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경제불황기사에 지치느니 예술가들의 풍요로운 가난을 배우련다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원래 신문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요즘은 일부러라도 피하고 있다. 불황, 불황, 불황…. 실업, 실업, 실업…. 이젠 정말 신물이 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하도 눈 둘 곳이 없어서 우연히 봤다가 곧바로 ‘눈 버렸다’는 생각이 절로 나게 했던 모 경제신문의 헤드 카피. ‘예전에 길게 줄을 서던 돈가스 집에 요즘은 손님이 세명뿐’이라나? 이런 것도 기사가 될 수 있냐는 생각에 화가 났다. 이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기사인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세상에서 가장 지겨운 이야기들이 연일 되풀이되고 있다.
‘좋아지고 있고, 더 좋아진다’고 뻥을 치라는 얘기가 아니다. 세상에는 일부러 가진 걸 다 버리고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참에 예술가들을 총동원하여 ‘소박한 삶’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볼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게 내 생각이다.
예를 들면 시인 황인숙의 생활 미학 같은 걸 소개하는 거다. 전업 시인으로 사는 삶은 당연히 가난하다. 번듯한 집도, 돈도, 남편도, 아이도 없는 황인숙은 근 20년을 남산의 한 옥탑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삶은 심란하기는커녕 누구의 것보다 우아하고 경쾌해 보인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건 다 공짜’이기 때문이다. 남산에 3시간짜리 산책 코스를 가지고 있고, 종종 바람 속으로 뛰어들어 바람 타기를 즐기는 이 여자는 가끔 사치도 부린다. 큰맘 먹고 주머니를 털어 포도주 몇병을 산 뒤 친구들을 남산야외식물원 안에 있는 어느 플라타너스 아래 초대하는 거다. <인숙 만필>이라는 책에는 돈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이런 유의 호사가 가득하다. 그래서 읽고 있으면 내 지난한 삶이 느닷없이 기뻐진다.
지난해 내가 부린 최고의 사치는 화가인 노석미의 작품 <내가 너를 잠깐 소유해도 되겠니?>를 구입한 건데, 없는 와중에도 주머니를 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노석미가 일상의 흔해빠진 자취로 어떤 기적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와, 비온다! 와, 봄이다! 같은 일상의 자연사가 새삼 경이롭게 느껴진다. 일전에 만났을 때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친구들이 가끔 이렇게 물어요. 실은 너 가난하지 않지? 실은 믿는 구석이 있지? 뭐 숨겨둔 남자라든가 유산 같은 거. 저도 나름대로 괴로운 몸이에요. 하지만 불평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최근에는 뉴욕에서 가난한 예술가로 살고 있는 박상미의 책 <뉴요커>와 싸구려 공산품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찍는 작가 현경미의 작품을 인상적으로 봤다. 박상미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에서 사는 예술가가 초콜릿 한알로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가르쳐줬다. 반면 현경미의 사진은 판타스틱 그 자체다. 약국에서 개업 기념품으로 나누어준 물컵 뚜껑이 그토록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보일 수 있다니,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짜로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우리 시대 최고의 가난뱅이 함민복 시인을 소개한다. 버려진 폐가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며 사는 진짜로 가난한 남자인데, 그러면서도 만날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제비 타령, 망둥어 타령만 한다. 날이 추워지니 진실로 그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아저씨, 잘 사시죠? 아직 얼어죽거나 굶어죽지는 않은 거죠? 근데 내년엔 제비가 올까요?(참, 왜 이런 건 신문기사가 안 되는지 모르겠다.)”

현경미 <약국에서 개업기념품으로 나눠준 물컵 뚜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