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 몬스터>에 이어 <바람계곡 나우시카> 개봉… 마니아들의 열기, 대중으로 전이될까
재패니메이션이 본격적으로 대중시장 형성에 들어갔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요즘 상황은 “언더에서 오버로 올라왔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일본까지 비행기타고 날아가서 <에반게리온>을 보러 갔다는 것은 마니아들 사이의 전설로만 남을 수 있을 것인가. 어두컴컴한 일본 극장에서 캠코더를 돌려 스크린을 찍어오던 것이 바로 몇년 전의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웬만한 일본 OVA(비디오용 애니메이션)는 나오는 즉시 서울 용산 등지에서 CD-ROM으로 구워져 판매되는 한편, 누군가의 손을 통해 압축파일이나 FTP서버로 인터넷에 올라온다. 그러나 루트를 빠삭하게 아는 마니아들이 아니라, 아무나 지나가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큰 변화다. 게다가 이제는 일본의 국민감독이라고 일컫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개봉되기에 이르렀으니 과연 여기저기서 “재패니메이션이 몰려온다”고 떠들 만하다.
<포켓몬스터>의 마케팅을 주목하라
이미 가와지리 요시야키 감독의 <무사 쥬베이>가 극장용 애니메이션 한국상륙 1호로 선을 보였고 12월9일에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인랑>도 개봉했다. 그러나 본게임은 이제부터다. 12월23일 <포켓몬스터>에 이어 30일 <…나우시카>가 개봉된다. 이 두 작품은 앞의 두 작품과는 현저하게 다른 의미를 가진다. <무사 쥬베이>는 성인물, 그중에서도 액션을 즐기는 남성 성인들을 타깃으로 한 작품이고 <인랑> 역시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다. 물론 ‘메가톤급 작품’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작품성도 높고 오시이 마모루라는 감독의 이름값도 만만한 것은 아니다. 특히 실제 있었던 암울한 역사와 공상을 섞었다는 점에서 윤태호씨의 <야후>와 유사한 매력을 가진다.
개봉한 첫주 주말에 서울에서 6500명이 관람해 나쁘지 않은 전적을 보인 <인랑>은 그러나 대중성이 높은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시이 마모루 특유의 우울하고 사실적인 그림체에다 1960년대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암울한 사회문제를 배경으로 깔고 있어서 누가 봐도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나우시카>와 <포켓몬스터>는 다르다. TV의 약발이 좀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포켓몬스터>를 즐기는 유년층이 존재한다. <…나우시카> 역시 국내 인지도는 <이웃의 토토로> <원령공주>보다 떨어지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걸작품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한마디로 ‘재패니메이션 대중화를 위한 대표적인 카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말이다. 알려진 대로 <…나우시카>는 핵전쟁 이후 오염된 지구를 살아가는 바람계곡 사람들과 그들을 이끄는 공주 나우시카를 다룬 이야기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작품에서 옴이라는 가상의 생물, 오염으로 변형된 곤충들, 썩은 대지를 정화하는 바다라는 개념 등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를 세밀하게 창조했다. 나우시카라는 곧은 성품을 가진 주인공이 폭력적인 주변국가의 위협과 맞서는 장면 등은 과연 교훈적이라 부모로서 자녀에게 보여주고 싶을 만하다. 1984년 작품이라서 화질은 좀 바랜 듯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환경과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은 바래지 않았다. <…나우시카>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품성을 맛볼 수 있다면 <포켓몬스터>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마케팅 기법을 배울 수 있다. 애니메이션 전문지 <뉴타입>의 안영식 편집장은 <포켓몬스터>의 국내시장 침투력이 <…나우시카>보다 월등히 높다고 본다. “<…나우시카>는 평론가들이 주는 별점은 많이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객은 <포켓몬스터>가 더 마음에 들겠지요. 작품성으로 봐서는 물론 상대가 안 되지만 TV를 통한 인지도를 고려할 때 <포켓몬스터>가 훨씬 파급력이 높습니다. 만약 지난해 이맘때 개봉했다면 관객 100만명 동원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나우시카>가 부모가 아이들 손잡고 가서 보여주는 영화라면 <포켓몬스터>는 아이들이 보자고 졸라서 보게 되는 영화라는 것이다. 자녀들을 데리고 외출해본 부모라면 어느 극장을 최후에 선택하게 될지 짐작이 갈 것이다. ‘수상작 개봉’의 한계
문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이 두 작품의 개봉을 계기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진로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제안한다. “애니메이션을 작품이라는 측면이 아니라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상대는 <…나우시카>가 아니라 <포켓몬스터>지요. 게임에서 만화로, 혹은 만화에서 게임으로 매체를 바꿔가면서 캐릭터를 팔고, 여기서 얻은 잠재적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게 전형적인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공식입니다. 우리가 애니메이션 산업을 일으키려고 생각한다면 <…나우시카>보다는 <포켓몬스터>가 필요한 것입니다.”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출판만화에서 비롯되는 것과는 달리 ‘포켓몬스터’는 게임에 뿌리를 둔 캐릭터다. 1996년 닌텐도에서 처음 ‘포켓몬스터’를 게임소프트웨어로 출시해 인기를 모으자 이것을 출판만화로 만들었고, 다시 이를 텔레비전용 만화영화로 만들었다. 닌텐도가 1999년 한해 동안 이 캐릭터로 번 돈은 약 7조2천억원. 이런 바탕에서 극장용 만화영화까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붐을 일으킬 수 있는가는 의심스럽다. 일단 개봉예정인 작품들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본 대중문화 3차개방 단계이기 때문에 국내에 들어올 수 있는 극장용 일본 애니메이션은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를 포함한 각종 국제영화제 수상작’에 한한다. 따라서 각 영화사들은 미리 판권을 보유해놓고 이 작품들이 상받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대원C&A홀딩스는 일신픽처스와 제휴하여 극장용 일본 애니메이션 10개를, 단독으로 6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중에서 현재 국내에서 상영가능한 것은 전부 합쳐 여섯개뿐이다. 상영 불가능한 작품 중에는 <이웃의 토토로> <원령공주>처럼 국내외 인지도도 높고 작품성도 뛰어난 작품들이 있다. 개봉된 일본 애니메이션과 비교해서 작품성으로 보았을 때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거나 더 나은데도 상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에 따라서 들어오고 못 들어오고가 정해지는 것이다. “어떤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초반에 무게있는 작품들이 소개되는 것이 중요한데, <…나우시카>가 질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최근 작품이 들어왔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요.” <뉴타입>의 안영식 편집장은 이렇게 아쉬움을 표한다.
다음으로 마니아층에서 일어난 바람이 일반 대중들로 번져나가리라는 보장이 없다. 튜브 엔터테인먼트의 한 관계자는 “일본 애니메이션 구입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까지 들어온 일본영화를 봐도 그렇다. <러브레터>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성공한 게 없다. 그렇다고 마니아층만으로 수지타산을 맞출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또한 마니아들을 믿고 이들이 바람을 일으켜주기를 기대하면서 작품을 소개한다면 한두 군데 단관개봉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와이드 릴리즈(몇십개씩 한번에 개봉함)가 많은 편이다. 몇몇 군데 개봉해서 점차 개봉관 수를 늘려간 작품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등 몇몇 작품밖에는 성공사례가 없다. 처음부터 “이건 된다”는 작품이 아니면 마니아성 일본 애니메이션이 극장에 걸리기는 힘들다는 이야기다.
상영 예정, 내년에도 줄줄이…
이렇게 일본 애니메이션이 쉬운 구매품목은 아니지만 그러나 베팅할 값어치가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튜브 엔터테인먼트, AFDF 코리아, 대원 C&A홀딩스, 일신픽처스 등은 일본 애니메이션 대중화에 조금씩 칩을 던진 상태다. 튜브 엔터테인먼트는 1997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돼 국내팬들과 인사를 나눈 <퍼펙트 블루>와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뱀파이어 헌터 D>를 보유하고 있는데, <퍼펙트 블루>는 내년 2월께, <뱀파이어 헌터 D>는 내년 여름에 개봉할 예정이다. 곤 사토시 감독의 <퍼펙트 블루>는 기리고에 미마라는 귀여운 아이돌 가수가 스토킹당하는 스릴러물이다. 미국의 한 평론가는 이 작품을 가리켜 “디즈니와 히치콕이 같이 작업했다면, 이런 작품이 나왔을 것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무사 쥬베이>의 감독 가와지리 요시야키의 <뱀파이어 헌터 D> 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인 뱀파이어 헌터 던필이 주인공이다. 인간과 뱀파이어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뱀파이어 헌터 던필이 납치된 성주의 딸을 찾는 이야기다. <무사 쥬베이>에서 가와지리 감독이 보여준 빠른 장면 속도감을 여기서도 맛볼 수 있다.
튜브 엔터테인먼트는 1970,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감독의 작품을 제외하면 <공각기동대> <아키라> 등 몇몇 작품 외에는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앞으로 동시대 애니메이션 수입에 치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원 C&A홀딩스와 일신픽처스는 대중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주로 보유하고 있다. AFDF 코리아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아바론>을 들여올 예정이다. 사실 <아바론>은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기에는 뭣하다. 실사영화에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작품으로, 일본에서는 내년 1월20일을 즈음해서 개봉될 예정이다. 원래는 동시개봉을 하려 했으나 설이 끼어 국내에서는 2월 초에 개봉된다. 가까운 미래에 가상전투게임에 중독된 젊은이들을 그렸다. ‘아바론’은 이 중독성 게임의 이름이다. 오시이 감독이 <공각기동대>에서 이미 그렸듯이 게임속의 가상현실과 실제현실과의 구분이 불분명한 상황 속에서 인간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작품이다. AFDF 코리아는 이외에도 옴니버스 극장영화 <메모리즈>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며 2002년 일본에서 개봉 예정인 오토모 가쓰히로 감독의 <스팀보이>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2>에 출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뿌려둔 칩이 어느 정도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2001년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시장에서의 대중성 확보라는 시험대를 두고 한편으로는 작품성으로, 한편으로는 상업성으로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나우시카>와 <포켓몬스터>는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민아 기자mina@hani.co.kr

(사진/<아발론>.)

(사진/<포켓몬스터>.)
개봉한 첫주 주말에 서울에서 6500명이 관람해 나쁘지 않은 전적을 보인 <인랑>은 그러나 대중성이 높은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시이 마모루 특유의 우울하고 사실적인 그림체에다 1960년대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암울한 사회문제를 배경으로 깔고 있어서 누가 봐도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나우시카>와 <포켓몬스터>는 다르다. TV의 약발이 좀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포켓몬스터>를 즐기는 유년층이 존재한다. <…나우시카> 역시 국내 인지도는 <이웃의 토토로> <원령공주>보다 떨어지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걸작품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한마디로 ‘재패니메이션 대중화를 위한 대표적인 카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말이다. 알려진 대로 <…나우시카>는 핵전쟁 이후 오염된 지구를 살아가는 바람계곡 사람들과 그들을 이끄는 공주 나우시카를 다룬 이야기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작품에서 옴이라는 가상의 생물, 오염으로 변형된 곤충들, 썩은 대지를 정화하는 바다라는 개념 등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를 세밀하게 창조했다. 나우시카라는 곧은 성품을 가진 주인공이 폭력적인 주변국가의 위협과 맞서는 장면 등은 과연 교훈적이라 부모로서 자녀에게 보여주고 싶을 만하다. 1984년 작품이라서 화질은 좀 바랜 듯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환경과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은 바래지 않았다. <…나우시카>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품성을 맛볼 수 있다면 <포켓몬스터>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마케팅 기법을 배울 수 있다. 애니메이션 전문지 <뉴타입>의 안영식 편집장은 <포켓몬스터>의 국내시장 침투력이 <…나우시카>보다 월등히 높다고 본다. “<…나우시카>는 평론가들이 주는 별점은 많이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객은 <포켓몬스터>가 더 마음에 들겠지요. 작품성으로 봐서는 물론 상대가 안 되지만 TV를 통한 인지도를 고려할 때 <포켓몬스터>가 훨씬 파급력이 높습니다. 만약 지난해 이맘때 개봉했다면 관객 100만명 동원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나우시카>가 부모가 아이들 손잡고 가서 보여주는 영화라면 <포켓몬스터>는 아이들이 보자고 졸라서 보게 되는 영화라는 것이다. 자녀들을 데리고 외출해본 부모라면 어느 극장을 최후에 선택하게 될지 짐작이 갈 것이다. ‘수상작 개봉’의 한계

(사진/<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사진/<인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