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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다람쥐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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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11-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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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정남구 기자/ 한겨레 경제부 jeje@hani.co.kr

(사진 / 한겨레 정남구 기자)
주말농장의 휴식터에는 상수리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다. 누가 생각해낸 아이디어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사는 집 근처에도 상수리나무 10여 그루가 가로수로 서 있다. 여름엔 거위벌레가 이파리에 알을 낳고 뚝 잘라놓은 작은 가지들이 바닥에 쌓이더니, 가을이 되자 갈색으로 잘 익은 상수리들이 하나둘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다. 아들 녀석은 그곳에서 상수리를 하나씩 줍는 것을 대단한 발견으로 생각하고 자랑거리로 삼는다.

흔히 참나무라고 부르지만, 사실 참나무는 따로 없다.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등을 참나무라 부른다. 이파리 모양과 잎자루, 열매, 나무껍질 모양 등으로 그것들을 구별하는 방법을 나도 배웠는데, 여전히 헷갈리는 때가 많다.

가장 흔한 신갈나무는 이파리가 상수리나무보다 넓고 잎자루가 없으며, 열매는 상수리보다 동그랗다. 졸참나무는 도토리가 가늘고 길쭉한 것이 특징이고, 갈참나무는 신갈나무와 잎이 비슷하지만 잎자루가 있다. 굴참나무는 껍질이 두꺼운데, 이것을 굴피라 한다. 떡갈나무는 이파리가 크고 뒷면에 갈색의 작은 털이 있어 떡을 싸던 것이다. 밤나무와 이파리 모양이 비슷한 상수리나무는 이름 그대로 ‘상수리’가 열리는 나무다. 참나무의 열매를 모두 ‘도토리’라 하는데, 상수리만은 별도의 이름을 갖고 있다. 가장 열매가 크고 실해서인 듯하다.


상수리나무에선 생각나는 추억이 많다. 여름 상수리나무는 수액을 뿜어내 꽃무지나 하늘소, 말벌 같은 곤충들을 유혹한다. 풍뎅이를 잡으러 간다는 말은 바로 상수리나무가 많은 뒷동산에 간다는 이야기였다. 상수리나무의 가지는 말려놓으면 가볍고 탄력이 있어서 자치기를 할 때 작은 자로 쓰기에 안성맞춤이다. 가을엔 상수리 열매를 주워 구슬 대신 갖고 놀기도 했다. 겉껍질을 벗겨놓으면 더욱 동그래지고 손에 잡히는 촉감도 좋다. 졸참나무 도토리는 가늘고 길어서 아주 귀여운데, 특히 모자가 참 예뻐 소꿉놀이의 소도구였다.

고향에선 가을에 상수리를 주워모았다가 도토리묵을 해먹곤 했다. 도토리묵만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있을까? 도토리를 맷돌에 갈아 물에 담가 휘저어놓으면 아래쪽에 녹말가루가 하얗게 쌓인다. 그것을 물에 오래 우려내야 떫은 맛이 사라진다. 이 녹말가루를 물에 풀어 끓였다가 식히면 묵이 된다. 껍질째 갈아 체에 거른 즙을 끓여 만드는 메밀묵에 비하면 손이 아주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요즘엔 시골에서도 도토리묵을 직접 해먹는 사람이 드물다. 대개는 중국산 도토리 전분을 사다가 만들어먹는다.

몇해 전 포천의 운악산에 갔다가 커다란 도토리가 수도 없이 나뒹구는 것을 보고 좀 주워갈까 하는 유혹을 강하게 느낀 적이 있다. 물론 마음을 고쳐먹었다. 생계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다람쥐의 먹이를 빼앗는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람쥐라고 해서 그 떫은 도토리를 가장 좋아할 리는 없다. 잣처럼 고소한 것은 청설모에게 다 빼앗기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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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