난 5월11일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한겨레체’ 개발자들이 하이픈(-) 처리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한겨레> 창간 17주년 기념호 본문에 탈네모글꼴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국내에서 일간지 사상 처음으로 가로쓰기를 도입한 <한겨레>가 탈네모꼴 글자로 신문 본문 글꼴의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한겨레체 개발을 이끈 윤강명 아트팀장은 “인쇄에 필요한 2350자를 만든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문에 사용하는 특수 기호들을 처리하는 데 애를 먹는다. 신문에 탈네모글꼴을 도입한 전례가 없기에 점 하나를 어디에 찍어야 하는가를 놓고도 갈등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논쟁이 필요 없다. 중성이나 종성으로 끝나는 글자의 차이를 분석해서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신문에 탈네모글꼴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국내 신문들이 글꼴의 변화를 시도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예컨대 글자의 폭을 좁히거나 넓히고, 글자나 행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네모글꼴에서 벗어나는 것은 ‘권위지’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비칠 정도였다. 지난 1985년 안상수체를 발표하며 한글 디자인을 네모틀에서 해방시킨 안상수 교수(홍익대·시각디자인)마저도 한 줄로 나란히 정렬되지 않는 글꼴을 종합일간지에 적용하지 못했다.
애당초 <한겨레>가 지면 디자인을 바꾸기로 결정했을 때 네모글꼴 ‘탈출’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글꼴에 날개를 달면 지나치게 가벼워 보일 수 있다는 통념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글씨미디어 홍동원 대표가 “글자꼴의 개성을 살려 신문이 표정을 갖게 하자”고 제안하면서 탈네모글꼴 지면이 구체화됐다. 이미 1990년대 초반 곽재구 시인의 동화 <아기 참새 찌꾸>를 탈네모글꼴로 펴내는 등 한글에 생기를 불어넣어온 홍 대표는 “신문마다 한글의 과학성을 알리면서도 실제로는 과학화를 가로막아왔다”고 말했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서 네모글꼴은 효용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디지털에 의한 융합을 꾀하려면 네모틀을 벗어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탈네모글꼴은 명조와 고딕의 ‘독재’를 허무는 데 한계를 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네모틀에 한 글자씩 구겨넣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다 보니 ‘빨래줄에 걸렸다’(주요한 박사)거나 ‘뚱뚱홀쭉 뚱뚱홀쭉’(한글자형학자 송현)하다는 탈네모글꼴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탓에 한글 창제 당시 조형 원리에 따라 선보인 탈네모글꼴은 예술작품으로 둔갑해 대중에겐 홀대를 받았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포토그라퍼(fontographer)나 폰트매니아(fontmania), 폰트랩(fontlab) 등의 디지털 서체 개발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면서 저마다 개성을 간직한 탈네모글꼴이 대거 선보이기도 했다. 다만 한글을 폰트로 만드는 전용 툴이 없기에 ‘개인 글꼴’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읽는 속도 상승… 위성방송·휴대전화 인기
현재 한글의 탈네모글꼴은 디지털 환경에서 때를 만난 듯 진화의 경로를 밟고 있다. 신문과 방송뿐만 아니라 통신까지 아우르는 미디어 융합 환경이 탈네모글꼴 수요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텔레비전은 텍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그래픽 데이터를 스크린에 펼쳐 보인다. 여기에서 한글 폰트는 텔레비전의 메모리나 셋톱박스의 메모리에 내장된다. 네모글꼴 한 뭉치의 데이터 용량은 1.8메가(영문글꼴 한 뭉치는 55k)나 된다. 기역(ㄱ)만 해도 변화 형태가 18개 이상인 상황에서 컴퓨터상에서 입출력이 가능한 1만1172자를 네모틀에 넣으려면 어쩔 수 없이 데이터 용량이 늘어난다.
요즘 방송에서 탈네모글꼴 활자의 노출 빈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탈네모글꼴은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에서 디지털 방송용으로 탈네모 한글꼴 ‘티비돋움체’를 개발하면서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김종덕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텔레비전의 특성을 반영한 탈네모글꼴에 대한 선호도가 네모꼴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네모글꼴은 눈에 익숙하지만 읽는 속도가 느리다. 획이 적으면 엉성해 보이고, 많으면 뭉쳐서 보기에 사납다. 네모틀을 벗어나면 글자의 내적 공간을 자유롭게 변형할 수도 있는 등 글자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 탈네모글꼴로 디자인의 기초를 다질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에 따라 휴대전화에 문자 정보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탈네모글꼴이 디지털 텍스트 문화를 주도할 태세다. 만일 네모글꼴을 휴대전화에 적용하면 많은 데이터 용량으로 인해 ‘폰체’를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탈네모글꼴은 수십개의 폰체가 내장되더라도 데이터 용량이 수백k 수준이면 된다. 여기에 한글 폰트 전용 툴이 개발되면 67개의 자소를 디자인해 자신만의 글꼴을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저장할 수 있다. 한글이 탈네모글꼴로 디지털 세례를 받으면서 급속하게 사용자층을 넓혀 표준화된 글꼴로 자리잡아가는 형국이다.
사실 <한겨레>는 네모글꼴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탈네모글꼴의 요소를 오롯이 반영하지는 못했다. 글꼴에 따른 폭과 높이의 차이를 부분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이는 급격한 변화에 따른 독자들의 ‘충격’을 줄이고자 수년에 걸친 장기적인 진화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탈네모글꼴의 <한겨레>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네모글꼴에 길들여진 눈이 틀 속의 균형감의 매력에서 단박에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홍동원 대표는 “동화책을 통해 탈네모글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적응 과정이 필요 없고, 첫 경험인 사람일지라도 편안함을 느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면서 “한글의 과학성이라는 말을 이제 누구나 실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앞으로 신문 본문 글꼴의 정형화된 틀을 깬 한겨레체는 대중적으로 보급될 예정이다. 특수약물코드를 제외한 글꼴을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컴퓨터나 휴대전화에서 표정을 가진 문자 예술의 마력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타이포그래피의 궁극적 목적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명제를 탈네모글꼴로 실현하는 셈이다. 정보전달이라는 지극히 제한된 기능에 만족했던 신문 글꼴의 진정한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인지 모른다. 물론 신문 글꼴의 혁명은 한글을 네모틀 밖에서 살아 움직이는 감정적인 도구로 느끼려는 독자들이 있어야 실현될 수 있다.

“점 하나 어디에 찍어야 하나” 놓고도 논쟁 지난 5월11일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한겨레체’ 개발자들이 하이픈(-) 처리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한겨레> 창간 17주년 기념호 본문에 탈네모글꼴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국내에서 일간지 사상 처음으로 가로쓰기를 도입한 <한겨레>가 탈네모꼴 글자로 신문 본문 글꼴의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한겨레체 개발을 이끈 윤강명 아트팀장은 “인쇄에 필요한 2350자를 만든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문에 사용하는 특수 기호들을 처리하는 데 애를 먹는다. 신문에 탈네모글꼴을 도입한 전례가 없기에 점 하나를 어디에 찍어야 하는가를 놓고도 갈등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논쟁이 필요 없다. 중성이나 종성으로 끝나는 글자의 차이를 분석해서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신문에 탈네모글꼴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국내 신문들이 글꼴의 변화를 시도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예컨대 글자의 폭을 좁히거나 넓히고, 글자나 행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네모글꼴에서 벗어나는 것은 ‘권위지’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비칠 정도였다. 지난 1985년 안상수체를 발표하며 한글 디자인을 네모틀에서 해방시킨 안상수 교수(홍익대·시각디자인)마저도 한 줄로 나란히 정렬되지 않는 글꼴을 종합일간지에 적용하지 못했다.



<한겨레>가 창간 17돌을 맞아 국내 언론 사상 처음으로 탈네모글꼴 본문 활자를 선보였다. (사진/ 윤운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