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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재봉실의 추억’과 화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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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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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대 중반의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드로잉과 천조각이 들려준 이야기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90대 중반에 접어든 노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지난 4월12일부터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드로잉전이 남긴 의문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격자무늬와 원, 평행선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그의 드로잉에서 무의식에 잠재된 기억을 종이에 옮기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한다’는 의미를 끄집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잠 못 드는 밤에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표현하려는 노작가의 집념이 숭고하게 느껴졌다. “예술의 목적은 두려움을 정복하는 것”이라는 그의 발언을 되뇌면서.

페미니즘과 욕망… 70살 즈음에 세계적 작가로


현대 미술사에서 루이스 부르주아만큼 페미니즘에 ‘집착한’ 작가도 드물다. 그의 예술세계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의 작업에서 페미니즘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틀림없다. 그는 지난해 독일 경제지 <카피탈>이 선정하는 ‘세계 최고의 생존 미술가 100인’ 가운데 5위에 올랐다.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미국 뉴욕 모마(MoMA)에서 회고전을 열면서 문제적 작가로 떠오른 뒤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가 70살을 앞두고서야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까닭은 무엇일까.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업은 욕망의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과학적인 사람으로서 철학에서 정신분석을 믿는다”는 그의 말은 욕망과 공격성, 두려움과 본능에 대한 집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예술행위는 리비도(Libido)에 의해 드러나는 존재의 본질에 다가서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로테스크한 신체를 표현하면서 자아를 재발견한 때문이다. 여기에 치유가 필요했던 정신적 외상이 깊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이는 신체예술가 키키 스미스가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도상을 통해 절제된 페미니즘 발언을 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개인적 경험을 페미니즘 예술로 풀어낸 루이스 부르주아의 최근작들. 작가는 이들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루이스 부르주아가 내놓은 작품들은 시기별로 변화 양상이 뚜렷하다. 1938년 프랑스를 방문한 미국인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한 뒤, 그는 수직성이 강조된 기하학적 조각과 석고·라텍스 수지 등을 이용한 유기체적 추상에 빠졌다. 그러다 1970년대를 전후로 초현실과 사실을 넘나들면서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예컨대 인체의 왜곡(<개화하는 야누스>)이나 가부장의 몰락(<아버지의 파멸>), 엽기적 생물(<거미>) 등을 통해 내면의 혼돈을 드러내며 삶의 본질에 다가서려 했던 것이다.

이렇듯 대담성과 육체주의로 설명되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업은 유년기의 기억에서 비롯됐다. 파리에서 양탄자 수선을 가업으로 이어오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8살 때부터 드로잉을 익혔다. 그는 재봉실이 밀회의 공간으로 쓰이는 것을 너무나 일찍 알았다. 그의 아버지는 가정교사를 정부로 삼았고, 언니는 성적 일탈을 서슴지 않았다. 이런 탓에 그에게 새겨진 기억의 공간이 1990년대부터 시작한 <밀실> 연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국내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밀실XI>(초상) 역시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의식의 공간을 표현한 것이다.

이제 노작가는 밀실의 재구성에 머물지 않고 밀실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것일까. 동양의 ‘선’(禪)을 떠올리게 하는 드로잉으로 마음의 찌꺼기를 털어내고 어린 시절 익힌 양탄자 무늬 도안 바느질의 경험을 천조각에 옮기면서 말이다. 36개의 천조각을 책으로 엮은 작품은 석판으로 이미지를 찍고 손바느질을 곁들였다. 조각과 평면의 경계를 허문 그의 작품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사랑과 고통, 고독의 드라마가 담겨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없다면 이번 전시에서 일상의 단면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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