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관객의 소통 꾀하는 발랄한 전시회 나들이, ‘유쾌한 상상 작업실 체험전’과 ‘재미있는 미술전’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인간의 육체는 화가에 의해 끊임없이 재해석됐다. 그것은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차마 보고 싶지 않은 치부로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폭력적 진실을 낱낱이 드러내는 화가 정수복씨의 작품은 후자에 가깝다. 인간의 물질적·육체적 본능을 위장하고 있는 껍데기에 날카로운 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그가 30년 가까이 작품의 소재로 삼고 있는 인간의 몸은 정육점에 걸린 고깃덩어리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물론 그가 탐구하는 몸에는 인간의 내밀한 사유의 흔적들이 곳곳에 스며 있다. 어쩌면 그에게 몸은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주체인지도 모른다.
몸 속 내장을 보여주는 이유가 뭘까?
그런 정수복씨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고통에 가깝다. 멀리서 바라보면 다양한 형상들은 오밀조밀하게 채운 듯하지만 가까이 다가서서 그림 속을 살펴보면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그러면서도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내면에 숨어 있는 자신을 만날 것 같기 때문이다. 그가 그린 인간의 몸 안에는 다른 인간의 몸통이 들어 있기도 하고 내장이 오롯이 드러나기도 한다. “사람이 살면서 생각하는 문제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몸에 새겨진 문신으로 보이기도 하고,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감성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몸을 통해 인간의 감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관객들이 직접 대면하기를 꺼릴 만한 정수복씨의 작품이 ‘유희와 놀이’ 속에 빠져들었다.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제비울미술관의 ‘유쾌한 상상 작업실 체험전’(2월28일까지)에서 동심을 만나는 것이다. 인간의 외모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지 않고 얼굴 표정이나 몸속의 내장으로 인간의 심리를 표현한 작품. 그것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우선 사물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산산이 깨뜨린다. 겹겹이 쌓인 가면을 벗겨내고 해괴한 형상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액자 속의 유화에서도 멀찌감치 비켜나 있다. 합판을 오려서 캔버스 천을 씌우고, 유화에 콜라주를 도입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정수복씨는 경기도 안성에 있는 작업실을 도록을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화가의 상상력이 어떤 절차를 통해 작품이 되는가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소통을 꾀하려는 것이다. 그는 작업실 곳곳에 잡지나 광고지에서 오린 이미지들이 가득한 이유도 밝혔다. “사람을 표현하지만 구체적인 인물이 아니다. 막연한 사람들을 그리기에 잡지와 책에 실린 그림이나 사진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의 기초 작업을 따라 하면 이렇다. 우선 두껍고 색이 있는 종이에 사람 몸의 모양을 그려서 오린 뒤 스케치북에 붙인다. 여기에 책자에서 오린 사람의 눈과 입 등을 오려 재미있는 그림을 만든다.
화가들의 일상을 엿보는 상상 미술 기행은 반쪽이 최정현씨가 제안하는 ‘재활용 예술’로 이어진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새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마치 마술사 구실을 하는 것처럼 폐타이어로 납작한 고양이를, 자전거 타이어로 작은 동물들을, 맥주깡통도 핀을 가지고 맥주 먹는 바퀴벌레까지 만들어낸다. 그의 작업이 버려진 물건에 생기를 부여하는 것만은 아니다. 거기엔 산업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이 내포됐고 세계 정치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이 담겨 있다. 예컨대 네발 달린 동물 형상의 ‘현대인 부부’의 머리는 도끼이고,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을 보여주는 ‘대가리 열받은 콘도르’의 머리는 다리미인 식이다.
짝짝짝, 문어 앞에서 손뼉을 쳐봐요
아이들을 초대한 상상 작업실에서는 동심의 색다른 변신도 체험할 수 있다. 정현민씨의 작업은 초등학생의 관심사를 이어받은 듯하다. 초등학생의 스케치북에 있는 색깔 그대로를 크레파스로 그려놓은 작품들이 그렇다. 다만 일정한 틀 밖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그의 코끼리는 스케치북 밖으로 벗어나 합판과 나뭇조각 그리고 바닥과 벽으로 이어진다. 한선현씨의 조각 작품은 염소가 유쾌한 웃음의 진원지로 등장한다. 이솝우화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아 외나무다리 아래로 떨어졌던 염소가 외나무다리 아래 위를 거닐거나 거꾸로 매달려 있기도 한다. 그렇게 머릿속의 상상놀이가 예술로 진화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유쾌한 상상 작업실은 관람객들의 흥미와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다.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따지기 전에 작가의 번뜩이는 상상력에 고개를 숙이게 마련이다. 제비울미술관은 전시와 더불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워크숍을 마련해 관객들이 상상력을 수혈받을 수 있도록 했다. 매주 일요일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디카로 일기를 쓰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여기엔 국립수목원에서 세밀화를 그리는 전방위 예술가 공혜진씨가 강사로 나서 세상을 잘라서 보는 방법과 디지털 사진이 예술로 변신하는 과정을 전수하고 있다.
이렇게 관객과 소통을 추구하는 전시는 서울 홍익대 부근 스타일 큐브 잔다리의 ‘재미있는 미술전-기브 앤 테이크’(2월15일까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작품을 통한 직·간접적인 소통을 추구하는 것이다.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신혜선씨의 <옥토퍼스>(Octopus·문어)다. 이 작품은 악마물고기라 불리는 문어를 가발로 만들었다. 공포스런 정서를 보여주는 풀어진 머리카락이 여덟개의 다리가 뻗어나오는 문어로 변신해 흥미를 자극한다. 머리카락 문어는 그저 보는 작품이 아니다. 관객이 작품 앞에서 손뼉을 치면 문어의 머리가 아래로 떨어져 재미와 웃음을 선물한다.
재미있는 미술전에 참가한 작품들은 저마다 관객과 소통하려는 장치를 ‘내장’하고 있다. 이석형씨의 <인서트 코인 Ⅱ>는 작가와 부인 실물 크기의 인형이다. 작가는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를 ‘돼지저금통’으로 삼아 재미를 주고 돈을 챙기고 있다. 부인에게 동전을 넣으면 춤을 추면서 ‘새해 복 많이 받아라’라고 말하도록 몸 안에 스피커와 센서를 장착해놓은 것이다. 강선미씨의 벽 그림 <너 잘났다>는 관객이 그림 속의 자리에 서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김연씨의 <뜬구름 잡기>는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을 장난감으로 만들어 관객들이 매만질 수 있도록 했다. 지금 관객들이 미술작품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런 정수복씨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고통에 가깝다. 멀리서 바라보면 다양한 형상들은 오밀조밀하게 채운 듯하지만 가까이 다가서서 그림 속을 살펴보면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그러면서도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내면에 숨어 있는 자신을 만날 것 같기 때문이다. 그가 그린 인간의 몸 안에는 다른 인간의 몸통이 들어 있기도 하고 내장이 오롯이 드러나기도 한다. “사람이 살면서 생각하는 문제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몸에 새겨진 문신으로 보이기도 하고,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감성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몸을 통해 인간의 감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을 화두로 삼은 작품 세계를 일군 화가 정수복씨가 아이들 세계로 들어갔다.

제비울미술관은 전시에 맞춰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도록을 펴내고 있다.


“작가의 유괘한 상상이 예술로 태어났어요” 제비울미술관의 ‘유괘한 상상 작업실 체험전’(위). “예술이 작품이 게임보다 훨씬 재미있어요” 스타일 큐브 잔다라의 ‘재미있는 미술전-기브 앤 테이크’(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