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파티를 위하여!

535
등록 : 2004-11-17 00:00 수정 :

크게 작게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당신을 위한 드레스 코드… 인상적으로 각인되고 싶다면 오버하라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얼마 전에 내가 몸담고 있는 잡지의 100호 기념 파티가 있었다. 광고주들에게 우리 잡지를 어필하고, 100호가 나오기까지 도와준 패션 피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하는 자리라 나름대로 이런저런 준비를 많이 했다. 100호 특집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에 1일 아트 페어까지 준비했다.


그런데 D-day 이틀 전 우리는 중대한 결함을 발견하고 말았다. 누군가의 실수로 초대장에 ‘드레스 코드’(참가자들의 복장 규정)가 누락된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낭패였다. 드레스 코드가 있어야 일시적으로 모인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주고, 서로의 패션 센스를 구경하는 것으로 파티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늦게나마 일부에게라도 ‘드레스 코드가 골드 & 플라워’임을 알리는 전화를 돌렸다.

(사진 / 김두종)
파티 시작하기 12시간 전까지 아트 페어 준비에 매달려 있던 나는 앞이 캄캄했다. 나야말로 그 새벽에 어디 가서 ‘골드 & 플라워’ 아이템을 구해야 한단 말인가? 이틀 전에 드레스 코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어디 가서 마릴린 먼로풍의 금발 가발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트 페어 준비에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새벽 1시에 동대문 시장에 가서 골드 스팽글이 박힌 벨트(2만원)와 금색을 입힌 커다란 링 귀고리(1만원)를 사서 검정색 수트에 매치했다. 궁색하게나마 구색은 맞추었지만 하루 종일 영 기분이 찜찜했다.

뒤늦게 알렸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골드 & 플라워’에 맞추어 멋지게 차려입고 파티장에 등장했지만 나로서는 누구보다 디자이너 정구호(제일모직 상무)의 의상이 인상적이었다. 정구호 상무가 타이 없이 검정색 정장에 화이트 셔츠를 입고 붉은색 작약으로 보이는 코르사주를 목에 매고 현관에 나타나는 순간 너무 사랑스러워서 내 입에서 이런 발칙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선생님, 귀여워요. 너무 귀여워서 확 깨물어주고 싶어요.”

여자 중에는 1일 아트 페어를 진행한 아나운서 김지은(그녀는 최근에 아나운서 신분으로 <서늘한 미인>이라는 미술서적을 냈는데,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미술평론가들이 일종의 부채감을 느껴야 할 만큼 의미심장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한젬마씨도 마찬가지다)의 옷차림이 단연 돋보였다. 영화 <화양연화>의 장만옥을 연상시키는 플라워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화려한 골드 머리핀으로 틀어올린 고혹적인 차림이었는데, 누구보다 보수적일 것 같은 여자 안에 감춰진 열정을 보는 것 같아 같은 여자인 내가 마음이 흔들릴 정도였다.

한편 수많은 여성 게스트를 제치고 누구보다 “오늘 밤 누구보다 아름답네요”라는 찬사를 많이 받은 패션 칼럼니스트 심우찬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뷰티 케어 풀서비스를 받고 턱시도 차림에 코르사주를 꽂고 나타나서는 바자 컨트리뷰터 시상식에서 가장 유머스러운 수상 소감을 날렸다. “오늘의 저를 있게 해주신 ○○○ 원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이 이를 어째, 마스카라 때문에 울면 안 되는데.”

파티라는 건 스스로 즐기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 드레스 코드가 지정된 파티가 그렇다. 게다가 예전에는 ‘드레스 코드를 지키되, 오버해서 입지 말라’는 룰이 통용됐지만, 이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인상적인 사람으로 각인되고 싶다면 오버해야만 한다. 고상한 신분일수록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의외성에 매혹되기 때문이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