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기제를 스톱시킨 한 여자의 건조한 일상 <여자, 정혜>
▣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dmsgud@hani.co.kr
지난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장편 데뷔작은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였다. 지난해부터 부산영화제와 베를린, 선댄스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를 찍고 턴한 뒤 ‘드디어’ 3월10일 극장 관객과 만난다. 영화적 상상력과 발랄함이라는 면에서만 말하면 이 영화는 앞의 영화들에 비해 덜 ‘새것’ 같다. 대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여백을 응시하고 그 무심함에서 감정을 끌어내는 힘은 신인감독의 것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노련하고 야심차다.
본래 <정혜>(우애령 지음)라는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정혜(김지수)는 한동안 한국 여성소설에 자주 등장하던 ‘아무 데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여자처럼 보인다. 끝없이 고립돼 있지만 아무도 그녀의 처지에 관심이 없고 본인도 무심하다. 그는 다만 정물화의 액자나 주전자처럼 우체국 한구석에 앉아 있거나 혼자 사는 집의 소파에 멍하니 누워 있다. 화초에 물을 주고 저녁에는 양치질을 하고 홈쇼핑 텔레비전을 보면서 김밥과 컵라면을 먹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정된 피사체 같다. 도통 표정을 바꾸지 않는 조그만 얼굴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관객은 다만 추론해볼 뿐이다. 건조한 일상 사이로 슬쩍슬쩍 끼어드는 과거의 상처, 죽은 엄마의 모습 등을 통해 29살 정혜의 인생에도 지독하게 아팠던 순간이 있었고, 그 사건들은 그녀의 껍질을 더욱 단단하고 질기게 만들었을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우체국에서, 편의점에서 몇번 마주친 남자(황정민)에게 난데없이 “저기요, 저녁식사 하러 올래요?”라고 묻는 그녀에게서 사랑을 찾고 싶은 희망이나 의지가 없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남자는 오지 않고 정혜는 천천히 그를 위해 준비했던 반찬 그릇들에 덮었던 비닐을 열고 밥을 먹는다. 그녀는 울지도 화내지도 않지만 젓가락질을 하는 손가락에서 밥알을 오물거리는 입 모양에서 슬픔이 진동이 고요하게 퍼진다. 마찬가지로 이름 없는 작가였던 엄마의 책을 새로 구해 책장에 꽂는 그 뒤통수에서 그리움이, 주워온 새끼 고양이 밥그릇에 조심스레 깡통 참치를 옮기는 손길에서 삶에 대한 애정이 감지된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고양이를 안아주는 모습은 기대할 수 없다. 앞으로도 깔깔 웃거나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자, 정혜>는 전혀 영화 같지 않은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전혀 극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담아낸다. 그렇게 조합돼 완성한 이 영화는 리모컨을 뻔질나게 돌리면서 <개그콘서트>가 나오면 웃고, <봄날>이 나오면 안타까워지는 ‘리액션’의 감정기제를 잠시 멈춰서게 한다. 동시에 부지런히 리모컨을 돌리는 나의 모습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끌어내 그걸 다시 응시하게끔 한다. 그렇게 우두커니 있다 보면 그 여자, 정혜가 몹시 궁금해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사과하기 위해 찾아온 남자를 용서했을까. 그녀의 얼굴에도 홍조가 머금어질까. 건널목 앞에서 무심하게 앞을 응시하는 누군가들을 볼 때마다 이 궁금증은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본래 <정혜>(우애령 지음)라는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정혜(김지수)는 한동안 한국 여성소설에 자주 등장하던 ‘아무 데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여자처럼 보인다. 끝없이 고립돼 있지만 아무도 그녀의 처지에 관심이 없고 본인도 무심하다. 그는 다만 정물화의 액자나 주전자처럼 우체국 한구석에 앉아 있거나 혼자 사는 집의 소파에 멍하니 누워 있다. 화초에 물을 주고 저녁에는 양치질을 하고 홈쇼핑 텔레비전을 보면서 김밥과 컵라면을 먹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정된 피사체 같다. 도통 표정을 바꾸지 않는 조그만 얼굴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관객은 다만 추론해볼 뿐이다. 건조한 일상 사이로 슬쩍슬쩍 끼어드는 과거의 상처, 죽은 엄마의 모습 등을 통해 29살 정혜의 인생에도 지독하게 아팠던 순간이 있었고, 그 사건들은 그녀의 껍질을 더욱 단단하고 질기게 만들었을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우체국에서, 편의점에서 몇번 마주친 남자(황정민)에게 난데없이 “저기요, 저녁식사 하러 올래요?”라고 묻는 그녀에게서 사랑을 찾고 싶은 희망이나 의지가 없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남자는 오지 않고 정혜는 천천히 그를 위해 준비했던 반찬 그릇들에 덮었던 비닐을 열고 밥을 먹는다. 그녀는 울지도 화내지도 않지만 젓가락질을 하는 손가락에서 밥알을 오물거리는 입 모양에서 슬픔이 진동이 고요하게 퍼진다. 마찬가지로 이름 없는 작가였던 엄마의 책을 새로 구해 책장에 꽂는 그 뒤통수에서 그리움이, 주워온 새끼 고양이 밥그릇에 조심스레 깡통 참치를 옮기는 손길에서 삶에 대한 애정이 감지된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고양이를 안아주는 모습은 기대할 수 없다. 앞으로도 깔깔 웃거나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자, 정혜>는 전혀 영화 같지 않은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전혀 극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담아낸다. 그렇게 조합돼 완성한 이 영화는 리모컨을 뻔질나게 돌리면서 <개그콘서트>가 나오면 웃고, <봄날>이 나오면 안타까워지는 ‘리액션’의 감정기제를 잠시 멈춰서게 한다. 동시에 부지런히 리모컨을 돌리는 나의 모습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끌어내 그걸 다시 응시하게끔 한다. 그렇게 우두커니 있다 보면 그 여자, 정혜가 몹시 궁금해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사과하기 위해 찾아온 남자를 용서했을까. 그녀의 얼굴에도 홍조가 머금어질까. 건널목 앞에서 무심하게 앞을 응시하는 누군가들을 볼 때마다 이 궁금증은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