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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류 열풍의 ‘변두리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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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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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골 서민에게 환대받은 한국 연예인들… 치밀한 일본 일정에 비해 한국측 준비는 아쉬움 남겨

▣ 후쿠시마= 글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굴곡 많은 야산 사이로 오밀조밀하게 농경지가 자리잡은 일본 후쿠시마현. 산 중턱을 수평으로 끊어 만든 비행장의 평지가 도드라져 보인다. 시끄러운 한-일 문제는 모른다는 듯 조용하게 엎드린 이곳에 5월5일 탤런트 최불암, 정동환, 지성, 김소연씨와 모델들을 실은 전세기 한대가 도착했다.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사)웰컴투코리아 시민협의회(회장 최불암)와 우쓰쿠시마 한국문화교류사업실행위원회가 공동 주최하는 앙드레 김 패션쇼가 5월7일 고리야마시 빅파레트 컨벤션센터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사토 에이사쿠 지사의 의지가 큰 역할

도쿄에서 차를 타고 동북 방향으로 2시간30분가량 달리면 도착하는 이곳은 주요 산업이 농업·공업으로, 스키장·골프장·온천이 곳곳에 있지만 유별난 명승지는 아니다. 고리야마시의 서점, 회전초밥집, 편의점들도 대부분 단층건물로 지어질만큼 한산한 고장이다. 현 전체 인구가 200여만명에 불과한 이 곳에서 한류 열풍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NHK교향악단의 내한공연이 무기한 연기되고 시마네현과 경상북도의 자매결연이 끊기는 가운데에서도 사토 에이사쿠 후쿠시마현 지사의 의지는 강력했다. “국가보다 시민 차원에서의 교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현내 경찰과 사설경비원을 총동원하는 ‘안전 민감증’을 보이면서, 문화 오지에 방치된 현민들을 위한 빅 이벤트를 성사시키고자 했다. 교류의 물꼬를 튼 최불암씨도 “성과는 수치로 측정될 수 없지만, 한국 드라마를 사랑해주는 이들에게 은혜를 갚는 건 중요한 일이다. 도쿄에서 행사를 해봤자 리액션이 없다. ‘변두리 작전’을 쓰는 거다”라며 후쿠시마와 인연을 맺은 이유를 설명했다.

5월6일 후쿠시마 쓰루가성에서 열린 기자회견. 탤런트 지성씨(오른쪽에서 다섯 번째)와 김소연씨(왼쪽에서 다섯 번째)외에 많은 한국 연예인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준비된 이 행사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지역 언론사·대학·경제단체·시민단체가 모여 구성된 실행위원회에서 설계됐다. 애초 1번의 기자회견과 패션쇼를 염두에 두고 5천만엔의 예산이 책정됐으나, 스타 토크쇼, 미니 패션쇼, 전통무용 공연 등 행사 가짓수가 늘면서 추가 기금이 조성됐고, 결국 현청 직원의 입에서 “내 일생 최대의 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규모가 큰 풀뿌리 행사로 거듭나게 됐다.

변방의 행사를 가능케한 결정적인 하드웨어는 비행장과 컨벤션센터였다. 가까운 센다이 시 공항을 이용했던 후쿠시마현에 공항이 들어선 건 불과 10여년 전인 1993년. 서울·상하이에 직항노선이 개설된 건 1999년이었다. 그 뒤 2001년 후쿠시마 미래박람회에 최불암 회장이 초대되면서 인연이 시작되고, 전라도·경기도와의 교환방문, 판소리 공연 등이 이어졌다. 여기에 수용인원 3천명의 컨벤션홀은 파리·시드니·카이로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앙드레 김을 후쿠시마라는 낯선 동네에 초대할 수 있게 했다.

치밀한 구성 덕분에 한국 연예인들은 현청의 바람에 맞춰 적재적소에 투입됐다. ‘차를 즐기는 김소연씨와 지성씨=아이즈와카마쓰시 쓰루가성 ‘린카쿠’(5월7일 <마이니치신문>), ‘<겨울연가> 출연자 등 토크’(5월7일 <후쿠시마민보>), ‘‘제2의 욘사마’들이 기념촬영과 다도체험’(5월7일 <아사히신문> 지방판) 등 ‘스타의 기사화’를 끌어내는 ‘인사말+사진촬영’ 패키지 일정이 진행됐고, 한국 연예인과 후쿠시마현의 접점은 늘어갔다. ‘한류스타가 다녀간 온천장’이라는 팻말이 내일 당장 걸려도 어색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한류스타는 책임감을 느꼈다

이에 비해 한국 연예인들의 대응은 아쉬웠다. 문화·예술계 민간외교 단체가 정부 주도 행사와 달리 상대국의 초청으로 예산을 지원받으며 행사를 치루는 점은 긍정적이었지만, 세심한 배려는 부족했다.

일본쪽 실행위원장이 인사말을 한국어로 준비해오고, 일본여성들이 한국 스타를 만난다는 설렘에 기모노를 입고 토크쇼 및 리셉션에 왔지만, 한국 쪽은 ‘곤니치와’를 ‘곰방와’라고 한 최불암씨의 가벼운 실수를 제하고는 상대국의 언어를 드러낸 적이 없고, 한복을 따로 입은 연예인도 없었다. 이런 단순한 비교를 넘어 몇몇 연예인들이 6일밤 리셉션 장을 일찍 떠나버리면서 ‘충성팬’을 확보할 기회를 챙기지 못하거나 단순한 한류 스타의 발언들이 이어지면서 아쉬움이 더해졌다.

이번 행사의 주인공인 지성씨는 “욘사마도 아닌데 많이 반가워해줘서 책임감이 느껴졌다. 패션쇼 출연만 알고 왔는데 갑자기 다른 일정들이 생기면서 난감했고, 내가 여기서 무얼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 한국 홍보를 좀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역사 교과서’보다 강한 힘을 지닌 ‘한류스타’를 국가 홍보 차원에서 기획하는 일을 소속사나 행사 주관단체에 기대하긴 어렵다.

5월5일 후쿠시마 공항에서 한류 스타를 환영하는 일본인들. 5월7일 열린 한국 의상 체험(가운데 사진)과 한류 스타 사진전도 인기였다.

그러나 7일 빅파레트 센터에서 열린 행사들은 한-일 양쪽에 큰 성과를 남겼다. <대장금> 시식코너, <겨울연가>에 출연한 정동환씨의 사인회 등은 성황이었고, 관련 심포지엄은 성공적이었다. 기조 강연에 나섰던 조규철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연예인을 매개로 해서 흥미를 끌고, 심포지엄에 시민 참여를 유도한 전략이 좋다”고 평가했다. 저녁의 패션쇼는 후쿠시마 현민들의 감동과 흥분을 남기며 무사히 치러졌다.

행사 준비에 참여한 후쿠시마 한국어·한국문화 네트워크의 정현실 대표는 “17년 동안 도쿄 생활을 하다가 2000년 후쿠시마현에 와서 한국어 교실을 열고 2~3명의 신청자를 기대했더니 첫날 15명이 오더라. 김치를 옆집 할머니께 드렸더니 당장 시어머니·며느리 5쌍이 찾아와서 가르쳐달라고 할 만큼 호응이 대단하다”며 이번 행사에도 회원 150명이 자발적으로 자원봉사 중이라고 전했다.

이런 행사는 후쿠시마 현에 거주하는 재일동포에게 큰 힘이 된다. 시라카와시에 거주하는 백승옥(48)씨는 “22살 때부터 여기서 살아왔는데, 이렇게 큰 교류행사는 처음이다. 민단에선 500만~600만엔의 후원금을 보탰고, 일본 사람들에게 더 보여주고 싶어서 패션쇼 표도 양보했다. 40, 50대들은 차별을 받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걱정을 하는데, 이미지를 바꿔준 배용준이라는 배우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감사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사장 앞에 차 한대가 와서 조용히 시위를 하고 사라진 일 외엔 별다른 우익단체의 움직임도 없었다. 심각한 토론을 펼치지 않는 이상 역사 문제는 행사의 열기에 눌려 수면 위에 떠오르기 어려웠다. “서로 알게 되고 좋아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냐"는 순수한 낙관론이 한국 문화에 호기심을 보이는 일본 서민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습관 교환? 빈 잔을 머리에 터는 일본인들

“사와이상, 사와이상, 자 한잔.”
모든 일정이 끝나고 행사 관계자들이 모인 늦은 밤, 후쿠시마 현청의 한 직원이 한국식 폭탄주를 자연스럽게 받아 마시고는 ‘비었다’는 표시로 잔을 뒤집어 머리 위에 턴다. 그 자리의 어느 한국인도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누가 음주 문화 교류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는지 잔을 이어가는 일본인마다 계속 머리에 잔을 털어낸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습관과 양식의 교환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는 후쿠시마 교류의 밤은 점점 깊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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