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촌부의 베짜기로 얻는 특별한 의상… ‘드맹’의 안주인 문광자를 아시나요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광주에 내일이란 의미를 지닌 ‘드맹’(DE MAIN)이라는 의상실이 있다고 한다. 광주의 교양 있는 명사들과 예술가들 사이에서 먼저 마니아층이 생겨나며 대중에게도 알려진 브랜드인데, 예전에는 이곳에서 옷을 지어 입으려면 ‘드맹 안집’이라고 불리는 마당이 넓은 주택에 직접 찾아가서 먼저 그 집 안주인과 한담을 나누고 치수를 재야 했다. 말하자면 드맹의 안주인인 문광자는 단 한 사람을 위한 옷을 만드는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인데, 특이한 건 거의 사라져갈 위기에 처한 무명이라는 옷감으로 옷을 만드는 일에 십수년간 매달려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일의 가치를 디자이너 문광자와 무명의 만남을 기록한 책 <무명>을 통해 알게 됐는데, 책을 보는 순간 예찬자로서의 내 역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무명으로 선택받은 소수 부유층을 위한 오트 쿠튀르 옷을 만들다니, 생각해보면 발상 자체가 아이러니다. 무명이 뭔가? 출산의 고통만큼이나 힘들다는 촌부들의 베짜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이 미천한 옷감은 그 수고로운 노동력에 비해 쓰임새가 거의 없어서 이제는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옷 만들기에도 무척이나 제약이 많다. 그런데 왜? 값싸고 질 좋고 구하기도 쉬운 소재도 많은데 왜 무명을 택했을까?
문광자는 무명과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의 옷을 통해 만난 무명의 느낌은 뭐랄까, 석류꽃만 보면 온몸에 맥이 빠져 주저앉듯이 그런 감동을 줬어요. 만든 이의 손맛이 있는 옷감이니까요. 그런데 우연히, 정말 우연히 자신을 ‘무명 물쟁이’라고 소개하는 남자를 만났어요. 천연 무명 염색가 한광석씨였는데, 홍화색 한 필을 만드는 데 퉁대 바구니 하나 가득 홍화꽃을 따야 하고 일년에 볕이 좋은 100여일 동안만 염색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천이 아니라 세월을 산 듯 했어요. 염색 무명 생산량이 일년에 몇필도 안 된다는 말에 전량 구매를 약속하고 1992년 패션쇼에 처음 무명을 세웠죠.”
성철 스님의 ‘누더기 옷’이라면 모를까, 그 의미가 아무리 훌륭해도 아름답지 않은 옷은 패션계에서 주목받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이 즐겨 입는 개량 한복이라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문광자의 옷은 달랐다. 서구적이되 한국적인 정서가 느껴지는 그녀의 옷은 아름답고 독창적이며, 어떤 옷에서는 여왕 같은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문광자의 무명 옷은 국내에서보다 먼저 미국에서 주목받았다고 하는데, 뉴욕 현대 미술의 실세인 실비아 왈드가 ‘천으로 만든 조각품’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더욱 재미있는 건 옷이 입는 사람에게 어떤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문광자의 고객이며 철학과 교수인 박홍련은 이렇게 말한다. “이 옷은 끊임없이 내게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자세를 곧게 하고 마음을 정돈하라고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자아에 대한 깊은 존중으로 이어진다.”
문광자는 원하는 손님들에게 천값 정도만 받고 옷을 만들어주기도 한다는데, 문제는 쪽빛 무명 한 필에 200만원이나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결코 비싼 게 아니다. 무명은 그 자체가 이미 노동과 열정과 그리고 시간이 선사한 산물이다. 게다가 문광자의 무명 옷을 입는다는 건 자연 속에서 꽃가루나 모으는 욕심 없는 한 자아의 완전한 만족감을 사는 것이며, 유행은 물론 시간이나 장소까지 초월하고 싶은 한 패션 디자이너의 오만한 이상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 박성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