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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햄버거에 저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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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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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힘입어 다국적 식품산업의 사회적·생태적 해악은 깊어만 가네

이른바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식생활은 산업사회시대 그 어느 지역 어느 나라 사람들이라도 피하기 어려운 전 지구적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맥도날드와 코카콜라로 상징되는 이런 가공식품들의 위세는 게걸스럽게 이제 지구표면 전체를 덮어가고 있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이들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 다국적 기업집단의 식품산업 지배구조는 전세계 수억 농민들의 삶을 거대자본의 종속물로 만들어버리며, 생태적으로도 자연을 훼손시키는 문제덩어리라는 총체적 비난을 받고 있으나 해결책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지구를 망치는 동물성 단백질 선호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이런 해악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래서 언급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인 먹는 문제에서도 경제의 논리는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경제 이외의 그 어떤 다른 가치, 즉 생태학적, 환경적, 그리고 인간적인 가치는 여지없이 뿌리뽑히고 만다.


최근 번역 출판된 <지구학적 사고 생태학적 식생활>(호세 루첸베르거 등 지음, 생각의 나무(02-713-4247) 펴냄, 1만5천원)은 이런 현실에 대한 지구적 고민과 대안,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식생활과 식품, 그리고 이런 식품을 만들어내는 농업이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불합리하고 환경파괴적인 결과의 주범임을 통렬하게 고발하는 책이다. 지금의 ‘식량과 식품’에 관한 문제들이 과연 어떤 구조로 만들어지며 그 피해는 실제로 어떠한지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모든 인류가 함께 새로운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하는 책이다. 제목은 건조하기 짝이 없어도 내용과 메시지는 섬뜩하다.

지은이들이 지적하는 가장 중요한 현재의 모순 가운데 하나는 동물성 단백질에 대한 과다한 선호현상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부추기는 핵심에 패스트푸드가 있다. 닭과 소, 돼지 등의 동물들을 사육하는 사료들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곡물들로 이뤄지기 때문에 불합리는 더욱 커진다는 것이고, 이런 육류소비는 패스트푸드 산업 때문에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예컨대 1kg의 날짐승 고기를 얻으려면 2kg의 곡식이 사료로 쓰이고, 돼지고기 1kg을 얻기 위해서는 곡식 4kg이, 그리고 1kg의 쇠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무려 7kg의 곡식이 필요하다. 이처럼 비효율적인 고기를 얻기 위해 대량의 가축을 키울 공간이 필요하고, 결국 열대우림 등 자연자원들이 가축을 기르는 공간으로 변하며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1헥타르의 열대우림은 대략 80만kg의 식물과 동물에게 서식처를 제공하는데 가축떼를 위해 불태워져 목축지가 되고 나면 1헥타르는 한해 불과 200kg의 쇠고기를 산출할 뿐이라고 한다. 이것은 약 1600개의 햄버거를 만들 수 있는 양에 불과하다. 맥도날드 햄버거 하나를 만드는 데 500kg의 열대우림이, 넓이로 따지면 9㎡의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마는 것이다.

또한 이런 식품의 원료와 식품 그 자체들이 제철과 지역적 특성을 무시하고 전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시스템 역시 중요한 문제로 지은이들은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1파운드의 식품이 식탁에 오르기 전까지 평균 약 2000km를 이동하는데, 이러다보니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독일에 수입되는 야채를 수송하는 데만 연간 1억7천만리터 가량의 디젤이 소비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는 유해물질인 이산화탄소를 50만t 배출하는 규모다. 게다가 이 야채들을 운송하기 위해서는 독일 안에서 야채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의 세배가 소비된다.

점점 커지고, 점점 넓어지고…

사진/곡물을 수확하는 트랙터들. 현대의 농부는 기술만능주의적 하부구조의 작은 바퀴에 불과하다.(SYSGMA)
이런 모순과 사회적·생태적 해악이 신자유주의적인 경제논리에 의해 맹목적으로 전파되고 유지되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크다. 현대화하고 기계화한 농업 발달 덕분에 인류의 2%에 불과한 농업종사자들이 전 인류를 먹여살릴 수 있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지만 이는 망상이자 속임수에 가깝다. 과거의 농부는 제품인 농산물의 생산에서부터 유통까지 모든 것을 책임졌지만, 이제 현대의 농부는 기술만능주의적 하부구조의 작은 바퀴에 불과해 단순한 수치비교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이데올로기는 바로 세계 식량·식품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소수의 다국적 기업집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더 많이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퍼뜨리는 것일 뿐이지만 대중은 이런 거짓 논리를 비판없이 수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은이들은 지적한다. 이들 다국적 기업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생산시스템과 유통에 적합한 제품, 즉 식품들만을 양상할 뿐 소비자들의 건강과 환경 문제는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지배 아래 농업과 인류의 건강, 생태환경은 더욱 악화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는 체제가 유지된다는 점은 심각하면서도 극복하기 어려운 가장 중요한 이유다.

지금의 현대농업은 화학비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짜여져 있는데, 이 화학비료가 거대산업으로 탄생한 과정 자체가 농부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 아니라 거대 화학업체들의 이윤추구 결과라는 것이다. 1차대전 당시 폭탄의 주재료인 질소를 대량생산하던 화학업체들이 전쟁이 끝나자 과잉생산된 질소를 농업에 필수적인 비료로 전환하려는 산업논리에 따른 것이었다. 더군다나 화학비료를 만드는 데는 많은 화석연료가 필요해 오염과 공해를 낳는 엄청난 엔지 소모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시작에서 비롯된 화학농법은 자연과 인간을 위한 생산성이 아니라 업체들의 이익을 위한 불필요한 제품들까지 양산하고 있다고 지은이들은 비판한다. 업체들은 농부들에게 제초제에 견디는 종자까지 세트로 강권하고 있고, 그래서 농부들은 스스로는 식물 섬멸제를 사용할 의도가 전혀 없어도 업체가 종자를 제초제와 세트로 묶어파는 바람에 함께 구입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 기업집단들은 더욱 돈을 갈고리로 훑으면서 덩치와 영향력을 키워나간다. 미국 내 식품 공급관리체계가 점점 확실하게 소수의 손아귀로 들어가는 것을 연구한 톰 리슨은 미국에서 식품을 위해 지출되는 비용 1달러 가운데 10센트는 필립모리스사의 수중으로 들어간다는 계산을 내놨다. 얼핏 담배회사로만 생각되는 이 회사는 실제 아홉개의 담배회사와 청량음료 세븐업, 맥스웰하우스 커피, 아침식사용 곡물식품인 씨리얼을 만드는 포스트 등을 거느리는 연 매출액 400억달러대의 초거대기업이다. 또한 전략적 제휴와 합병 등으로 더욱 강화되고 있는 거대농업기업 집합체들인 카길-몬샌토, 노바티스-아처 다니엘스, 콘아그라 등 3대 식량기업은 이제 미국을 넘어 세계시장을 지배할 태세다.

파국은 잠시 지연될 뿐

사진/굶주리는 아프리카의 어린이. 지구 한편에서 아이들이 굶주리는 동안 한편에서는 에너지 비효율적인 육류가 대량생산된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생태농업 전문가들인 지은이들이 내놓은 결론은 한 가지다. 너무나 당연히 친환경적이고 생태학적인 농법, 19세기 이전 농업의 기본철학으로 되돌아가는 길뿐이라는 것이다. 현대 농업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장기간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이고, 그래서 아무리 생산성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파국은 다만 잠시 지연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선택이 결국 모든 인류의 평화와 행복, 그리고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이 될 것임을 역설한다. 세계적으로 점차 호응을 얻어가고 있는 생물학적 재배와 식량자급 공동체운동, 그리고 유전공학의 거부만이 인류의 미래를 보장한다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완벽하게 똑같은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다.

결국 미래의 식탁 위에 무엇을 차려낼 것인가 하는 고민은 온전히 소비자들인 대중의 몫일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이 자신이 섭취하는 식품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지를 충분히 알고 그 영향을 인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방법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최후의 세대인 양 행동해도 될 권리가 과연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자문해보라고 책은 권한다. 인간과 자연, 건강한 식생활을 위한 모색과 실천만이 그 답이라는 것은 너무나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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