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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식물 장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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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10-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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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정남구 기자/ 한겨레 경제부 jeje@hani.co.kr

풀화살 (사진 / 한겨레 정남구 기자)

아이들에게는 식물보다는 동물이 훨씬 더 관심을 끈다. 아들녀석은 주말농장에 가면 밭작물보다는 그 사이에 숨어 있는 청개구리나 잠자리 따위의 곤충을 잡는 데 더 몰두하곤 한다. 오래 만지고 있으면 청개구리가 피부에 화상을 입는다거나, 잠자리를 오래 붙잡고 있으면 날개를 못 쓰게 된다고 경고를 해도 ‘조심하겠다’고 떼를 쓰는데야 말릴 재간이 없다. 하기야 내가 어릴 적엔 개구리나 메뚜기를 잡아먹기도 했으니,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기엔 조금 낯간지럽기도 하다.

아이들이 식물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아이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는 들판과 숲을 놀이터 삼아 지낸 내 어린 시절 경험이 제법 큰 도움이 된다. 소에게 풀을 먹이는 것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던 내게 식물을 장난감 삼아 노는 것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밀짚으로 여칫집을 만들 정도가 되려면 제법 기교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아주 간단한 조작만으로 식물은 얼마든지 아이들의 장난감이 된다.


갈잎 쪽배 (사진 / 한겨레 정남구 기자)

풀피리나 보리피리를 불고, 토끼풀 꽃으로 시계나 목걸이를 만드는 것은 쉽다. 질경이 꽃대를 맞대어 누구 것이 질긴지 겨뤄보는 것도 간단하지만 재미있다. 좀더 나아가면 억새잎으로는 풀화살(사진1)을 날릴 수 있고, 갈잎으론 배(사진2)를 접을 수 있다. 청미래덩굴 이파리를 얇은 나뭇가지로 이어붙이면 모자가 된다. 여자아이들은 아까시나무 잎자루를 이용해 머리카락에 파마 흉내를 내기도 했다. 강아지풀이나 오뎅처럼 생긴 부들의 꽃은 그 자체로 귀여운 장난감이다. 수수깡으로 안경을 만들어 쓰고 어른 흉내를 내던 시절의 이야기다.

누리장나무열매 (사진 / 한겨레 정남구 기자)

아이와 함께 밭에 갔다가 오랜만에 밭 옆에 있는 개울둑을 따라 걸어보았다. 거기엔 또 다른 장난감이 많이 있었다. 먼저 눈에 띈 것은 도꼬마리 열매다. 꼭 온몸에 털이 난 벌레처럼 생긴 도꼬마리 열매는 가시 끝이 갈퀴처럼 생겨서 옷에 잘 달라붙는다. 아직은 파란 도꼬마리 열매를 따서 아이의 등에 붙여주었더니, 아이는 신기한지 그것을 떼어 내 옷에 붙였다. 곧 우리는 도꼬마리 열매 던지기를 시작했다. 던지고 놀 수는 없지만, 쇠무릎의 씨앗도 옷자락에 잘 달라붙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장난감이다.

회양목 열매 (사진 / 한겨레 정남구 기자)

나는 이 세상 아이들이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찻잔처럼 생긴 도토리 모자를, 심장 모양으로 생긴 맨드라미 작은 씨앗을, 꽃받침과 어우러져 마치 한송이 꽃 같은 누리장나무 열매(사진3)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 회양목의 열매(사진4)는 익어 갈라져 마치 세 마리 부엉이가 꼬리를 잇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녀석은 그것을 따다가 자신만의 보물상자에 정성스레 담아놓았다. 어린 시절을 ‘천국에서 보낸 한철’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도 ‘나이 든 소년’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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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