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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책/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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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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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화 간직한 폐허의 도시, 로마

세상에 로마만큼 아름답게 묘사되는 도시가 있을까. 굳이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영화나 문학작품 속에서 로마의 과거는 언제나 한편의 오페라처럼 화려하고 웅장하며 로마의 현재는 폐허의 미학을 간직하고 있는 한편의 시다. 물론 이것은 현실이기도 하다. 문학적 수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로마를 한번 다녀오면 콜로세움의 장중함과 포로 로마노에서 느끼는 세월의 무상함, 그리고 트레비 분수의 낭만적인 조명을 잊지 못한다.

‘잊고 있던 삶의 기쁨을 상기시켜’주는 도시. 1979년부터 오늘까지 로마를 그 안에서 지켜본 건축가 정태남씨가 이 폐허의 도시에 내리는 결론이다. 대학 졸업 직후 이탈리아 정부 장학생으로 로마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한 지은이는 역사와 미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로마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본다. 팔라티노 언덕, 캄피돌리오 언덕, 베네치아 광장 등 로마의 주요한 이정표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과 조각들이, 만들어질 당시의 역사와 함께 미학적으로 친절하게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해설이나 가이드에 그치지 않는 것은 20년간 로마에 살면서 지은이가 겪은 경험과 사유가 녹아들어가 책 전체에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그는 유적을 망가뜨리는 도시계획 정책 등 영원히 과거를 끌어안고 살 것 같은 로마 안에서 벌어지는 변질의 기운에 대한 매운 한마디도 잊지 않는다. 테베레강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다리를 보면서 서울의 한강다리가 “주물공장에서 아무 생각없이 찍어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비단 지은이가 건축을 전공한 예술가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는 정씨가 직접 찍은 로마의 풍경들과 직접 그린 유화들이 곳곳에 흑백으로 실려 있다. 아름다운 도시 로마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사진과 그림들의 원색이 그대로 살아났더라면 책의 참맛이 더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로마●

정태남 지음

한길사(02-547-5723∼4) 펴냄, 9천원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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