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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대포’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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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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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민/ 학민사 대표 · 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60년대 후반, 신촌 로터리에서 연세대쪽으로 가자면 굴다리 오른쪽에 조그마한 대폿집이 하나 있었다. 그 집은 기찻길 둑에 잇대어 얼기설기 지은 판잣집이었는데, 한가운데에 콘크리트 비비는 데 쓰는 큰 철판이 놓여 있었고, 그 밑에서는 두개의 연탄 화덕이 항상 철판을 달구었다.

이 집은 선술집이었다. 점심 때나 저녁 때나 항상 손님들이 철판을 중심으로 빙 둘러서서 안주를 구워가며 막걸리 대폿잔을 기울였다. 이 집에는 특별히 주방이 없었다. 포장마차의 안주 차림처럼, 고추장 양념 돼지고기, 꽁치, 곰장어 등을 쟁여놓고 손님의 요구에 따라 철판에 올려주면 모두들 알아서 구워먹었다. 이 집의 ‘손님’은 대부분 1960년대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농촌에서 쫓기듯 올라와 엿장수, 청소부, 날품팔이 등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도시 주변부 인생들이었다.


나도 군대 가기 전까지 이 집을 자주 애용했다. 날씨가 꾸무럭거리는 날에는 어김없이 친구들과 이 집엘 갔다. 철판에 올려놓아 따뜻해진 도시락에, 돼지고기 한점 구워놓고 대포 한잔 마시는 그 기분이라니…. 오후에 강의실 뒷자리에 앉아 있으면 나른한 취기 위에 교수님의 목소리가 자장가로 들리기 일쑤여서 나는 그해 다섯째 시간이었던 경제수학을 ‘권총’ 찼다. 또 친구들과 발동이 걸리면 그대로 눌러앉아 주변부 인생들의 현장 이야기로 강의를 대신하기도 했다.

대포는 큰 술잔을 뜻한다. 그러므로 대폿집은 큰 잔으로 술을 전문으로 파는 술집을 말한다. 그러나 대포는 “대포 한잔 하자”는 말처럼 술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대개 대포를 한글로 풀이하지만, 중국의 고사에서 연유한다고 보는 설도 있다.

조광윤은 송나라의 개국 황제다. 후주 세종 정권에서 전전도지휘사 등의 관직을 지냈던 그는, 공제 때 송주귀덕군절도사로 있으면서 960년 진교에서 반란을 일으켜 황제에 올랐다. 역사에서는 이를 ‘북송’이라 부른다.

나라가 안정되면 창업 시기 장수들에 대한 뒤처리가 항상 고민되는 법. 조광윤은 거의 매일 무장들을 궁에 불러들여 주연을 베풀었다. 그러고는 석수신, 왕심기 등 장령들에게 고관후록의 조건으로 병권을 내놓도록 압력을 가했다. 결국 이들은 병을 핑계로 군대의 요직을 내놓았다.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이라 하니, 곧 술잔으로 병권을 내놓게 한 것이다. 조광윤은 또 전쟁의 살벌한 분위기를 일소하고 온 나라에 태평성대의 기상을 펴보이기 위해 민간의 유력자들에게도 주식(酒食)을 크게(大) 베풀어(鋪) 마음껏 놀게 하였으니, 이것이 송태조의 ‘대포’(大鋪) 고사다.

세종 때의 청백리이자 명재상인 유관(柳寬)이 ‘대포의 고사’를 내용으로 상소를 올리자, 세종이 이를 받아들여 음력 3월3일과 9월9일을 명절로 삼아 대소 관료들에게 경치 좋은 곳을 골라 술을 마시고 놀며 즐기게 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대포’가 술을 뜻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배주’(杯酒)로 무장들의 기를 꺾고, ‘대포’로 문인들을 술에 절게 한 때문인지, 송나라는 초기부터 문약(文弱)에 흘러 개국 167년 만에 걸안족 금나라에 멸망했다. 술이야말로 잘못 다루면 경국지물(傾國之物)임이 증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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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민의 술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