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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영화] 자폐아와 엄마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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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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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기자의 ‘장애인+가족 알레르기’를 가라앉힌 42.195km <말아톤>

▣ 이성욱/ <씨네21> 기자 lewook@cine21.com

오랜 시간을 두고 굳어진 선입견이지만, 영화의 실체를 들여다보기도 전에 알레르기처럼 거부감이 이는 소재가 있다. 장애인과 가족 이야기다. 이 두 가지는 한 영화 안에서 얽히고설키기 마련인데, 특히 전자는 관객을 장애가 없는 정상인의 상대적 안전감 속에 배치해놓고 감정이입과 카타르시스를 착취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무엇보다 관객의 눈물을 최대한 빼내는 만큼 성공한다는 태생적 소명이 자꾸 거리를 두게 만든다. 그래서 그 소명을 거부하는 영화일수록 반갑다. 완성도와 무관하게 <오아시스>를 멀리하고 <바람난 가족>을 가까이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말아톤>은 처음부터 내키지 않는 영화일 수밖에 없었다. 다 큰 어른(조승우)이 자폐아인 탓에 정신연령 혹은 소통방식은 아이 수준인데, 그 어머니(김미숙)의 눈물겨운 노력에 힘입어 마라톤에 도전하는 이야기라니! 나 같은 냉혈한은 소름부터 돋는 설정이다. 아닌 게 아니라 조승우가 평소의 발성법을 내동댕이치고 가느다란 하이톤의 목소리로 객석의 웃음을 자아내는 순간부터 선입견은 확신으로 돌아왔다. 또 그가 투명한 거울처럼 주변에서 자기 호기심을 끌었던 사물이나 말을 흉내낼 때도 마찬가지. 할인매장에서 엄마가 사오라는 상품의 목록을 되뇌며 “양이 많지 않은 날은,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운 위스퍼 소프트 라이트”라거나 “끈적끈적 지성두피, 푸석푸석 건성두피, 두피별 비듬관리 프로그램, 댄~트롤”라는 식으로 광고 카피를 개그처럼 수없이 되뇔 때, 소비자본주의의 엄청난 공세를 간접 체험한다는 의미보다는 지나치게 많이 삽입된 PPL로 다가왔다.

그런데 영화는 초반부를 지나면서 슬슬 ‘반역’을 시작했다. 자폐아 아들을 데리고 그 아이의 동생과 아빠와 엄마가 나들이 간 동물원에서 엄마는 자폐아의 손을 그만 놔버린다. 클로즈업으로 손이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장면. 엄마는 아들을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첫 번째 갈등은 더 큰 갈등을 펼치기 위한 일종의 복선이었다. 한순간이나마 아들을 내버리려 했던 엄마는 더욱 대단한 정열로 자폐아의 세계를 정상인의 세계와 어울리게 하기 위해 혼신을 쏟는다. 계속 뛰기만 하면 되는 마라톤에서 아들이 기쁨을 얻는다고 확신한 엄마는 42.195km 완주에 도전한다. 진짜 갈등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목표는 자폐아 아들의 소망이 아니라 엄마의 이기적인 욕심일 수 있다는 강력한 의심. 자폐아와 정상인의 갈등이 아니라 세상에 둘도 없이 서로를 의지해온 아들과 엄마라는 관계에 대한 회의가 영화를 이끌기 시작한다. 스크린 속의 엄마도, 바깥의 관객도 자폐아의 진짜 소망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긴장감은 더욱 고조돼간다. 자폐아의 사투가 아닌 엄마의 극심한 사투 속에 아빠의 자리는 아예 지워지거나 비겁한 방관자로 남는다. 가족 캐릭터는 점점 더 사실주의적이 되어간다.

물론 영화는 감동의 클라이맥스라는 애초 목표치를 잃지 않는다. 자폐아가 자신을 길들인 초코파이(진짜 초코파이다. 영화에는 이 빵과자가 수없이 등장하는데 제작자본이 오리온이다)의 달콤함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게 자폐아의 진심이었는지 역시 알 수 없으나 <말아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하여 애초의 선입견은 백기를 들어야 할 처지에 몰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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