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외로운 겨울을 앞둔 이들이 ‘침묵의 언어’로 구원의 메시지를 뿌리니…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패션지 11월호를 뒤져보니 유난히 향수 기사가 많다. 최대 이슈는 <물랑 루즈>의 감독 바즈 루어만이 니콜 키드먼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2분짜리 멜로영화로 만들었다는 샤넬 ‘넘버5’의 광고 스토리이고, 이에 질세라 샤를리즈 테론을 새로운 뮤즈로 기용한 디올의 자도르 향수의 유혹적인 지면 광고도 눈에 띈다. 한편 귀네스 팰트로나 줄리아 로버츠처럼 크리드(고가의 개인 맞춤 향수로 유명한 브랜드)가 제조해준 자신만의 시스너처 향수를 가지라며, 국내 조향사에게 의뢰하거나 혹은 자기 스스로 향을 섞어서 ‘나만의 향수’를 갖는 방법을 알려주는 기사도 있다.
한 뷰티 기자에게 물어보니 11월은 유명 향수 브랜드들이 전쟁을 치르는 달이라고 한다. “왜냐면 향수가 가장 많이 팔리는 철이니까. 퍼퓸 같은 경우 여름에는 향이 변질되기 때문에 잘 안 쓰거든. 하지만 겨울엔 자제하지 않아도 되지. 마음껏 진한 향수를 뿌려도 좋은 때지. 게다가 크리스마스가 머지않았잖아. 향수 브랜드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남자들이 여자한테 향수를 선물하는 날을 의미하거든.”
한편 나는 겨울에 향수가 많이 팔리는 이유는, 사람들 마음속에 춥고 어둡고 혼자 견디기 어려운 시간에 대한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냄새’라는 침묵의 언어를 동원하여 누군가에게 “날 좀 안아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다. 마치 발정난 암캐들이 냄새로 가로수 아래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겨두는 것처럼 말이다. ‘772-25에 사는 발바리, 젊은 암컷, 영양 상태 좋음, 애인을 찾고 있음.’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향이라는 노루의 음낭에서 추출한 분비물이나 각종 꽃향기로 만드는 향수의 핵심 성분 자체가 그렇다. 사향은 그 냄새를 맡는 여성들에게 호르몬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꽃향기가 인간을 흥분시키는 것은 꽃이 왕성한 생식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감각의 박물학>이라는 책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꽃의 향기는 온 세계를 향해 ‘나는 생식 능력이 있고, 준비되어 있으며, 가져볼 만하고, 나의 생식 기관은 축축하게 젖어 있다’고 선언한다. 꽃의 냄새는 임신 가능성, 활기, 생명력, 가능성, 젊음의 열정적인 개화를 연상시킨다.” 한편 애버리 길버트라는 생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준비되어 있다는 신호고, 자신감의 자각이다. 이런 표현은 은근히 전달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람들이 향수를 뿌리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 때문일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섹스어필하기 위해서 향수를 사지는 않는다. 90년 후반을 대표하는 향수라고 할 수 있는 에스티로더의 플레저는 오히려 ‘누군가를 유혹할 생각은 없고 그저 기분이 좋아서 뿌린다’는 식의 광고로 어필했으니까. CK One이나 불가리 오 퍼퓸처럼 가볍고 편안한 남녀공용 향수가 한창 유행한 것도 그와 비슷한 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다시 샤넬의 넘버5나 쁘와종, 겔랑의 셜리마 같은 클래식 향수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군중 속에서도 자기만의 강하고 개성적인 향으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고 고전적인 관능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떤 특정 향수보다는 어떤 한 남자의 몸냄새를 더 좋아한다. 특히 그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있으면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행복하다. 역시 이런 난 변태일까? 그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그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다가 체취 묻은 손을 여기저기 흔든다는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