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아마추어 증폭기’의 청바지 핫팬츠와 금발 가발에 놀라다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얼마 전 포토그래퍼 윤석무와 김지양이 음악하는 친구들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파티를 열었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파티가 아니라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아주 재미난 파티였다. 특히 나로서는 ‘아마추어 증폭기’라는 아주 새로운 종류의 멋진 뮤지션을 알게 되어 더욱 의미심장했던 파티였다.
아마추어 증폭기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일단 패션이 죽이는 남자였다. 청바지를 잘라 만든 핫팬츠와 그물 스타킹, 상표를 알 수 없는 스니커즈, 거기다 손질 안 된 금발 가발까지 쓴 남자가 달랑 기타 하나만 들고 무대에 나타나는 순간부터 나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음악도 희한하게 좋았다. 별 의미 없는 유머러스한 가사가 어쿠스틱 기타와 전자음 섞인 보이스에 실려 제법 찡하게 전달됐다. 뭐랄까? 패션은 글램록인데 음악은 포크고 정서는 펑크 같다고나 할까? 그 기이한 조합 때문인지 전체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발랄하고 화려한데 어딘지 애잔하고 서정적인 데가 있었다. 음악도, 패션도 어설프지만 ‘까암짝’ 놀랄 정도로 새로웠다.
알아보니 아마추어 증폭기는 여러모로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전공은 전기공학이고 직업은 영화과 조교인데, ‘내 영화에 쓸 음악을 내 손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음악에도 싸구려 B급 영화를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기술적으로 형편없지만 어딘지 찡한 데가 있는 졸속들. 패션도 마찬가지다. 주로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2천~3천원에 구입한 옷으로 그는 록음악 역사상 스타일이 가장 화려했던 글램을 추구한다. 수입은 입에 풀칠할 정도지만 공연마다 매번 다른 무대의상을 입을 정도로 열심히 차려입는다.
재미있는 건 다른 의상들은 매번 바뀌는데 가발만큼은 한결같다는 것. 말하자면 세탁기에 넣고 빤 것처럼 엉켜 있는 금발 가발은 그의 페르소나다. 그는 스파이더맨이 가면 없이는 스파이더맨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자신도 그 가발 없이는 아마추어 증폭기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뮤지션에게 패션은 단순한 무대의상이 아니다. 팝음악과 패션은 오랫동안 상업적 결탁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자본주의 논리만으로 해석할 수 없는 것도 간혹 있다. 패션의 역사에 기록되고 옷차림으로 오랫동안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뮤지션은 언제나 반항적인 성격을 띤 패션의 이단아들이었다. 청바지와 허름한 티셔츠, 그리고 헝클어진 헤어 스타일로 그런지룩을 창시한 커트 코베인이 그렇고,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화려한 글램룩 스타 데이비드 보위가 그렇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닭벼슬 머리를 하고 가죽바지를 칭칭 감고 여기저기 우르르 몰려다니며 부랑아 짓을 하게 했던 섹스 피스톨스가 그렇다. 그들에게 패션은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과 혐오, 그리고 자기 분열을 표출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도구였다.
뮤지션의 저항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 늘 생각하는 인물이 있다. 60년대 말 장발에 청바지, 통기타를 들고 나와 저항 패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히피 패션을 국내에 최초로 전파했던 뮤지션 한대수. 얼마 전 한 포크 페스티벌에서 보니 그의 저항 패션은 육십 나이에도 여전했다. 등 부분에 해골 문양이 붉은색으로 프린트된 멋진 감색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뉴욕의 한 게이숍에서 산 재킷인데 전세계를 전쟁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악당 부시를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록스타로 멋지게 늙는 일만큼 어려운 사업이 없는데 한대수만큼은 그 일을 잘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진 / 윤석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