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민/ 학민사 대표 · 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당나라 현종 시대에 쓰인 <다주론>(茶酒論)에 나오는 구절이다.
차: “나는 스님들의 설법에 힘을 더해주고 부처님께 바치는 제물로 쓰이는 몸이다. 술, 너는 뭐냐? 가정을 파괴하고, 사악함과 음란함을 돋우는 요인이 아니냐?”
술: “한 동이에 엽전 세푼이니 귀하다 할 수는 없으나, 나는 귀인 고관들이 마시는 것이다. 너, 차로서는 노래가 나오지 않고, 춤도 나오지 않지 않느냐?”
차: “내가 시장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투어 사들이니 돈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네가 거리에 나가보아라. 혀가 꼬부라져서 귀찮고 성가시게 구는 사람들이 지천이다.” 술: “옛사람이 나를 칭찬하여 말하기를 ‘술 한잔은 건강의 근원이고, 기분전환의 명약이고, 인물을 만드는 도구’라 하였다. 술은 예의를 지배하는 기준이며, 황제의 음악도 술에서 생겨났다. 차, 너는 아무리 마셔도 가야금의 가락과 관계가 없지 않는가?” 차: “남자 나이 14, 15세면 술자리에 가까이 가지 말라 하였다. 차를 마시고 행패 부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오죽하면 향불을 피우고 금주를 빌기도 하는가?” 이렇게 차와 술이 티격태격 말씨름을 하고 있는데, 물이 점잖게 둘을 나무란다. 물: “왜들 그렇게 핏대를 올리고 싸우고 있나? 차, 내가 없으면 자네의 형태가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술, 내가 없으면 자네 모습도 존재할 수 없다. 쌀과 누룩만 먹으면 바로 배가 아파지고, 찻잎을 그대로 먹으면 목을 해친다. 내가 없으면 자네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 지금부터는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라.” 술은 하향적 음료이다. 술은 그 탄생부터 자연발효라는 신비스러움을 함축하고 있고, 또 생산력이 빈약하던 시절 먹을거리로서의 소용을 희생시키고 갈무리한 곡식의 진액이기 때문에 제사 때 신에게 바치는 귀한 음료였다. 또 제사가 끝난 뒤 음복에 참여하는 자들도 지배층이었기 때문에 상당 기간 술은 상류층만이 그 기묘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차는 상향적 음료다. 차는 물맛이 나빠 각종 신미음료를 개발해 마시던 중국의 화북지방 사람들이 우연히 찻잎을 끓여 마심으로써 대중의 일상적 음료로 정착된 것이다. 그러다 차가 중국 각지로 널리 보급되고, 또 전한 말기의 전설적 의사 화타가 “차를 오랫동안 마시면 사고가 깊어지고, 졸음을 쫓고, 몸이 가벼워지며, 눈이 밝아진다”고 그 효능을 밝히면서 문인, 화가, 선승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위에서 내려오던’ 술과 ‘밑에서 올라가던’ 차가 대중적으로 만난 시기가 당나라 즈음인 것 같다. 어찌됐거나 예전에는 술집, 찻집이 대개 분화되어 있었으나, 요즘은 카페라는 이름하에 차와 술이 자연스럽게 공존해 ‘술꾼’ ‘차꾼’의 충돌을 덜어준다. 모두가 생명의 근원, 대지의 젖줄, 고요와 평안의 상징인 물의 중재 덕택이리라.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차: “내가 시장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투어 사들이니 돈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네가 거리에 나가보아라. 혀가 꼬부라져서 귀찮고 성가시게 구는 사람들이 지천이다.” 술: “옛사람이 나를 칭찬하여 말하기를 ‘술 한잔은 건강의 근원이고, 기분전환의 명약이고, 인물을 만드는 도구’라 하였다. 술은 예의를 지배하는 기준이며, 황제의 음악도 술에서 생겨났다. 차, 너는 아무리 마셔도 가야금의 가락과 관계가 없지 않는가?” 차: “남자 나이 14, 15세면 술자리에 가까이 가지 말라 하였다. 차를 마시고 행패 부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오죽하면 향불을 피우고 금주를 빌기도 하는가?” 이렇게 차와 술이 티격태격 말씨름을 하고 있는데, 물이 점잖게 둘을 나무란다. 물: “왜들 그렇게 핏대를 올리고 싸우고 있나? 차, 내가 없으면 자네의 형태가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술, 내가 없으면 자네 모습도 존재할 수 없다. 쌀과 누룩만 먹으면 바로 배가 아파지고, 찻잎을 그대로 먹으면 목을 해친다. 내가 없으면 자네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 지금부터는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라.” 술은 하향적 음료이다. 술은 그 탄생부터 자연발효라는 신비스러움을 함축하고 있고, 또 생산력이 빈약하던 시절 먹을거리로서의 소용을 희생시키고 갈무리한 곡식의 진액이기 때문에 제사 때 신에게 바치는 귀한 음료였다. 또 제사가 끝난 뒤 음복에 참여하는 자들도 지배층이었기 때문에 상당 기간 술은 상류층만이 그 기묘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차는 상향적 음료다. 차는 물맛이 나빠 각종 신미음료를 개발해 마시던 중국의 화북지방 사람들이 우연히 찻잎을 끓여 마심으로써 대중의 일상적 음료로 정착된 것이다. 그러다 차가 중국 각지로 널리 보급되고, 또 전한 말기의 전설적 의사 화타가 “차를 오랫동안 마시면 사고가 깊어지고, 졸음을 쫓고, 몸이 가벼워지며, 눈이 밝아진다”고 그 효능을 밝히면서 문인, 화가, 선승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위에서 내려오던’ 술과 ‘밑에서 올라가던’ 차가 대중적으로 만난 시기가 당나라 즈음인 것 같다. 어찌됐거나 예전에는 술집, 찻집이 대개 분화되어 있었으나, 요즘은 카페라는 이름하에 차와 술이 자연스럽게 공존해 ‘술꾼’ ‘차꾼’의 충돌을 덜어준다. 모두가 생명의 근원, 대지의 젖줄, 고요와 평안의 상징인 물의 중재 덕택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