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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남궁연] 남궁연씨, 그래서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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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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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를 꿈꾸던 신학대생이던 그가 껄렁해지기까지, 매력 만점 엔터테이너로 거듭나기까지…

▣ 오지혜 / 영화배우

2003년 1월부터 2004년 4월까지 격주로 연재됐던 ‘오지혜가 만난 딴따라’가 부활합니다. 이번호부터 오지혜씨는 부정기적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뵙니다. 오씨는 현재 SBS 드라마 <봄날>에 출연 중이며, 문화방송 라디오 ‘오지혜의 문화 속으로’, 교육방송 라디오 ‘만나고 싶었습니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는 요새 한 TV드라마에서 그와 남매로 나온다. 실제 나이는 내가 한살 아래지만 ‘이미지’상 내가 그의 누나로 나온다. 그것도 한참 위인…(억울하다!). 각설하고. 평상시 그의 이미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방지축 내 맘대로’ 인간이었다. 그런데 내가 팔자에도 없는 재즈가수 역할을 하느라 졸지에 그를 노래 선생으로 모시는 요즘, 나는 그에게서 진지하고 정확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일단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는 음악에 한해서만은 천재 같았다. 그리고 재즈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나를 가르치는 솜씨가 너무나 탁월해서 초보자 하루 속성코스 학원을 열면 대박이겠다 싶은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다. 한데 그와 가까워질수록 난 그에게서 어떤 기이한 점을 발견했다. 매스컴에서 보고 들은 대로 ‘센 농담’ 하기를 즐기고 거친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그의 그런 행동들이 내 눈에 영 어색하기 짝이 없어 보였던 거다. 마치 자기 이미지가 그렇게 알려졌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빡빡머리는 불효사죄의 제스처?

고등학교 때 신촌에서 알아주던 ‘주먹’이었단다. 남 얘길 하는 거 같았다. 거짓말 같았다. 그러나 그의 그런 거짓말 같은 ‘과거’는 그게 시작이었다. 대학교수였던 아버지는 보다 못해 아들을 경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는 거다. 그 당시 신문에도 크게 났었다고 한다. 그 일로 아버지가 미워서 집을 나와 이모 댁에서 살았단 얘기, 스물두살 때 교회에서 서울대 성악과 출신의 참한 아내를 만나 처가의 반대로 맘고생을 했고 3년을 결혼하게 해달라는 새벽기도를 올린 뒤 스물다섯에 결혼에 골인했다는 얘기, 음악은 듣는 것만 좋아할 뿐 목사가 되려고 했기에 제대로 배울 생각을 못하다가 스무살 비교적 늦은 나이에 그것도 혼자서 시작하고 여태 혼자서 익혀왔다는 얘기 등등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얘길 폭포처럼 쏟아부었다.

필자와 함께한 남궁연씨. 두 사람은 SBS 드라마 <봄날>에 남매로 출연 중이다. (사진/ 류우종 기자)

그렇게 정신없이 자기 과거를 쏟아놓는 그를 보면서 그의 트라우마는 기독교 원칙주의자에 가까운 부모님의 경직된 가정교육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자신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집안의 여자들은 검소함이 몸에 배게 하기 위해 쪽찐 머리에 개량 한복을 입어야 했고, 밥상머리에선 가족끼리의 단란한 대화보다는 성경교리와 평소의 품행에 대한 지적들만이 가득했다. 언제나 ‘남의 눈’이 중요한 기준이었던 부모님께 결정적으로 상처를 받은 일화는 듣는 나도 가슴이 아팠다. 가장 친한 친구가 그의 집에 놀러와 밥을 먹는데 평소에 그의 부모님이 절대로 해선 안 된다고 가르친 상스런 행동으로 밥을 먹는 그 친구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엔 멸시와 조롱이 가득하더라는 거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의 외조부는 윤보선 대통령의 바로 아랫동생인 윤완선씨다. 아버님쪽은 학계로, 어머님쪽은 정계로 그야말로 ‘빵빵한’ 집안이네 했더니 농담인 줄 알면서도 신경질적으로 반응을 하며 그가 던진 말은 “빵빵한 집안? 까라 그래. 내가 이렇게 곪았는데…”였다. 그랬다. 그는 그렇게 원망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자신 안에서 발견할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며 그런 자아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부단히도 애쓰고 있었던 거다. 마흔이 다 된 지금까지도 아니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원리원칙주의자이며 매사에 지나치게 꼼꼼해서 남을 피곤하게 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는 자신에게 스스로 화가 나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어울리지도 않는 껄렁할 짓을 흉내냈던 것이다. 10대 때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잔정이 없으셨던 어머님은 그가 스물아홉 때 직장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 역시 아내의 빈자리를 못 견뎌하시다가 3년 뒤 사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으셨다고 한다. 그런 부모님께 너무 삐딱하게만 굴던 자신이 후회스러워 사죄의 제스처로 빡빡 민 머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앞으로도 머리 기른 남궁연은 볼 수 없을 거라고 못박으니, 부모 자식 사이의 징그러운 인연은 우리 민족에게 유난스럽단 사실이 새삼 느껴진다.

‘목사 부인’이 꿈이었던 그의 아내

그런 그를 구원해준 것은 음악이었을까? 순위를 정한다면 음악은 그의 인생에서 ‘넘버3’인 거 같다. 1위는 역시 어울리지 않게 종교였다. 제대로 다닌 학교가 거의 없긴 하지만, 그래도 한때 그는 목사를 꿈꾸는 신학대 학생이었다. 헌금 받아서 아들 유학 보내는 목사들을 보고 회의에 빠져 있던 중 “한번 깨달은 걸로 모자라냐? 뭘 자꾸 들으러 오냐?” 하는 괴짜 교수의 신앙에 보리수 아래에서의 깨달음 못지않은 기독교적 감화(?)를 받고 그 길로 목사의 꿈을 접는다. 그리고 그는 예수만큼 자유로운 음악을 택한다.

(사진/ 류우종 기자)

그렇다면 그의 인생을 구원해준 매개체 2위는 어떤 존재일까? 바로 목사 부인이 꿈이었던 그의 아내다. 4대 독자이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하신 유언이 “큰아들에게서 자식을 못 본 게 한이었는데 네 둘이서 이렇게 사이좋게 살지는 몰랐다”였을 정도로 그와 두살 위인 그의 아내는 하늘이 내린 연분이다 싶게 잘 맞는 커플이다. 그의 아내의 엉뚱하다 못해 기인에 가까운 일화는 매스컴을 통해서도 여러 번 알려졌다. 아버지께서 음식 솜씨가 없는 며느리에게 식당에서 먹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고 돌려서 핀잔을 놓았는데, 다음날 아침 식탁에 앉은 시아버지께 남궁연의 아내는 “어서 옵쇼!” 하고 인사를 한다. ‘식당에서 먹는 기분’을 느끼게 해드리려는 나름의 배려였다. 그리고 국을 떠먹는 시아버지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그의 아내가 날린 멘트는 “아버님, 짜면 (식탁 가운데로) 미시고 싱거우면 당기세요”였다고 한다. 그 멘트 역시 음식이 짠 거 같으면 찌개로 드시고 싱거우면 국으로 드시라는 아내의 ‘배려’였다. 그의 아내에 대한 또다른 일화 하나. 운전학원 강습 첫날, 과속하는 그녀에게 강사는 “서, 서!”하고 외쳤고 아내는 차를 세우는 대신 운전대를 잡은 채로 ‘서’버렸다. 운전학원 기물이 파손되고 바로 쫓겨난 건 당연했고, 그날이 그의 아내가 운전대를 잡은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 되었다는 거다.

그의 아내의 그런 귀엽다 못해 엽기에 가까운 엉뚱한 언행들은 모든 편견과 선입견에서 100% 자유로운 깊은 내공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지구인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아내는 우주인의 영혼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내의 그런 영혼은 자로 잰 듯한 인생을 강요당하던 이십대 초반의 그에겐 종교이자 음악이었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내 안에 ‘아버지’가 꿈틀거려”

아이를 원치 않는 결혼생활 15년째인 그의 부부가 여전히 신혼처럼 사는 건 자기가 아내를 너무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이란다. 자신도 모르게 자기 안의 ‘아버지’가 꿈틀거려 담배꽁초 버리는 놈 쫓아가 때려주고 남과의 약속을 위해 자신을 학대하는 그를 볼 때마다 그녀가 딱 한마디로 자신을 붙잡아주기 때문이라는데, 매력 있는 엔터테이너 남궁연을 잡아주는 그녀의 그 한마디는 “그래서, 편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적인 얘길 나누던 중 청소에 너무 목숨 걸어서 가끔 남편과 다툰다는 내 말에 그가 묻는다. “그래서, 편해?” 우린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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