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공개 오디션 현장의 열기… 주연·조연 상관없이 기량 닦으며 비상을 꿈꾼다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아무리 준비를 해도 오디션 현장은 살풍경을 연출한다. 오디션장은 무대 세트 그대로다. 객석 가운데쯤에 두 사람의 심사위원이 앉아 있다. 경사가 있는 객석이다 보니 무대에 있는 참가자의 몸집이 아무리 크더라도 한없이 왜소해 보인다. ‘떨림의 미학’이 그런 것일까. 구경꾼이라면 반주 테이프가 돌아가도 노래를 시작하지 못하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참가자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기도 할 것이다. 살짝 웃음을 머금은 표정 너머엔 강렬한 심장의 떨림이 있게 마련이다. 오랜 오디션 참가 경험을 믿고 심사위원에게 농담을 건네는 참가자도 있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무대의 안과 밖에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는 뮤지컬 배우는 없다. 무명의 뮤지컬 배우가 스타로 탄생하는 아메리칸드림을 보여주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신데렐라가 된 ‘페기’는 코러스걸로 스타의 꿈을 다져나갔다. 그가 극중 주인공으로 나서는 데 필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뿐이었다.
노래 반주에 입이 안 떨어지니 … 그렇게 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서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노래와 춤으로 무대를 휘어잡고 연기력까지 갖춘 이들이 각자의 배역을 얻기 위해 오디션 현장을 누비고 다니게 마련이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소규모 창작 뮤지컬까지 수십편이 무대에 오르지만 갈수록 배역 쟁탈전은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 시대의 ‘페기 신화’에 도전하는 사람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20일 제10회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받은 창작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유다전이었다면, <마리아 마리아>는 막달라 마리아전으로 로마 군인들을 상대로 하는 창녀 마리아를 내세웠다. 신약성서 4복음서의 행간 속에서 일곱 귀신에 들려 비참한 삶을 살았던 막달라 마리아의 존재를 새롭게 이끌어낸 탄탄한 드라마와 출연자의 열연 등으로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이 작품은 10월31일까지 소극장 공연을 마친 뒤 대극장 공연물로 거듭나 오는 12월23일부터 한전아트센터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렇게 대극장 진입로에 들어선 <마리아 마리아>가 새로운 출연진을 맞이하기 위해 공개 오디션을 마련했다. “뮤지컬 열풍을 실감한다. 지난 봄에 공개 오디션을 할 때보다 참가자들이 두배나 많다. 이 작품은 ‘마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서 경력이 많은 참가자들이 적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다양한 무대 경력이 있는 참가자들이 많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갬블러> 등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던 최무열(조아뮤지컬컴퍼니 대표) 총감독은 공개 오디션장에서도 ‘뮤지컬 대상’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한결 여유가 있었다. 그는 연출가 성천모씨와 함께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공연장인 대학로 세우아트센터에서 참가자들을 심사했다. 지난 10월20일 열린 1차 오디션은 배역을 염두에 두고 참가자들의 기본적 자질을 판단하는 자리였다.
이날 오디션에 참가한 사람들은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에 등장하는 노래를 지정곡으로, 자신의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를 자유곡으로 불렀다. 그리고 뮤지컬 배우답게 춤을 선보여야 했다. 공연장 복도를 대기실로 삼은 참가자들은 각자의 모습대로 오디션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은 긴장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만 40줄에 접어들어 무대에 설 기회가 차츰 좁아진다는 한 참가자만이 연방 동작을 취하며 몸을 풀었다. “그래도 서른다섯을 기점으로 퇴조기에 있다. 노래 실력도 예전 같지 않고 격렬한 동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오디션 탈락이 예삿일이 됐다. 그래도 무대가 좋아 계속 오디션장을 찾는다.”
오디션은 준비된 ‘선수’부터 시작했다. 처음 무대에 오른 참가자는 무대 경험이 많지 않아 보였다. 지정곡을 부를 때부터 잠긴 목은 끝내 풀리지 않았다. 객석의 심사위원이 “됐습니다”라며 반주 테이프를 멈춘 게 그에겐 반가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용복 차림으로 연주곡에 맞춰 멋진 춤 솜씨를 선보였지만 심사위원의 마음을 돌려놓지는 못했다. 그는 심사위원이 관심을 표현하는 질문을 받지 못한 채 무대 밖으로 나와야 했다. 뮤지컬 배우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영화 <올 댓 재즈>에서 보았던 오디션 현장의 탄성과 환호는 문틈으로도 새어들어오지 않았다. 일단은 오디션 참가에 의의를 둘 수도 있었기 때문이리라.
뮤지컬 오디션 현장은 영화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대부분의 뮤지컬에서 타이틀롤은 프라이빗 오디션을 통해 발탁하더라도 조연에서 단역까지는 공개 오디션으로 뽑는 게 일반적이다. 이날 오디션에 참가한 사람들의 경우 3, 4년부터 많게는 십수년씩 뮤지컬 언저리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평가받은 사람들이었다. 그 가운데는 지난 1995년 초연된 이래 10년간 국내외에서 공연하며 대표적인 한국의 문화상품으로 평가받은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비중 있는 배역을 맡았던 배우도 있었다. 그는 오디션 참가 이유에 대해 “<마리아 마리아>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는데 배우로서 관객에게 감동을 전하고 싶었다. 고정된 이미지를 벗어나 자기 계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대 경력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디션을 ‘스타 탄생’ 창구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처럼 공개 오디션에서 주인공을 뽑는 경우는 드물다.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경우 대극장 공연에서 타이틀롤을 맡을 배우가 정해진 상태였다. 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강효성씨와 브로드웨이에서 <미스 사이공> <알라딘> 등의 무대에 오른 김소정씨가 더블 캐스팅된 것이다. 오디션 참가 여배우들은 대타로 무대에 설 수 있는 ‘얼터’와 무대에 오를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언더스터디’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단역에 가까운 '마리아 엄마'나 코러스로 무대에 서는 ‘앙상블’에 만족해야 한다.
뮤지컬 붐 이끈 참가자들의 열정
그럼에도 노래와 춤을 익히려고 개인레슨까지 받은 오디션 참가자들이 적지 않았다. 설령 무대에 오르는 행운을 거머쥐지 못하더라도 오디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량을 갈고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디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크게 실망하지도 않는다. 자신과 맞는 배역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가 창작 뮤지컬의 백미라고 생각해 오디션에 참가했다는 한 여성 배우는 뮤지컬 <그리스>에서 조연급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1년에 10여 차례 오디션에 참가하면 서너 작품을 하게 되는데 올해는 두 작품을 공연했다. 원하는 배역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계속 뮤지컬 배우로 활동할 것이기에 여유를 갖고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들은 오디션 현장에서 10여분 동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 자기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력을 뽐낼 기회를 얻기도 하고, 좌절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꿈을 잃지 않고 열정을 키워낸 배우들이 올해의 ‘뮤지컬 붐’을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이날 오디션 참가 배우들을 심사한 연출가 성천모씨는 참가자들의 열정이 공연을 이끄는 힘이라고 말한다. “뮤지컬 무대는 준비된 사람이 오르게 마련이다. 준비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오디션 현장을 빛나게 한다. 오늘 오디션에 참가한 사람들은 어떤 무대에서든 자신의 준비 정도에 걸맞은 배역을 만나게 될 것이다.”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공개 오디션에서 참가자들이 자유안무를 하고 있다. (사진 / 김진수 기자)
노래 반주에 입이 안 떨어지니 … 그렇게 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서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노래와 춤으로 무대를 휘어잡고 연기력까지 갖춘 이들이 각자의 배역을 얻기 위해 오디션 현장을 누비고 다니게 마련이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소규모 창작 뮤지컬까지 수십편이 무대에 오르지만 갈수록 배역 쟁탈전은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 시대의 ‘페기 신화’에 도전하는 사람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20일 제10회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받은 창작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유다전이었다면, <마리아 마리아>는 막달라 마리아전으로 로마 군인들을 상대로 하는 창녀 마리아를 내세웠다. 신약성서 4복음서의 행간 속에서 일곱 귀신에 들려 비참한 삶을 살았던 막달라 마리아의 존재를 새롭게 이끌어낸 탄탄한 드라마와 출연자의 열연 등으로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이 작품은 10월31일까지 소극장 공연을 마친 뒤 대극장 공연물로 거듭나 오는 12월23일부터 한전아트센터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렇게 대극장 진입로에 들어선 <마리아 마리아>가 새로운 출연진을 맞이하기 위해 공개 오디션을 마련했다. “뮤지컬 열풍을 실감한다. 지난 봄에 공개 오디션을 할 때보다 참가자들이 두배나 많다. 이 작품은 ‘마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서 경력이 많은 참가자들이 적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다양한 무대 경력이 있는 참가자들이 많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갬블러> 등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던 최무열(조아뮤지컬컴퍼니 대표) 총감독은 공개 오디션장에서도 ‘뮤지컬 대상’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한결 여유가 있었다. 그는 연출가 성천모씨와 함께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공연장인 대학로 세우아트센터에서 참가자들을 심사했다. 지난 10월20일 열린 1차 오디션은 배역을 염두에 두고 참가자들의 기본적 자질을 판단하는 자리였다.

(사진 / 김진수 기자)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는 4복음서 행간에서 마리아를 재발견한 작품으로 뮤지컬 대상을 휩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