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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 악독했던 ‘대접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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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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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민/ 학민사 대표 · 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나는 두 사람을 안다. 한 사람은 서대문경찰서 정보과에 근무했던 차아무개 경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서울지검에서 공안통으로 이름을 날렸던 문아무개 검사다.

두 사람 모두 6척 장신에 100kg 이상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거구였다. 그리고 역할은 서로 달랐지만, 둘은 같은 신념을 갖고 같은 목표를 향해 일하는 일종의 동업자 관계였다. 아니면 원청과 하청의 관계라고나 할까? 한 사람은 유신 체제를 비판하거나 이에 저항하여 시위를 일으킨 대학생들을 붙잡아다가 ‘때려 조지는’ 일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학생들을 발갛게 물들여 ‘엮어 처넣는’ 임무를 맡아 했다. 두 사람 모두 상상력과 창조력이 뛰어났다. 동아리에서 오갔던 그저그런 이야기가 시위 계획으로 ‘확정’되기도 했고, 과제물로 읽었던 막스 베버가 사회주의자로 둔갑하기도 했다. 또 ‘북한에도 꽃이 핀다’고 말한 것이 북괴를 찬양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에이, 씨발놈의 세상!’이라는 외마디로부터 정부 전복 음모를 밝혀내기도 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상상력과 창조력을 발휘하여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어마어마한 고통이 따른다. 차 경감이 움켜쥐고 흔들어 뽑힌 이화여대생들의 머리칼이 한 소쿠리는 될 거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문 검사의 솥뚜껑 같은 손으로 따귀를 맞아 흘린 민청학련 관련자들의 코피가 한 말은 될 것이라고 지금도 이야기들을 한다. 두 사람은 더욱더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40대의 젊은 나이에 ‘아깝게’ 세상을 떴다. 1976년경일 것이다. 두 사람 다 간 기능에 이상이 있었다고 들었다. 나는 두 사람의 술 마시는 스타일을 안다. 한 사람은 직접 만나 겪어보았고, 한 사람은 민청학련 사건 때 취조받다가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 속에서 들었다. 두 사람 모두 두주불사였고, 종류도 가리지 않았다 한다. 또 두 사람 모두 흥이 나면 냉면 대접에 술을 가득 채워 단숨에 마시는 호기를 부렸다.

주량은 남녀와 체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작은 사람에 비해 덩치가 큰 사람이 술이 세다. 혈액량이 많으면 같은 양의 술을 마시더라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또 여자는 남자에 비해 덩치도 작을 뿐 아니라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덜 분비되기 때문에 술에 약하다. 그리고 간의 알코올 분해 효소량은 유전적이기 때문에 어느 집안 사람들은 술이 세고, 어느 집안 사람들은 술이 약하다는 이야기도 근거가 있다.

대접 술이라니? 술을 많이 마시는 것보다 나쁜 음주 습관이 더 문제다. 대접으로 마실 술이라면 작은 잔으로 여러 번 나누어 마셔야 한다. 특히 첫잔은 ‘원샷’하지 않고 몇번에 나누어 마셔야 한다. 그렇게 해야 간이 알코올을 분해할 준비 태세를 갖추게 되어 몸에 무리가 덜 가는 것이다.


4월9일은 30여년 전 이른바 인혁당 인사 여덟명이 학생들의 반유신 투쟁을 배후 조종했다는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대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진 지 18시간 만에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진 날이다. 이들의 죽음을 위해 온갖 상상력과 창조력을 다 동원했던 문 검사도 ‘대접 술’이 원인이었는지 뒤따라 세상을 떴다. 이승에서 그들간에 맺혔던 악연, 저승에서는 풀려 있을까. 허나 억울하게 죽어간 어버이를 두고 30여년 흘렸을 가족들의 한 대접 피눈물은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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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민의 술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