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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터넷 시대는 건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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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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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룩’ <인물과 사상> 종간을 통해 돌아본 인터넷 소통의 문제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인터넷은 너무 비대해졌다.” <인물과 사상> 종간호에서 인터넷 소통의 문제를 지적한 강준만 교수. (사진/ 서경신)

1997년 1월 출범한 ‘저널룩’ <인물과 사상>이 33권을 끝으로 종간하게 됐다. <인물과 사상>은 학술 계간지와는 달리 ‘출판의 언론화’를 모토로 1권부터 25권까지 강준만 교수의 ‘1인 저널리즘’ 형태로 운영돼왔으며, 26권부터는 고종석씨와 김진석씨가 편집위원에 합류했다. 그동안 민감하고 논쟁적인 사회적 의제들을 제기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널룩 <인물과 사상>의 종간 결정과는 상관없이 인물과사상사에서 펴내는 월간 <인물과 사상>은 계속 발행된다.


참여의 왜곡, 연대의 왜곡

일단 종간의 가장 큰 원인은 출판사 개마고원이 누적된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책임 편집자 김영미씨는 “잘 안 되더라도 끝까지 내려고 했지만 출판사에서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강 교수와 출판사 모두 인터넷이 <인물과 사상>과 같은 활자매체의 의제 설정 기능마저 빼앗아버린 시대 상황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종간호의 머리말에서 강 교수가 지적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점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 교수는 “초기의 민중적 장점에만 주목하기엔 인터넷은 너무 비대해졌고 금권과 권력의 눈독이 집중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인터넷 시대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의제를 던진다.

우선 인터넷이 몰고 온 ‘참여의 축복’을 냉정히 보자는 지적이 있다. 인터넷은 익명의 대중이 사회적 이슈에 발언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축복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민주노총 정보통신부장 최세진씨는 최근 “인터넷 광장의 주인은 네티즌이 아니라 자본”이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랭키닷컴의 2004년 8월 넷쨋주 순위를 보면 1~100위의 모든 사이트는 상업적인 사이트이며 인터넷 접근도에서도 소득 계층별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강 교수에 따르면 인터넷은 ‘참여의 왜곡’도 낳는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부경대 정외과 류태건 교수의 말을 인용한다. “사이버 공간의 불평등 참여 문제도 심각하다. 상대적으로 청년층의 과다참여와 노장층의 과소참여 현상이 사실이다. 이러한 불평등 참여가 국가의사의 결정에 그대로 영향을 비친다면 그 결정은 편파성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인터넷이 준 ‘연대의 축복’도 곱씹어봐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수평적 연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강 교수는 ‘인터넷 패거리’라고 하는 새로운 유형의 패거리가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한다. 거대한 적을 상대로 하는 약자들의 연대와는 달리 양쪽의 강경파끼리 사실상 서로 돕는 ‘적대적 공존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감시·고발 기능 또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최근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네티즌들은 가해 혐의를 받고 있는 학생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일상사까지 떠들어댔으며, 가해 학생으로 지목당해 사진이 오른 사람들 중 절반이 전혀 무관한 사람들로 밝혀졌다. 강 교수는 “‘오바’가 심할 경우엔 ‘마녀사냥’이 될 수도 있다”고 일갈한다.

인터넷은 또한 전통적 지식인의 자기검열을 강화한다. 지식인이 논란의 소지가 큰 글을 쓰면 상상을 초월하는 인신공격을 각오해야 한다. 강 교수에 따르면 “아주 독하거나 상처받지 않는 기계적 인간들만 제 목소리를 내고, 나머지 대다수가 ‘똥물’을 피하려는 글만 쓰려고 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과민반응은 아닌가

이러한 비판에 대해 과민반응이라는 지적도 있다. <오마이뉴스> 정운현 편집국장은 “인터넷 매체의 참여는 폭넓은 참여다. 종이신문 독자들은 성향에 따라 편향돼 있지만, 인터넷 매체 이용자는 더 포괄적이다”라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대부분의 지적이 맞지만 온라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했을 <인물과 사상>을 이끈 강 교수가 왜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하며 “몇번의 선거를 치르며 인터넷이 당파로 찢겨져버렸지만, 인터넷의 속성상 시간이 지나면 정당과 연결된 네티즌의 영향력은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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