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악상, 생뚱맞습니까?
등록 : 2005-03-29 00:00 수정 :
제2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지상 중계… 올해의 앨범 마이앤트메리 <저스트팝> 대중성 ‘인정’받아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3월22일 저녁 7시 서울 건국대학교 새천년홀. 텔레비전용 인기가요가 익숙한 이들에겐 생뚱맞고, 관심 없는 어르신들에겐 “또 애들 악악대는 거냐”라는 소리를 듣고도 남을, 비주류와 주류의 구분을 지우려다가 그 경계선에 앉아버린 제2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승철씨의 축하 무대로 시작된 이 행사는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가 주관하고 문화연대·문화일보가 주최했으며 이웃집 언니 오지혜씨와 구수한 입심을 자랑하는 윤종신씨가 사회를 맡아 시종일관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사회 오지혜·윤종신씨 “자, 빠져봅시다”
이날 수상식은 시상자와 수상자의 떨림이 교차하면서 재미를 던져줬다. 부문별 시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의 연주상 순서가 되자 대마초 논란의 중심에 선 김부선씨가 시상자로 등장했다. 수상자는 모그(Mowg). 그는 “비주류에서도 밑바닥인 베이스 주자라 더 기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런데 사실 얼마 전까지 제 룸메이트가 김부선씨를 잘 아는 분이었거든요”라고 말하면서, 갑자기 귓속말로 이름을 건네고 김부선씨는 이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NG는 아니지만 매끈한 연출 화면은 아닌 광경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작위를 배제한 자연스러운 시상식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3월22일 건강한 대중음악 판을 꿈꾸는 제2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열렸다.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전제덕씨(왼쪽에서 세번째)와 커먼 그라운드.
이 시상식의 기원을 좇아 올라가면 2003년 말 지상파·스포츠신문·케이블TV 등에서 진행한 7개 음악 시상식에서 이효리가 앨범 <스타일>로 거의 모든 상을 휩쓸었다는 사실에 닿게 된다. 이에 아쉬움이 컸던 이들이 대중음악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 시상식은 탄생하게 됐다. “계속 ‘빡세게’ 하겠습니다. 헤비메탈,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최우수 록 상을 받은 그룹 바셀린은 바로 이어진 공연에서 행사장의 공기를 격렬하게 흔드는 두터운 음들을 선보이면서 수상 소감을 입증해 보였다. 올해의 리듬앤드블루스(R&B) & 솔 상을 받은 거미의 놀라운 가창력도 객석을 전율의 도가니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공로상을 받은 한대수씨의 수상 소감은 곧 그의 음악관이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음악했어요. 이 음악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하다 보니 한 30년이 흘렀네요. 이젠 장례식에 자주 가는 나이예요. 하하하하하하.” 이어 “다른 종교와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음악으로 다양성을 찬양할 수 있는 세계를 꾸며봅시다”라고 말하자 객석은 뜨거운 박수로 응답했다. 오지혜씨는 “선생님댁에서 ‘노력하여 부자되자’라는 노래를 듣고 충격받았다”는 말을 곁들이기도 했다. “가수 한 지 20년인데 상을 받아본 적이 없네요. …재즈와 대중음악이 가까워져야 합니다”(올해의 재즈·크로스오버 시상자 심수봉), “음악과 함께 살다가 음악과 함께 죽으리라고 말하겠습니다”(올해의 영화 & 드라마 음악 시상자 주철환), “(한마디) 감사합니다!”(올해의 노래 수상자 조PD) 등 수상자와 시상자들은 제각기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진하게 드러냈다.
올해의 앨범에 마이앤트메리의 <저스트 팝>이 선정되면서 시상이 끝났다. 하지만 전제덕씨와 재즈 빅밴드 커먼그라운드의 피날레 공연은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전제덕씨의 하모니카 소리는 시원하고 경쾌했고, 거품처럼 일어나는 흥겨운 빅밴드 연주를 참지 못한 청중들은 곳곳에서 일어났다. “클래지콰이가 누구야. 3호선 버터플라이라는 애들이 또 후보야? 쟤네 상 주면 나가버릴래”라고 말하던 객석의 빨간 티 아가씨도 일어나 리듬에 몸을 실으며 “기타짱!”을 외치는 가운데 대단원의 막은 정말 내렸다.
한대수·커먼그라운드… 박수와 열광
클래지콰이·김동률·거미·휘성 등을 좋아한다는 이효미(22)씨와 윤지아(22)씨도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연말 TV 시상식도 가봤는데요, 거긴 아는 가수가 많이 나와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오늘은 그냥 ‘즐겁다’는 기분이 들어요.”(이효미) “그런 공연은 팬클럽들끼리 각자 호응을 보내기 때문에 오늘처럼 다 같이 즐기는 분위기가 안 나와요.”(윤지아)
음악인들의 축제를 만들고자 행사의 실질적 주체를 담당했던 사무국장 이지선씨는 시상식의 정체성에 대해 “‘많이 들은 음악’이 아니라 ‘들으면 좋을 듯한 음악’을 알리는 행사예요. 창작자는 판매량·방송 출연 횟수와 다른 방식으로 ‘인정’을 받고, 대중은 한정된 정보 채널로 알지 못했던 좋은 음악을 만나는 거죠”라고 말한다. “6차례에 걸쳐 수시간씩 회의를 했지만 물리적 한계가 있었다”며 “사무국의 상시 운영으로 매월 앨범 추천을 하면 좋겠다”고 ‘로드맵’을 세워보지만 시상식이 기자회견으로 대체될 뻔할 정도로 재정적 곤란을 겪었기에 쉽지 않아 보인다. 선정위원으로 참가한 웹진 <웨이브>의 차우진씨는 “대중음악이 뭐냐는 논의가 충분치 못했다”며 “그래도 주류·비주류의 구분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앨범의 완성도를 살폈다”고 평한다. 16명에서 30명으로 확대된 선정위원회가, 정치 이념을 초월해 ‘좋은 음악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조·중·동 및 텔레비전의 일부 프로그램들을 끌어안는다면 객관성은 더욱 담보될 듯하다.
텔레비전으로 많이 들은 음악이 대중음악인가, 대중의 관심은 거대 기획사의 물량 공세로 조작되는 건 아닌가라는 고민이 시작될 때 이 시상식은 새롭게 보인다. <한겨레21> 음악기사가 담아야 했지만 담지 못했던 음악인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면서 ‘원스톱 안내’가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이 행사의 의미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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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받으니까 힘이 됩니다”[뒤풀이 | 인터뷰 수상자 마이앤트메리·바비킴]
무대의 막이 내렸다. 한숨을 돌린 행사 관계자들이 행사장 옆에 있는 식당에 모여 가볍게 여운을 즐겼다. 다들 배가 고팠다는 듯이 김밥·떡 등 소박하게 마련된 뷔페 음식을 한 그릇씩 챙겨들고 옹기종기 모여앉는다. 한대수씨, 김부선씨, 김창남 교수, 클래지콰이 등 수상자와 시상자, 심사위원들이 흩어져 여운을 나누는 가운데 수상자 마이앤트메리와 바비킴을 잠시 만나봤다.
마미앤트메리(올해의 앨범·올해의 모던록) “저희랑 시상식은 상관이 없을 거라 생각해서 시상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막상 받으니 정말 고맙고 힘이 됩니다.”(한진영·베이스) “인디다 메이저다, 그런 것 상관없었는데, 3집을 만들면서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그런 희망이 있죠.”(박정준·드럼) “정말 받을 줄 몰랐어요. ‘악!’ 하는 제 표정 카메라가 잡았으면 볼 만했을 거예요. 곡마다 스토리를 짜면서 고심해서 만들었습니다. 열심히 하라고 주신 것 같습니다. 저희 음악은 말 그대로 ‘저스트 팝’이에요. 소수를 위한 록이 아니고, 즐겁고 부담 없는 음악입니다!”(정순용·기타 겸 보컬)
바비킴(올해의 힙합) “열심히 만들었는데 상을 받으니 당연히 기분 좋습니다. 정성스럽게, 정확하게 음악을 듣고자 한 심사위원들이 주신 거라 기쁘네요. 한대수, 김도균, 강산에 선배님과 같은 무대에 서서 좋습니다. 그런데 저도 오늘 처음 뵙는 분들이 있었어요.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전부가 아니구나’라고 새삼 느꼈죠. 힙합이 되든 솔이 되든, 새로운 음악으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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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한국대중음악상 수상내역다음의 수상 내역은 그 자체로 2004년작 추천 음반 목록이 된다. “들을 만한 음악이 없어”라고 투덜거리는 대신 아래 목록에 의지해 광활한 음악 세계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종합부문 △올해의 앨범 마이앤트메리 △올해의 노래 조PD <친구여>() △올해의 가수 (남자) 이승철 , (여자) 이소라 <눈썹달>, (그룹) 클래지콰이 △올해의 신인 M.O.T <비선형> △올해의 연주 모그(Mowg)
장르부문 △최우수 모던록 마이앤트메리 △최우수 록 바셀린 < Blood of Immortality> △최우수 힙합 바비킴 △최우수 R&B & 솔 거미 △최우수 팝 클래지콰이 △최우수 재즈 & 크로스오버 전제덕 <전제덕> △최우수 영화 & 드라마 음악 <아일랜드>
특별부문 △공로상 한대수 △선정위원회 특별상 이기용 △올해의 레이블 카바레사운드, JNH
선정위원회 △학계 김창남(성공회대)·주철환(이화여대)·한상원(동덕여대)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김형찬·성우진·오공훈·조원희·박애경 △라디오 PD 남태정(문화방송)·구경모(SBS)·김세광(CBS)·신정수(PBC)·조경서(전 경인방송) △케이블TV PD 김기웅(kmtv)·홍수현(M-net) △음악담당 기자 이승형(문화일보)·우승현(문화일보 AM7)·김고금평(헤럴드경제)·서정민(한겨레)·김양수(월간 페이퍼) △음악전문 매체 박준흠·나도원·김학선(이상 웹진 가슴)·이용우·차우진(이상 웹진 웨이브)·원용민(오이스트리트)·송수연(튜브뮤직) △시민단체 이동연(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서정민갑(한국민족음악인협회) (총 30명) △자세한 심사평은 www.kmusicawards.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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