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닷컴 운영자 이성희씨… 그 작은 글이 어떻게 죽을 생각을 버리게 해주는가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유언장은 자신의 본모습을 재발견하도록 해줍니다.” 인터넷 사이트 유언장닷컴(yoounjang.com) 운영자인 이성희(44)씨는 “유서가 (자살) 실행을 위한 감정적인 것이라면, 유언장은 미리 준비하는 논리적인 글”이라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다. “유언장이란 게 심란할 때 쓰는 것이어서 염세적으로 흐를 것 같지만, 차분히 앉아서 써내려가다 보면 인생 전체를 돌아보고 삶의 의지를 되찾게 된다”고 말했다.
자유로를 시속 180km로 달리다…
이씨가 2003년 1월 유언장닷컴을 개설한 것은 죽을 뻔한 그의 경험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그 일을 겪은 건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9월 어느 날이었다. 집을 나설 때 죽을 뜻을 품었던 이씨는 차를 몰고 무작정 임진각으로 내달렸다. 책상, 걸상 등 사무용 기자재를 납품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97년 5월 부도를 맞은 이씨는 지독한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던 터였다.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하는 처지에서 3억원의 빚은 도무지 감당할 길이 없었다. 급기야 채권자들에 동원된 폭력배와 장애인이 지하 셋방으로 통하는 길을 막아서 아이들이 집에도 못 들어가는 지경에 이르자 이씨는 그만 삶의 의욕을 잃고 말았다.
임진각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자유로를 시속 180km로 달리던 이씨가 핸들을 살짝 꺾어 삶을 마감할까 갈등하던 찰나였다. 그의 뇌리에 지난 인생과 함께 집안 금고에 오래전부터 보관해둔 유언장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버지는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했다. 자랑스런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 만일을 위해 아이들에게 남긴 유언장이었다.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자랑스런 아버인가 하는….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는 아내 얼굴도 생각났고요.” 회사 부도 뒤 그의 아내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보험회사 영업에 뛰어들었다. 첫달에 번 40만원인가, 50만원 가운데 20만원을 떼내 남편에게 십전대보탕을 사다준 아내였다. 아이들과 아내 얼굴을 떠올린 이씨는 자신도 모르게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는 옆으로 심하게 요동치다 가까스로 멈춰섰다.
다시 일어설 각오를 했지만, 사업을 정상 궤도로 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한때 15명에 이르던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랑 1명만 남아 사무실(서울 목3동)은 휑뎅그렁했다. 사무실을 그냥 놀릴 수도 없어 실직자들을 위한 쉼터로 공간을 개방해 ‘IMF 모임터’로 이름지었다. 1998년 1월이었다. 같은 처지에 빠진 이들끼리 만나 하소연이라도 시원하게 한번 해보자는 취지였다. 이 모임터에는 갖가지 사연의 실직자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으로 변하고 언론에 수없이 오르내렸다. 서울 곳곳에 실직자 쉼터가 잇따라 생겨난 계기였다.
이씨의 모임터는 인근 빵집과 종교단체, 이름 없는 이들의 도움으로 간식과 신문 따위를 비치해 재취업의 통로 구실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무료하게 하루해를 보내기 일쑤였다. 이씨는 모임터에 온 이들에게 ‘앞으로 남은 내 삶이 3일뿐이라고 가정하고 세상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보라’고 권했다. 몇장씩 적어내려가며 대부분 숙연함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등 호응이 컸다고 한다. 이씨는 이때의 경험을 살려 유언장닷컴을 개설하기에 이른다.
만약 내 삶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면…
유언장닷컴의 초기 화면은 ‘만약 내 삶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면… 세상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이란 글귀로 시작된다. 외환위기 직후의 경험을 고스란히 살린 것이다. 이 사이트에 유료(2만2천원) 가입하면, 비밀번호를 부여받아 정해진 양식에 따라 세부 내용을 채운 비공개 유언장을 작성·보관할 수 있다.
이씨는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쓰는 게 유언장”이라며 “각자 유언장을 써보게 하면 자살이 지금보다 30%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유언장닷컴에 가입해 유언장을 작성했다는 몇몇 가입자는 “죽을 생각을 버렸다”며 고맙다는 전화를 해오기도 한다. 이씨는 현재 학원·사무용 기자재를 납품하는 하나로시스템과, 보험대리점인 하나로대리점(서울 등촌2동)을 운영하고 있다. 보험업에 새로 뛰어든 것은 유언장닷컴과 보험 영업을 연결시켜보자는 한 보험사 경영자의 제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씨가 2003년 1월 유언장닷컴을 개설한 것은 죽을 뻔한 그의 경험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그 일을 겪은 건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9월 어느 날이었다. 집을 나설 때 죽을 뜻을 품었던 이씨는 차를 몰고 무작정 임진각으로 내달렸다. 책상, 걸상 등 사무용 기자재를 납품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97년 5월 부도를 맞은 이씨는 지독한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던 터였다.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하는 처지에서 3억원의 빚은 도무지 감당할 길이 없었다. 급기야 채권자들에 동원된 폭력배와 장애인이 지하 셋방으로 통하는 길을 막아서 아이들이 집에도 못 들어가는 지경에 이르자 이씨는 그만 삶의 의욕을 잃고 말았다.

(사진/ 류우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