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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먹이를 찾아 웹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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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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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먹이찾기 행동을 정보탐색에 적용… 종합적 판단에 의존하는 등 유사

사진/네티즌들의 인터넷 정보탐색은 야생의 동물들이 먹이를 찾는 과정을 닮았다.(강창광 기자)
PC방에 앉아서 웹 서핑(web surfing)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왠지 외로워 보인다.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그런 모습을 보면서 추운 겨울날 먹이를 찾아 황무지를 헤매는 승냥이나 하이에나를 연상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상상을 했다면 여러분의 예감은 비교적 적중한 셈이다. 먹이찾기와 웹 서핑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무척 흡사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발표된 기사에 따르면 세계 인터넷 사용인구가 드디어 4억명을 돌파했고, 우리나라도 2000년 8월 말 현재 164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21세기의 생활방식에서 인터넷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더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는 원천에서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웹 서핑을 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의 피터 피롤리(Peter Pirolli)와 스튜어트 카드(Stuart Card)도 대표적인 연구자이다. 이 두 사람은 생물학에서 70년대에 개발되었던 동물의 먹이찾기(foraging) 행동에 대한 이론을 정보탐색 방식에 도입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먹이 찾을 가능성 낮아지면 지역 옮겨


이 이론은 기본적으로 비용편익(cost-benefit) 분석을 기초로 삼는다. 모든 동물은 먹이를 찾을 때 자신이 먹이를 찾는 데 투여하는 비용과 먹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저울질하면서 먹잇감과 탐색활동의 패턴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가령 토끼와 들쥐 두 종류의 먹잇감이 눈앞에 있을 때 하이에나는 어떤 먹이를 택할까? 얼핏 생각하기에는 당연히 큰 먹잇감을 택할 것 같지만 동물들은 사냥에 들어가는 비용(에너지)에 견주어 판단하기 때문에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작은 먹이를 선호할 수 있다. 또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가면서 풀을 먹는 동물들의 경우에도 이동 시기를 선택하는 기준은 이러한 비용편익 분석에 따른다. 가령 한 지역에서 드문드문 남아 있는 풀이나 나뭇잎을 찾아 먹으면서 지낼 것인가, 아니면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상대적으로 먹잇감이 풍부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먹이찾기 성공률이 한계비율 이하로 떨어질 때이다. 따라서 원하는 먹이를 찾을 가능성이 어느 비율 이하로 떨어지면, 설령 그 지역에 먹이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게 된다는 것이다.

피롤리와 카드는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서 실제로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들은 인지과학의 적응적 사고특성(ACT: Adaptive Chracter of Thought)이라는 이론을 기반으로 사람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가상의 컴퓨터 모형을 통해 정보탐색의 경로를 조사했다. 가령 100만개 이상의 다양한 자료들 속에서 컴퓨터 모형이 어떤 방법과 원칙에 의거해서 자료를 탐색하는지 조사하는 식이었다. 이 실험으로 만족한 결과를 얻은 두 사람은 자원자들을 모집해서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비슷한 실험을 했다. 여기에서도 자원자들은 그들이 세운 모형과 거의 비슷한 단계를 거쳐 원하는 정보를 찾아냈다. 결국 21세기의 정보탐식자(informavore)들은 야생의 동물이나 우리의 먼 선조들이 진화의 오랜 세월 동안 몸에 익힌 먹이탐색의 원칙을 정보탐색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이들 두 사람의 이론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비용편익 분석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비용편익 분석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우선 정보탐색자가 자신이 서핑하는 사이트들에 대한 전체적인 상황(즉, 거기에 어느 정도의 정보가 있는가)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경험을 통해 알겠지만, 사람들의 판단에는 내용에 대한 고려 이외에도 웹 디자인, 눈을 끄는 독특한 요소, 개인적인 취향 등이 다양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사이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한 사이트에서 머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찬찬히 내용을 살필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자취 남기는 곤충의 모습을 닮을 건가

사진/정보에도 냄새가 있을까. 개미들은 냄새를 맡아 먹이를 찾아간다.
그런 면에서 동물의 먹이찾기와 웹 서핑은 양쪽 모두 분석적인 접근보다는 종합적인 판단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공통점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사람도 오랫동안의 수렵채취 생활에서 여러 가지 요소들을 순간적으로 종합해서 직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사고에 익숙하다고 한다. 논리적인 분석은 언어와 문자를 통해 사고하기 시작한 극히 최근의 일이며, 우리의 뇌 구조에 그다지 적합한 사고방식도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 주장에 따르면 최근 비주얼 양식이 텍스트 양식을 능가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직관적 이해와 종합적인 판단이 다시 중요한 사유의 방식으로 복권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웹 서핑 방식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에서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암시는 동물들이 먹이찾기나 짝짓기에서 흔히 사용하는 ‘냄새 찾기’, ‘자취 찾기’와 같은 전략이 정보탐색가들에게 유용하며, 역으로 많은 사람을 자신의 사이트로 불러모으려는 사람들은 ‘정보 냄새 풍기기’와 ‘정보 자취 남기기’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세기의 정보탐색자는 땅바닥에 귀를 대 소리를 듣고 배설물의 온기로 추적 대상과의 거리를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부시맨이나 화학물질로 자취를 남기는 곤충의 모습을 닮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김동광/ 과학평론가·과학세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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