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을 살찌우는 어린이 전문 도서관… 노인교사의 문화교실 등 정성스런 민간 운영 돋보여
▣ 제천=글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 2월18일 오후에 접어들자 한산하던 충북 제천 기적의 도서관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봄방학에 들어가는 초등학생들이 읽고 놀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는 것이다. 도서관 문을 열면 어린이 사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한정화(중앙초 6년)양과 석영명(홍광초 6년)양이 도서관을 찾는 어린이들이 지켜야 할 약속을 받았다. 약속은 책을 한권씩 가져다 읽고 제자리에 놓는다거나 책나라(열람실)에서 뛰어다니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약속을 하는 어린이가 주말 하루에 400여명이나 된다. 어린이들은 연령대별로 촘촘히 꽂힌 서가에서 한권씩 골라 저마다 맘에 드는 책 읽는 공간으로 향한다.
민·관 어렵게 손잡고… 주말마다 북적북적 인구 14만여명이 거주하는 제천에 기적의 도서관이 2003년 12월에 개관한 것은 어린이 전문 도서관을 접해보지 못한 시민들에게 ‘축복’이었다. 지자체와 주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기적의 도서관 2호관으로 개관한 것이었다. 지난해 여름에 전남 순천의 기적의 도서관 1호관을 둘러본 장예림(봉양초 3년)양은 “순천의 도서관은 2층으로 지어져 훨씬 넓은 공간에 책과 방이 많아서 부러웠지만 우리 도서관은 뒤쪽에 야산이 있어 산책로를 따라 산책도 하고, 나무와 꽃, 곤충도 쉽게 만날 수 있고 다양한 문화 공연을 즐기며 체육공원에서 운동도 할 수도 있다”며 제천 자랑을 잊지 않는다. 현재 기적의 도서관은 순천과 제천, 진해를 비롯해 전국 7곳이 문을 열었다. 오는 5월 충남 금산에, 10월 인천 부평구에 기적의 도서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애당초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책읽는 사회·상임대표 도정일)이 문화방송 와 함께 선정한 후보지는 모두 12곳이었다. 그런데 태백이 지자체 예산 부족으로 건립 일정이 표류하고 있으며, 경기도 일산과 대구시 달서구는 도서관 운영에 관련된 문제로 ‘책읽는 사회’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들 지역은 건립비용과 운영 일체를 지자체에서 떠맡아 어린이 도서관을 세우기로 했다. 이로 인해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실제로 기적의 도서관 건립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불거졌다. 무엇보다 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가 지난해 초 폐지되면서 기적의 도서관 터를 내놓으며 유치 경쟁을 벌이던 지자체들의 관심이 시들해졌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개관 도서관에 냉장고와 냉·온방기 등까지 제공하던 협찬사도 줄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선정도서 수익금 50여억원이 바닥을 보이면서 책읽는 사회의 건립비용 지원도 절반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민관 합작에 의한 프로젝트에 금이 가면서 민간에 도서관 운영을 맡기려고 했던 지자체의 태도가 달라지기도 했다.
이런 문제는 제천 기적의 도서관 건립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민간위탁 운영 및 책읽는 사회에 위탁 운영을 맡기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지역 사회의 인사들이 있었다. 도서관이 개관한 지 한달 이상 지난 뒤 민간위탁 운영방안이 제천시의회를 통과하고, 2월 말에야 책읽는 사회가 민간위탁 수탁자로 결정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수탁자가 결정된 뒤 제천시는 든든한 후원자 구실을 하고 있다. 현재 제천 기적의 도서관은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위원장 판화가 이철수)가 운영 전반을 주관하고 관장을 비롯한 5명의 상근자는 운영위원회의 결정 사항을 집행하는 구실을 한다.
그렇다고 제천 기적의 도서관이 전문가 중심으로만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들에게 무한한 상상과 특별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너나없이 나서고 있다. 자원활동가로 이뤄진 ‘지킴이’들은 주황색 앞치마를 두르고 책을 정리하거나 어린이 책에 관한 공부도 하고 어린이 동아리도 이끌고 있다. 여기엔 농한기를 맞아 논밭에서 벗어나 부지런히 책장을 정리하거나 도서목록을 작성하는 농민들도 있다. 개관 초기에 자원활동가 교육을 받고 지킴이로 나선 주부 김화영씨는 “자원 활동을 하면서 책을 고르는 안목도 생기고 아이들을 더욱 폭넓게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시조창·옛날얘기·짚공예 재미있어요"
요즘 제천 기적의 도서관에 가면 노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구비민속학을 전공한 최진봉 관장이 노인 참여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도입했기 때문이다. 매주 금요일 2시에 구순이 넘은 김성수 할아버지(제천 시우회 사범)가 제자인 윤지열 할머니의 장구 소리에 맞춰 ‘다섯나무 극장’ 무대에서 ‘시조창’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며, 도서관 한쪽에 있는 이야기방에서는 어린이들이 할머니·할아버지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기도 한다.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어린이들과 서로 무릎을 맞대고 앉아 옛날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는 것이다. 20여명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이야기 동아리를 결성해 활동하면서 저마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개발해 틈틈이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다.
제천 기적의 도서관을 찾는 어린이들은 짚 공예나 세시놀이, 그림연극 등의 문화체험 활동 시간에도 할머니·할아버지의 지도를 받는다. 칠순의 김순복 할머니는 “요즘 아이들은 산만해서 한자리에 못 앉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옛날 이야기에 빠져드는 게 신기하고 놀랍다”면서 매주 토요일을 기다린다고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가 없을 때에는 다양한 동아리 활동이 이뤄진다. 시를 읽던 어린이들은 시 동아리를 만들어 ‘제천 동화 읽는 어른 모임’ 회원으로 지킴이 활동을 하는 장경아씨의 지도를 받는다. 지킴이들이 자기계발 차원에서 시작한 인형극 모임, 놀이연구회도 어엿한 공연을 선보일 정도다.
한동안 ‘기적의 도서관에 기적이 없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다. 그런 가운데 기적의 도서관은 놀이터이자 배움터 구실을 하며 중소 도시에 ‘문화 달력’을 만들게 하는 등 ‘작은 기적’을 이뤄내고 있다. 여기에서 어린이들은 ‘문화 소외’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며 삶의 터전에 대한 자부심을 키운다. 제천 기적의 도서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판화가 이철수씨는 “지역 사회에서 도서관을 가꾸는 것은 미래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경쟁력 있는 미래형 인재로 커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첨단산업 시설을 유치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면서 “기적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9월 ‘기적의 도서관 전국 협의회’가 발족했다. 여기에서 도서관 자원활동가 공동 교육을 하며 지역별로 강점이 있는 프로그램을 전파하고 있다. 기적의 도서관이라는 간판이 더 생겨나지 않아도 어린이 도서관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 게 사실이다. 지난 2월23일 서울 서초구에서는 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한 어린이 도서관이 문을 열기도 했다. 이젠 기적의 도서관이 내실을 다져 어린이 도서관의 균형 있는 발전에도 기여해야 한다. 하지만 일정 기간 동안 위탁기관으로 선정된 기적의 도서관들은 벌써부터 ‘계약 연장’을 염려해야 할 처지다. 민간위탁 기적의 도서관의 미래는 주민의 관심과 참여에 달려 있는 셈이다.
어린이 도서관이 미래를 위한 창조적 공간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것이 머릿속의 당위 명제가 아니라면 주민들의 손끝 발끝을 움직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제천 기적의 도서관이 모토로 삼은 ‘우리가 꿈꾸고 함께 만드는 도서관’이 실현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진봉 관장은 시민참여와 민간위탁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도서관은 시민을 위한 서비스 기관으로서 이용자에게 ‘만족’을 주는 게 최대의 미덕이다. 민간 위탁 도서관은 운영 자체가 열려 있기 때문에 이상적인 도서관의 모습을 구현할 수 있다. 도서관 직원과 운영위원회 그리고 자원활동가가 힘을 모아 이용자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 2월18일 오후에 접어들자 한산하던 충북 제천 기적의 도서관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봄방학에 들어가는 초등학생들이 읽고 놀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는 것이다. 도서관 문을 열면 어린이 사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한정화(중앙초 6년)양과 석영명(홍광초 6년)양이 도서관을 찾는 어린이들이 지켜야 할 약속을 받았다. 약속은 책을 한권씩 가져다 읽고 제자리에 놓는다거나 책나라(열람실)에서 뛰어다니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약속을 하는 어린이가 주말 하루에 400여명이나 된다. 어린이들은 연령대별로 촘촘히 꽂힌 서가에서 한권씩 골라 저마다 맘에 드는 책 읽는 공간으로 향한다.

제천 기적의 도서관은 어린이들의 쉼터이고 놀이터이며 배움터이다. 어린이와 부모들이 열람실에서 책을 읽고 있다.
민·관 어렵게 손잡고… 주말마다 북적북적 인구 14만여명이 거주하는 제천에 기적의 도서관이 2003년 12월에 개관한 것은 어린이 전문 도서관을 접해보지 못한 시민들에게 ‘축복’이었다. 지자체와 주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기적의 도서관 2호관으로 개관한 것이었다. 지난해 여름에 전남 순천의 기적의 도서관 1호관을 둘러본 장예림(봉양초 3년)양은 “순천의 도서관은 2층으로 지어져 훨씬 넓은 공간에 책과 방이 많아서 부러웠지만 우리 도서관은 뒤쪽에 야산이 있어 산책로를 따라 산책도 하고, 나무와 꽃, 곤충도 쉽게 만날 수 있고 다양한 문화 공연을 즐기며 체육공원에서 운동도 할 수도 있다”며 제천 자랑을 잊지 않는다. 현재 기적의 도서관은 순천과 제천, 진해를 비롯해 전국 7곳이 문을 열었다. 오는 5월 충남 금산에, 10월 인천 부평구에 기적의 도서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애당초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책읽는 사회·상임대표 도정일)이 문화방송 와 함께 선정한 후보지는 모두 12곳이었다. 그런데 태백이 지자체 예산 부족으로 건립 일정이 표류하고 있으며, 경기도 일산과 대구시 달서구는 도서관 운영에 관련된 문제로 ‘책읽는 사회’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들 지역은 건립비용과 운영 일체를 지자체에서 떠맡아 어린이 도서관을 세우기로 했다. 이로 인해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제천에서 도서관의 기적을 이루려는 사람들. 지킴이들이 새책을 정리하고 있다.

시조창을 배우는 어린이들.

구비민속학을 전공한 최진봉 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