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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출판] 어떤 장엄한 사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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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9 00:00 수정 : 2008-09-17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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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성과 이주노동자의 험난한 사랑을 그린 <나마스테>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절필의 황량한 심정이 담긴 소설집
<흰소가 끄는 수레>에서 작가 박범신의 펜은 여전히 살아 있었으나 마음은 죽어 있었다. 그의 펜은 소설의 온갖 기교들 위로 곡예비행하면서 허무를 그려내고 있었다. 신작 <나마스테>(한겨레신문사 펴냄)에서 박범신의 펜은 좀더 뭉툭해졌으나 마음은 살아 있다. 그 마음의 부활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집약된다. 그러니까 <나마스테>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남의 땅’이라는 화두를 무겁게 들고 있다. 어려서 미국으로 건너간 신우의 가족은 LA 흑인폭동 사태 때 산산히 부서지고 만다. 흑인과 라틴계의 분노와, 그 분노를 교묘히 이용하는 백인들의 책략 앞에서, 신우의 아버지는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죽는다. 지긋지긋한 ‘남의 땅’에서 돌아온 신우는 결혼에 실패하고 부천시 춘의동에 있는 작은 집에 자신을 은폐하며 산다. 그때 무너진 ‘코리안 드림’을 안고 ‘남의 땅’에서 신음하는 네팔 노동자 카밀이 나타난다. 그는 상처투성이로 신우 앞에 서서 “세, 세상이 화안해요”라고 중얼거린다.

소설은 두개의 축을 따라 진행된다. 하나는 신우와 카밀의 험난한 사랑이며, 다른 하나는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카밀의 투쟁이다. 두 축은 시간이 지날수록 삐걱거리며 충돌하지만, 마지막 순간, 신우와 카밀의 장렬한 포옹 앞에서 합치된다. 이들의 종착역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계속, 끈질기게, 상주불멸의 본성과 같은” 사랑이다. <나마스테>는 한국인 여성과 이주노동자의 사랑을 통속성 속으로 밀어넣지도 않고 요리조리 감정선을 찔러대지도 않고 티베트 불교의 성찰 속으로 고양시킨다. 따라서 독자가 좋아하거나 말거나 이 소설은 장엄한 사랑의 이야기가 된다.


신우는 카밀을 통해서 사랑의 본질을 깨닫고 그의 아이까지 임신한다. 그러나 작은오빠의 반대로 카밀은 떠나고 만다. 신우는 그를 조용히 기다리며 그의 아이를 키운다. 작은 난로 하나 때문에 한국인 노동자들의 몰매를 맞고 옥상에서 뛰어내린 카밀은 결국 신우에게로 돌아온다. 이들은 잠시 가족이 되었다가 외국인 노동자 고용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당국이 불법 체류자를 ‘사냥’하면서 점점 위기를 맞는다. 카밀은 자신의 ‘카르마’(업)를 따라 투쟁의 대열로 들어선다.

이주노동자의 암담한 현실은 너무나 강렬해서, 때로는 1980년대 노동소설의 느낌에 빠져들기도 한다. 작가는 소설 속에 분노와 희망을 온 힘을 다해 불어넣고 있다. 그러나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소설의 주요 화자인 신우의 캐릭터다. 그는 구원이라곤 보이지 않는 진흙탕 속에서 천천히 자신의 힘으로 걸어나오며 점점 더 강해지고, 점점 더 현명해진다. 그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제발. 나는 기도했다. 제게 힘을 주세요. 강하게 해주세요. 적어도 이 땅에선 카밀의 보호자가 유일하게 나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에 내가 진실로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절실하게 생각했다. 떨어서도 안 되고, 두서없이 우왕좌왕해서도 안 되고, 포기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나는 불현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병원 앞의 식당으로 갔다. ‘불고기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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