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용병들 상향평준화 현상… 토종선수들과 조화시키는 용병술이 승부를 가른다
지금 LG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백인선수’ 에릭 이버츠. 현재 한국프로농구리그(KBL)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선수 20명 중 유일한 백인이다. 이버츠는 하마터면 한국땅을 밟지도 못할 뻔한 사연을 갖고 있다. 1997년 2월 프로농구 원년리그를 앞두고 7개 구단(현 10개 구단)은 미국 LA에서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을 열었다. 당시 이버츠는 유연한 슛감각을 갖고도 한국감독들의 눈에 띄지 못했다. 신청자의 대부분을 차지한 흑인선수와 섞여 연습게임을 했으니 아무래도 탄력과 힘이 달려보이는 그가 돋보일 리 없었다. 그래서 팀당 2명씩 지명하는 순서에서 뒤로 밀렸고 끝내 이름을 호명받지 못했다. 한 감독의 후일담이 기억난다.
선발-퇴출을 반복한 악순환
“이버츠는 아깝게 탈락했다. 맨 마지막에 비슷한 기량의 선수가 남았는데 이왕이면 검은 선수가 흰 선수보다 힘과 탄력이 좋을 것이란 고정관념이 이버츠를 떨어뜨렸다.”
용병들의 인력시장에서는 백인이 오히려 역으로 인종차별을 당한 셈이 된다. 아마 마이클 조던으로 대표되던 NBA의 흑인 중심 농구가 그런 고정관념을 심어줬는지 모른다. 어쨌든 이버츠는 나중에 기업은행을 인수해 뛰어든 나산에 의해 끝번으로 구제돼 한국땅을 밟았다. 이버츠는 실력으로 비뚤어진 한국감독들의 눈을 응징했다. 프로원년 득점랭킹 2위. 그는 이듬해 구단의 담합에 의해 퇴출되었지만 삼수 끝에 지난 시즌 골드뱅크에서 뛰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리고 올 시즌 LG로 이적, 팀이 1위를 달리는 데 한축이 되었다. 현재 이버츠를 두고 백인이어서 기량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그는 한국화에 성공한 용병 중 한명이다. 감독들의 선수 보는 눈을 탓하자고 꺼낸 얘기는 아니다.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을 대동하지 않는 한 2∼3일 연습게임을 보고 좋은 선수를 선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용병 선발은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97∼98시즌부터 전체 1순위로 선발된 선수치고 다음해 재계약에 성공한 선수는 한명도 없다. 반면 97∼98시즌 전체 19번째에 선발된 조니 맥도웰(현대)은 4시즌째 한국코트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챔피언 SK의 로데릭 하니발도 공교롭게 끝에서 두 번째인 19번째로 지명된 선수다. 그만큼 옥석을 가리기 힘든 것이 용병찍기라고 할 수 있다. 한국감독의 용병선발 역사는 선발-퇴출을 반복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한 시즌이 끝나면 20명 가운데 2∼3명만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고향 앞으로 식이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여러 차례 겪으면서 감독들의 눈높이도 좋아졌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미국을 드나들며 모그룹과 지인들의 정보망을 풀가동해 사전 스크린도 하고 있다. 그러면 용병 수준은 높아졌나. 현장의 목소리는 상향 평준화로 요약된다. 특히 올 시즌 전반적인 기량이 좋아져 팬들의 흥미를 고조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용병 2명이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 이상이다. 따라서 용병의 품질이 좋아지자 경기품질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팀간 18게임씩 정규리그의 40%를 소화한 21일 현재 유료관중이 총 24만5909명으로 집계돼 지난해보다 5%가량 증가했다. 올 시즌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관중이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프로농구의 선전에 용병 업그레이드가 기여한 측면이 적지 않다. 초반 LG, 삼성썬더스의 2강체제와 치열한 중위권 다툼이 모두 용병과 용병술에 관련된다. 물론 이규섭(삼성)과 같은 걸출한 신인의 등장도 주목거리지만 판도 변화는 새로운 용병이 불러왔다. 삼성의 아티머스 맥클래리는 가장 대표적인 신인용병. 맥클래리는 원년리그부터 4연속 용병선발에 실패한 삼성의 역작으로 평가된다. 2라운드까지 득점랭킹 5위(평균 26.1점)에 리바운드 10위(평균 10.2개). 유연한 개인기에 탄력까지 겸비한 그가 취약지였던 골밑에 힘을 불어넣고 있어 삼성은 첫 챔피언 등극의 야심도 숨기지 않는다. 구단의 보배가 된 용병들
데니스 에드워즈(SBS)와 켄드릭 브룩스(신세기)도 새 얼굴 중에 화려한 개인기로 주목받는 쌍두마차로 통한다. 레게머리를 해서 우리의 눈엔 불량기가 있어보이는 에드워즈는 기상천외한 슛 자세로 득점 1위를 달려 벌써 ‘막슛의 대가’란 칭호를 얻었다. 교과서에 없는 슛폼인데도 성공률은 65%로 전체 5위. 새로 지은 안양체육관에 그를 보기 위해 온다는 고정팬이 생길 정도다.
브룩스는 조던을 빼닯은 외모 덕분에 ‘리틀 조던’이란 닉네임을 얻었다. 실력도 한국에선 조던급이다. 게임마다 평균 30점대를 올리는 폭발력을 갖고 있는데 자신은 조던 흉내를 내면서도 조던을 들먹이면 싫어한다. 신세기엔 하와이 원주민 혈통인 정통센터 요나 에노사도 있다. 묵묵하게 골 밑을 지키는 이 선수는 브룩스와 함께 용병파워를 발휘해 지난해 꼴찌팀을 상위권에 올려놓아 “신세기의 유재학 감독이 용병농사는 잘 지었다”는 평판을 듣게 했다.
에릭 이버츠(LG), 조니 맥도웰(현대), 재키 존스, 로데릭 하니발(이상 SK)은 한 국밥을 오래 먹은 덕분인지 변함없는 실력으로 구관이 명관이란 덕담을 듣는다. 이미 한국선수들의 장단점과 심판들의 취향까지 파악했을 만큼 한국화에 성공한 선수들이다.
골드뱅크가 전체 1순위로 뽑은 마이클 매덕스는 무릎부상 때문에 개막 40일만에 출장했으나 수준급 기량을 선보여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아직 부상회복이 덜 된 몸으로 30점을 거뜬히 올려 몸이 다 나을 경우 태풍이 핵이 될 것 같다. 오랫동안 골드뱅크는 “매덕스만 나으면 무서울 것이 없다”고 호언해왔다.
그렇다면 우승은 용병하기 나름인가? 아니다. 해답은 용병과 토종의 조화에 있다. 그것은 곧 감독의 ‘용병술’이 팀 성적을 좌우한다는 말이 된다. 튀는 용병의 존재는 바람직하지 않다. 팬들을 순간적으로 즐겁게 해줄 수 있을지 몰라도 팀 우승은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프로농구 출범 뒤 개성있고 실력있는 용병은 한둘이 아니었다. 프로원년 SBS에서 뛴 제럴드 워커는 화려한 테크닉으로 각광받았고 기아와 삼보(전 나래)를 거친 제이슨 윌리포드도 기량과 머리를 겸비한 특급선수였다. 또 칼레이 해리스(나래), 버나드 블런트(LG), 래리 데이비스(SBS)는 득점왕을 차례로 차지한 물건이었다. 개인기량만 놓고 봤을 때 물론 걸출한 선수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팀을 챔피언에 올려놓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개성이 강한 나머지 한국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혼자 잘난 용병은 필요없다
그래서 한국의 프로농구 감독들은 혼자 똑똑한 용병보다는 파괴력과 원만한 성품을 겸비한 용병을 좋아한다. 지금까지는 현대의 맥도웰 같은 선수가 최상모델로 평가된다. 맥도웰 같은 선수에 우수한 국내선수 2∼3명을 보유하는 게 우승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현재 상위권에서 놀고 있는 팀을 보자.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선두 LG의 경우 이버츠란 보증수표에 조성원, 조우현이란 무서운 쌍포가 있다. 센터 알렉스 모블리가 득점랭킹 20위 안에도 못 들어 빅맨 10명 중 최하품이란 약점이 있어도 김태환 감독의 용병술이 그것을 커버한다. 김 감독은 모블리에겐 리바운드, 수비 등 단순한 분업만 주문해 조화를 꾀하고 있다. 반대로 대책없이 꼴찌로 떨어진 동양은 용병 한명을 개막전에 교체한데다 또다른 한명 데이먼 플린트를 현대에 트레이드하는 등 용병 문제에서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또 새로운 용병 토시로 저머니, 마이클 루이스를 토종선수와 섞어 적절하게 기용하는 데도 실패한 게 바닥에 앉아 있는 이유다. 똑같이 용병선발과 관리에서 실패한 현대가 신선우 감독의 용병술에 힘입어 상위권에 진입하고 있는 것과 분명 대조적이다. 결국 구슬은 조금 모자랄지라도 잘 꿰어서 보배를 만드는 일은 감독의 몫이다.
권부원/ 경향신문 체육부 기자

사진/골드뱅크가 전체 1순위로 뽑은 마이클 매덕스는 무릎부상 때문에 개막 40일 만에 출장했으나 수준급 기량을 선보여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사진/맥클래리(오른쪽)는 원년리그부터 4연속 용병선발에 실패한 삼성의 역작으로 평가된다.(김봉규 기자)
용병들의 인력시장에서는 백인이 오히려 역으로 인종차별을 당한 셈이 된다. 아마 마이클 조던으로 대표되던 NBA의 흑인 중심 농구가 그런 고정관념을 심어줬는지 모른다. 어쨌든 이버츠는 나중에 기업은행을 인수해 뛰어든 나산에 의해 끝번으로 구제돼 한국땅을 밟았다. 이버츠는 실력으로 비뚤어진 한국감독들의 눈을 응징했다. 프로원년 득점랭킹 2위. 그는 이듬해 구단의 담합에 의해 퇴출되었지만 삼수 끝에 지난 시즌 골드뱅크에서 뛰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리고 올 시즌 LG로 이적, 팀이 1위를 달리는 데 한축이 되었다. 현재 이버츠를 두고 백인이어서 기량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그는 한국화에 성공한 용병 중 한명이다. 감독들의 선수 보는 눈을 탓하자고 꺼낸 얘기는 아니다. 관상을 잘 보는 사람을 대동하지 않는 한 2∼3일 연습게임을 보고 좋은 선수를 선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용병 선발은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97∼98시즌부터 전체 1순위로 선발된 선수치고 다음해 재계약에 성공한 선수는 한명도 없다. 반면 97∼98시즌 전체 19번째에 선발된 조니 맥도웰(현대)은 4시즌째 한국코트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챔피언 SK의 로데릭 하니발도 공교롭게 끝에서 두 번째인 19번째로 지명된 선수다. 그만큼 옥석을 가리기 힘든 것이 용병찍기라고 할 수 있다. 한국감독의 용병선발 역사는 선발-퇴출을 반복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한 시즌이 끝나면 20명 가운데 2∼3명만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고향 앞으로 식이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여러 차례 겪으면서 감독들의 눈높이도 좋아졌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미국을 드나들며 모그룹과 지인들의 정보망을 풀가동해 사전 스크린도 하고 있다. 그러면 용병 수준은 높아졌나. 현장의 목소리는 상향 평준화로 요약된다. 특히 올 시즌 전반적인 기량이 좋아져 팬들의 흥미를 고조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용병 2명이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 이상이다. 따라서 용병의 품질이 좋아지자 경기품질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팀간 18게임씩 정규리그의 40%를 소화한 21일 현재 유료관중이 총 24만5909명으로 집계돼 지난해보다 5%가량 증가했다. 올 시즌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관중이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프로농구의 선전에 용병 업그레이드가 기여한 측면이 적지 않다. 초반 LG, 삼성썬더스의 2강체제와 치열한 중위권 다툼이 모두 용병과 용병술에 관련된다. 물론 이규섭(삼성)과 같은 걸출한 신인의 등장도 주목거리지만 판도 변화는 새로운 용병이 불러왔다. 삼성의 아티머스 맥클래리는 가장 대표적인 신인용병. 맥클래리는 원년리그부터 4연속 용병선발에 실패한 삼성의 역작으로 평가된다. 2라운드까지 득점랭킹 5위(평균 26.1점)에 리바운드 10위(평균 10.2개). 유연한 개인기에 탄력까지 겸비한 그가 취약지였던 골밑에 힘을 불어넣고 있어 삼성은 첫 챔피언 등극의 야심도 숨기지 않는다. 구단의 보배가 된 용병들

사진/레게머리를 해서 불량기가 있어보이는 에드워즈는 기상천외한 슛 자세로 득점 1위를 달려 벌써 ‘막슛의 대가’란 칭호를 얻었다.

사진/파괴력과 원만한 성품을 가진 조니 맥도웰 같은 선수가 지금까지는 최상의 모델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