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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 편한 세상, 이빨 편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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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2 00:00 수정 : 2009-02-0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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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질환의 주인공 ‘치아’의 항변… “암 걱정하는 반의 반만큼이라도 내 걱정 좀 해줘요”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헤이, 오랜만이다.나야 나 이빨. 아XX 알았어, 이! 이빨은 동물 이를 부르는 말이라며 그래 나 열나 무식해.왜 시비냐고? 내가 이렇게 건들거리고 비뚤어진 건 다 네가 날 방치해서 그런 거잖아. 언제 나한테 관심 한번 줬냐고. 하루 세번 밥 먹은 지 삼분안에 삼분씩 닦자고 구호만 외칠 게 아니라 하루에 한번, 아니 이틀에 한번이라도 챙겨봐 꼼꼼히 보고 깨끗이 닦아달란 말이야. 그러면 내가 뭐하러 치태니 치석이니 하는 애들하고 어울리겠어. 갸들 성격은 나쁘지만 의리 하난 좋아. 입에는 340종의 세균이 우글거리잖아.치태는 이똥이라고 불리는 세균덩어리(플라크)고, 그게 오래돼 돌처럼 뭉친게 치석이야.

서른다섯 이후에는 풍치가 위험하지

6살 전후 이갈이를 하기 전 젖니는 영구치의 자리를 잡아주며 발음, 씹는 습관, 턱뼈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사진/ 류우종 기자)


너의 무책임을 참는 데도 지쳤어. 내가 천년만년 그대로 있을 줄 아니? 생존권을 위해서라도 할 말은 하겠어. 너 요즘에 스낵이랑 비스킷이랑 좋아 지내더라. 빨아먹는 사탕이나 초콜릿은 침에 녹기나 하지, 밀가루랑 설탕이 뭉친 스낵류는 죽음이야. 접착제처럼 달라붙는다고. 내 몸에는 굴곡이 있잖아. 당 성분이 내 몸에 붙어서 세균하고 짝짜꿍하면 산이 만들어지는 거야. 충치는 그게 내 몸의 표면을 부식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거고. 자꾸 부식되면 안쪽 신경을 건드릴 수도 있어. 옆에 있는 그림 봐. 겉면 법랑질은 감각이 없지만 상아질은 온도 자극에 민감해. 찬 거 더운 거 먹을 때 시리고 아픈 게 그 탓이야. 상아질은 숨구멍이 있어서 삼투압도 생기지. 자꾸 괴롭히면 상아질도 나가떨어져 신경이나 혈관을 더 이상 보호해줄 수가 없어.

내 몸 사이사이 옆구리도 한번 봐. 20대 넘어가면 그쪽이 부식되는 경향이 큰데, 그러면 뿌리 부분 백악질도 다쳐. 걘 법랑질과는 달리 훨씬 무른 애란 말이야. 나이 들면 자연히 잇몸이 내려가 백악질이 드러나기도 해. 그때 충치가 생기면 정말 비극이지. 문제는 그 다음이야. 내 하체를 감싸주는 잇몸까지 버릴 수 있다고. 불쌍한 잇몸. 걔가 무슨 죄가 있냐고. 날 감싸준 죄밖에 없다고. 잇몸 버리면 치주질환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풍치가 생기는 거지. 너 나 없으면 걔랑 살아야 하잖아.

스무살 전에는 충치를 신경써야 하지만 그 이후, 특히 서른다섯살 이후에는 풍치가 위험하지. 자칫하면 날 통째로 들어내고 새로 심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암, 고혈압, 당뇨병 걱정하는 반의 반만큼이라도 내 걱정 좀 해봐. 콧방귀? 증거를 대주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10대 질환 중 3개가 다 나랑 관련된 거야. 2002년 건강보험 급여비를 봐. 두 종류의 충치가 1위와 4위, 잇몸병이 7위야. 가계 진료비랑 질환 통계를 봐도 마찬가지야. 만성질환 1위는 충치, 7위는 잇몸병이야.

이런데도 내가 사고쳐서 돈 들어간다고 투덜댈 거야? 장난하냐? 다 네가 자초한 일 아냐. 나 때문에 좋아하는 고기도 못 씹는다고? 내 몸이 치석으로 덮여가는데 내버려두면서 잇몸약 골백번 먹어봐라. 효과 있나. 칼슘이 부족해서 흔들린다고? 내 몸이 칼슘이랑 인산이 주성분이지만, 네가 먹는 칼슘이 꼭 나한테 오란 법 있냐고. 눈 나쁘다고 눈 먹고, 콩팥 나쁘다고 콩팥 먹냐고.

어릴 때부터의 바른 칫솔질이 구강건강의 필수 요건이다. 자주 닦는 것보다 꼼꼼히 닦는 게 중요하다. (사진/ 한겨레 황석주 기자)

그리고 너. 왜 애 핑계 대냐? 애 하나 낳으면 이 하나 나빠진다고? 무슨 소리. 뼈에 칼슘이 다 빠져나가도 마지막까지 이는 남아. 칼슘이 아주 안정적인 형태로 있기 때문이라고. 임신·출산을 거치면서 임신성 치주염이 올 수는 있지. 온몸이 민감해질 때니 아주 적은 치석에도 예민해지고 조그만 자극에도 피가 날 수 있어. 빨리 처치하지 않으면 염증이 심해져 잇몸 뼈까지도 상할 위험이 있는 거야. 애 갖기 전에 꼭 검진 받고, 애 갖고도 스케일링은 받을 수 있으니까 걱정 놓으셔.

솔직히 반만년 역사 동안 네가 날 소중하게 여긴 적은 한번도 없었어. 옛말에 치아 건강은 오복 중 하나라고 했다던데, 웃기지 마.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왜 생겼겠어. 구한말에 평균 수명이 마흔살이 안 됐는데 내가 괴롭혀봤자 얼마나 괴롭혔겠냐고. 그전에 모두 돌아가셨다고. 그 시절의 분들은 잘 닦아주지는 않았지만 좋은 식단을 유지해주셨지. 난 거친 음식이 좋아. 말랑말랑한 요즘 음식 땜에 미치겠어. 과자랑 햄버거 먹는 거랑, 배추랑 시금치 먹는 거랑, 어떤 게 내 몸을 광나게 해주겠어.

내게 돈 쓰는 걸 발발 떨지 마

요즘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칫솔질이 나온다던데 삼십대 이후 사람들은 억울하겠어. 시범학교 다닌 사람 빼고는 학교에서 받은 구강교육이라고는 가끔 건치아동 선발용이라며 이리저리 입 쩍쩍 벌린 기억밖에 없잖아. 홍조류·녹조류도 중요하고 미토콘드리아, 미적분도 중요하지만, 나만 한 인생의 반려자가 어딨어? 먹는 기쁨, 단정한 얼굴, 좋은 발음, 가지런한 미소, 음, 아름다운 단어가 쏟아지네. 꼽자면 한두개가 아니지. 날 원망 말고 당국을 원망해. 왜 정규교육에서 칫솔질을 안 가르쳐줬냐고. 틀니 공짜로 해준다고 ‘정치적 선전’만 해댈 게 아니라구.

그리고 너 공짜 좋아하지 마. 감기 치료비는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왜 내게 돈 쓰는 건 발발 떠냐고. 미장원 가고 목욕탕 가는 돈은 안 아깝냐? 그리고 왜 칫솔 벌어질 때까지 안 바꿔주는 거야. 칫솔은 모가 가늘고 부드럽고 끝이 라운딩 처리된, 전체적으로 작은 게 좋아. 어금니 두개 정도 크기 말야. 전봇대로 이 쑤실 일 있냐고. 반도체는 세계 1위라면서 칫솔은 개판이야. 잘 골라 써. 그리고 향 강한 치약 밝히지 마. 향이 강하면 대충 닦고도 잘 닦은 양 착각하지. 소금은 왜 좋은지 도통 모르겠는데, 심리적 효과인가? 어쨌든 나하고는 상관없어. 괜히 굵은 소금 쓰다간 잇몸을 긁히기만 하지.

우리 부모는 그렇다 해도 배울 만큼 배운 네가 자식한테 하는 거 봐. 조금만 잘못하면 치과 데려간다고 협박하잖아. 어릴 때 주입받은 공포는 평생 따라다녀. 또 애 이 닦아줄 때 뒤에서 앉고 거울 보면서 해주면 덧나니? 손가락에 거즈 끼고 차근차근 닦아줘봐. 기왕이면 모유 먹이는 게 내 몸에든 애 구강 발달에든 도움이 되지만, 우유를 먹이더라도 제발 우유병 물려 재우지 마. 우유병 충치라고 유치가 썩게 돼. 최악의 사례인데 요구르트병 물고 자게 하는 것도 봤어. 요구르트는 산성이라 우유보다 더 나빠. 먹이더라도 입을 꼭 헹궈줘. 유치 충치는 ‘이갈이’ 할 거니까 내버려둬도 된다고들 여기는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야. 통증 심하면 성격 버려. 또 이와 이 사이가 썩으면 앞쪽으로 치아가 밀려 자리가 좁아져 영구치가 비뚤게 난다고. 심하면 윗니 아랫니 맞물림이 틀어지거나 윗턱과 아랫턱이 맞지 않는 부정교합에 이를 위험도 있어. 발육을 위해서나 심리적으로나 미관상 안 좋다고.

그나저나 제발 내 몸 색깔 타령은 그만해. 잘 골라 먹고 잘 닦아도 누레진다고? 법랑질이 마모돼 상아질이 비쳐지는 것일 수도 있어. 상아질은 원래 노르스름해. 웬만하면 그냥 살아. 상태 심하면 치아 내부에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검진 받아. 까놓고 말하면 미백치약은 효과 없어. 미백 효과를 위해 첨가되는 건 퍼옥사이드 계통의 성분인데, 시판되는 치약에 포함된 정도로는 효과 없어. 많이 넣으면 된다고? 큰일 날 소리 하네. 그 성분은 고농도로 오랫동안 사용하면 입 안에 엉뚱한 미생물을 증가시키거나 신경·잇몸 손상까지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어.

교정·보정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정신차렸다면 팁 하나 줄게. 충치가 까만 건 오히려 저항성이 센 경우야. 누르스름하거나 갈색이 더 위험해. 그러니까 ‘거울 들여다보고 아직 까맣지는 않네’하고 안심할 게 아니란 말야. 또 사랑니는 가급적 빼. 걔 싸이코야. 시대착오적인데다 힘도 열라 세. 걔가 밀고 올라오면 내가 있을 자리가 없어. 통증도 통증이지만 하루아침에 내 몸이 모두 비뚤어질 위험이 있다고.

자료:보건복지부

요즘 애들 교정 많이 하지? 식습관도 있지만 악골 구조가 변화한 탓이야. 진화 과정에서 위아래 턱 크기가 작아져 이가 있을 자리가 좁아진 거지. 또 요즘에는 애를 업어 재우거나 옆으로 재우잖아. 악골이 더 좁아지지. 원시시대에는 이가 36개였어. 지금은 사랑니 빼면 28개잖아. 위아래 양쪽에 어금니가 2개씩 더 있었던 거야. 흑인 가운데 이 사이가 벌어진 사람이 많은 건 악골이 크기 때문이야. 그렇다고 백인이 우월한 종족이라고는 착각하지 마. 털은 백인에게 더 많잖아. 진화는 공평하다구.

교정·보정은 꼭 애들만 하는 게 아니야. 일찍 한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야. 주걱턱은 가급적 빨리 하는 게 좋다고들 하는데, 위턱(상악)이 돌출된 사람 있지? 이 경우는 아래턱이 덜 발달해서 그런 것일 수 있으니 너무 일찍 하는 건 안 좋을 수 있어. 성장이 어느 정도 된 뒤에 하는 게 좋지. 덧니도 일단 자리잡는 걸 지켜봐야 해. 다만, 애 악골이 너무 좁아 이가 자라면서 얼굴 형태 망가뜨리겠다 싶으면 교정을 일찍 하는 게 좋을 수도 있어.

이가 아프면 치과 가서 뺀다고 여기는 것은 덴털 아이큐가 무지 낮은 태도야. 2003년 국민 구강건강 실태조사를 보니까, 농촌보다는 대도시일수록, 남자보다는 여자쪽이 치과의원 이용률도 높고 치아건강에 대한 염려 정도도 큰 것으로 나왔어. 지역 차이는 치과가 멀리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지. 근데 성별 차이는 아이큐 차이인가?

이론상으로는 여든살까지 20대의 이를 다 유지할 수 있대. 자연적 기능 저하는 충치·풍치 같은 병적인 이유 때문에 생기는 기능 저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해. 그러니까 부모 탓 나이 탓 그만하고. 3대 예방법, 칫솔질, 식습관, 정기 검진을 잊지 말라구. 지금부터라도 있을 때 잘하란 말이야.

도움말: 김정찬 동대문 치과의원 원장, 권수경 권치과의원 원장, 구동준 구동준치과의원 원장


“할아버지 치아를 19개까지”


2004년 구강건강 포스터 당선작과 70년, 87년 당선작(왼쪽부터).

대한구강보건협회(전한국구강보건협회)가 1968년부터 벌여온 청소년 포스터·표어 공모 당선작들을 보면 시대별 구강건강 계몽의 변천사가 보인다. 1960∼70년대는 “아침 저녁으로 이를 닦읍시다” “햇님보고 이닦고 별님보고 이닦자” “닦고먹고 먹고닦자”는 표어처럼 하루 두번 이닦기와 청결을 강조했다. 밥 먹기 전에 이 닦는 것이 좋다는 말이 많았는데, 입안의 세균을 미리 없애자는 취지였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으로 들썩였던 1980년대는 “구강보건은 어릴 때부터” “건강우승은 구강보건에서” 같은 경쟁심을 유발하는 제목이 눈에 띈다. 1990년대에는 “깨끗한 치아 깨끗한 마음” “건강한 치아 아름다운 조화”로 미적 기능을 강조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하루 세번 이닦기’와 ‘수돗물 불소사업’이 주로 담겼다. 2004년 포스터 최우수작은 휴대전화 사용 세태를 반영한 “구강보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치아 건강 하루 3번’”(영신여자실업고 박해미)이었다.

구강건강에 대해 정부의 관심이 도통 없었던 시절부터 민간단체였던 대한구강보건협회의 활약은 눈에 띈다. 이들의 활동은 정권에 따라 부침이 있었다. 1967년 협회 출발 이듬해부터 공모전으로 ‘국민계몽’을 시작해, 1971년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구강건강역학조사를 했다. 3년 주기마다 해야 했지만 정부부처에 구강정책 담당과가 없어져 단발로 그쳤다. 1976년부터는 전국 시도별로 학교 불소용액 양치사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칫솔질을 시킨 뒤 불소용액으로 양치해서 내뱉게 하는 것이다. ‘관계기관의 협조가 약해’ 참여학교가 많지는 않았지만, 학교현장에서 충치 예방에 나섰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사업은 1983년 전두환 정권이 공중보건 치과의 제도를 도입하면서 “국가에서 할 테니 사업을 넘기라”고 지시해 보건소로 넘겨야 했다. 그 다음 역점을 둔 사업은 수돗물 불소 농도 조정사업이다. 보건복지부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와 함께 펼치는 이 사업은 반대의 목소리도 높아 지자체별로 시행 여부가 갈리나, 현재 전국 31개 정수장에서 불소 농도를 조절해 충치 예방을 하고 있다고 자평한다.

정부가 나선 것은 한참 뒤이다. 보건복지부에 구강보건과가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1997년이었다. 구강의료 전문가들은 구강보건이 정부정책의 대상으로 ‘대접’받기 시작한 시기가 이때부터라고 본다. 2004년 구강보건과가 구강정책과로 확대·개편됐다. 광고를 통해 알려진 2080 구호는 일본이 일찌기 ‘스무살의 치아를 여든까지 유지하겠다’며 야심차게 시작한 프로젝트다. 우리나라 구강보건 정책은 ‘헬스플랜 2010’에 포함된 프로젝트로 “2010년까지 충치·잇몸병 발생을 줄이고 예방해 현존하는 자연치아 수를 늘리겠다”로 요약된다. 현재 17개인 65∼75살 인구의 평균 치아 수를 2010년 19개 수준까지 늘리겠다는 목표치도 잡고 있다. ‘후진국병’으로 불리는 충치에 대한 전국민 실태 조사를 정부가 벌인 건 2000년부터였다. 보건 당국의 무관심 속에 12살 아동의 충치 발생 수는 1972년 0.6개에서 2000년 3.3개로 늘었다. 2003년에는 3.25개로 멈칫하나,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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