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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술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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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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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살리기]

▣ 우종민/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drwoo@freechal.com

(사진/ 한겨레 이정용 기자)

ㄱ씨는 잘나가는 금융회사 간부이다. 실력도 있고 성품도 무난해서 나무랄 게 없다. 문제는 술이다. 발동이 걸리면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신다. 봉변을 당할 뻔한 적도 있다. 최근에는 난데없는 주사를 부려서 윗사람에게 큰 실수를 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항상 2차부터가 문제다. 1차 때야 오늘은 일찍 가야지 마음먹는다. 2차 초반까지도 괜찮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괜히 들떠서 남들 집에도 못 가게 붙잡고 3차로 앞장서곤 한다. 그때부터는 통제가 안 된다.

과음은 효율 면에서도 수지가 맞지 않는다. 음주량은 술값에 비례하고, 대화의 생산성과는 반비례한다. 초저녁에 나눈 이야기는 대개 유익하고, 기억도 잘 나고, 술값이 얼마 안 든다. 그러나 심야 음주에서 오간 이야기는 별 필요도 없고, 기억도 안 나며, 술값은 몇배 많이 든다.

ㄱ씨에게 내린 첫 번째 처방은 30분에 한번씩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라는 것이었다. 거울을 보면 자기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된다. 술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모르지만, 거울을 보면 눈동자가 풀려 추하다는 걸 알게 된다.

두 번째 처방은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위험을 피하는 데 민감한 성격이 있다. 그런 사람은 사고 위험이나 가족의 걱정을 되새기면서 ‘아이쿠, 이러다가 큰일 나겠구나’ 하는 걸로 행동이 조절된다. 그러나 새로운 것과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은 잠재적인 위험 가능성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더 좋은 모습으로 변신하자고 마음을 먹어야 한다. 절제된 음주로 더 세련되고 우아하게 보이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본다. 그리고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로 목표를 세운다.

2차, 3차를 잘 가는 사람도 특징이 있다. 우선 주위 사람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상황을 재연해서 거절하는 연습을 해본다. 반대로 자기가 주도해서 남들 집에도 못 가게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이들은 평소 자기 내면의 공격성을 억눌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통제 방식이 자기를 망치고 있음을 깨닫고 다른 방향에서 푸는 게 좋다.

더 쉬운 방법도 있다. 단골 술집을 만드는 일이다. 술집 주인은 단골이 만취해서 실수하거나 위험한 사고가 나지 않길 바란다. 다음날 후회할 기억이 있으면 그 술집에는 발걸음을 멀리 하게 마련이다. 주인에게 오늘은 이만큼 마시겠다며 미리 돈을 주고 더 이상은 술을 주지 말라고 단단히 부탁을 한다. 그걸 챙겨줄 수 있는 집을 단골로 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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