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상견례 때문에 수염을 깎기 전 신윤동욱 기자의 모습. (사진/ 곽윤섭 기자)
한달 가까이 기른 수염을 며칠 전 깎았다. 여동생 결혼식을 위한 양가 상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개길까’ 생각도 했지만, 막상 일이 닥치니 깎게 되었다. 상대 집안 어른들이 내 인상을 안 좋게 보는 것은 (사실이니까) 괜찮지만, 나 때문에 동생 이미지까지 안 좋아지는 건 심히 걱정됐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깎으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괜한 자기검열에 며칠을 고민했다. 버티고 버티다가 상견례 출발 5분 전, 수염을 면도기로 밀었다. 길어서 잘 깎이지도 않았다. 어느새 수염을 깎은 내 모습이 약간 낯설었다.
올 초부터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보기 싫은 ‘부위’에 난 수염만 깎고 그냥 기르는 방식이었다. 방치된 수염은 일주일이 지나니 부담스러워졌다. 수염을 다듬는 ‘조치’가 필요했다. 솔직히 귀찮았다. 마땅히 정보도 없었다. 다행히 짧은 수염이 유행이었다. 일주일쯤 되면 미련 없이 깎았다. 나의 게으름을 눈치챈 듯 여자후배가 물었다. “선배, 수염 기르는 거예요, 안 깎는 거예요?” 기르는 것이라 우기고 싶었지만, 안 깎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다가 4월 초 타이 방콕으로 휴가를 떠났다. 수염을 깎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길러버렸다. 수염은 유통기한을 넘겨 2주 넘게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예전에는 나를 보고 “중국 사람이냐?”고 물어보던 타이 사람들이 수염을 기르니까 “일본 사람이냐”고 물었다. 마음대로 ‘스타일이 있어 보인다’로 해석했다. 회사로 돌아와서도 반응이 좋았다. 내친 김에 한달 가까이 길러버렸다.
수염을 기르는 데 일년이 걸렸다. 사실 지난해 초부터 수염이 기르고 싶었다. 그런데 수염 “그까이꺼” 하나 기르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주위 ‘넘’들의 반응이 두려웠다. 난데없이 튀기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평범하게 늙어가는 것도 죽음이긴 마찬가지였다. 트렌드는 분명했다. 얇은 뿔테 안경에 까끌까끌한 수염, 약간 헐렁한 청바지. 거리에서, 클럽에서 ‘새끈해’ 보이는 남자들에게서 내가 뽑아낸 코드였다. 어느 날 <아메리칸 뷰티>를 보다가 대사 한마디가 마음을 울렸다. “평범한 것만큼 슬픈 것은 없어요.”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 날 시작했다. 물론 안 깎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수염을 기르면서 회사 들어가기가 민망했다. 주변에서 열화와 같은 반응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냉정한 반응이 두려워, 야멸친 코멘트를 ‘날릴’ 것 같은 사람이 보이면 슬쩍 피해가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가기도 했다.
역시 안 하던 짓 하면 시련을 겪게 마련이다. “어, 선배~ 수염 길러요?” 오랜만에 보는 후배들은 반드시 물었다. 물론 왜 기르냐는 뜻이다.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 무마용 대답이 필요했다. “터프하지 않냐?” 일부러 오버하며 말했지만, 절반은 진심이었다. 그런데 개그가 통하지 않았다. 하드코어 개그로 더욱 세게 밀어붙였다. “야, 섹시하지 않냐?” 잘못 사용된 하드코어 개그는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그만이다. 사람들은 웃지도 않고 어이없다는 표정만 지었다. 속으로 ‘쩝∼ 잘못했어’라고 용서를 비는 순간, “선배, 안 어울려요”라는 말이 귀청을 때렸다. 수염에 대한 최악의 코멘트는 “임꺽정이냐?”였다. 한달 가까이 수염을 길렀을 때다.
문제는 수염에 대한 찬반이 50대50으로 양분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현상을 두고 다른 분석을 하기도 하고, 같은 사람이 다른 말을 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검은 수염 때문에 넓은 이마가 더 환해 보여”라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이마가 훤한 사람한테 수염이 잘 어울리는구나”라는 솔깃한 칭찬을 했다. 정말 헷갈린다. 네버엔딩 일희일비는 계속된다. 한입으로 두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의 ‘헤어디자이너 김 선생님’이다. 이 ‘언니’는 머리를 깎으러 가자 “어? 수염 기르세요? 멋있어요!”라고 하더니, 한달 뒤에는 “어? 수염 기르세요? …” 하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언니의 진심은 무엇인가? 소심한 성격에 따져묻지도 못하고 그저 궁금증에 상처만 받았다.
나에게 수염은 심지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으로 떠올랐다. 칭찬 한마디가, 격려 한말씀이 목마른 나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시면 그분은 무조건 ‘리버럴’이다. 하지만 ‘꼴값을 떨어라’는 떫은 표정으로 지나가거나 “면도기 없어?”라는 썰렁한 멘트를 날리는 분들은 감성의 보수로 재단된다. 물론 감성의 좌우는 이념의 좌우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가혹한 멘트를 날리고 가는 일부 좌파들은 ‘꼰대 좌파’로 찍힌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머리의 진보보다 가슴의 리버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은 스타일이 리버럴하지 않으면 진보도 해먹기 힘든 시대라고 믿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마이 웨이’를 갈 생각이다. 귀에 쟁쟁한 말들을 지워버리고, ‘남자 되기’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각오다. 오늘도 거울 앞에서 다짐한다. “터프한걸, 섹시한데 뭘!” ‘자뻑’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