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정남구 기자/ 한겨레 경제부 jeje@hani.co.kr
아이들에게는 식물보다는 동물이 훨씬 더 관심을 끈다. 아들녀석은 주말농장에 가면 밭작물보다는 그 사이에 숨어 있는 청개구리나 잠자리 따위의 곤충을 잡는 데 더 몰두하곤 한다. 오래 만지고 있으면 청개구리가 피부에 화상을 입는다거나, 잠자리를 오래 붙잡고 있으면 날개를 못 쓰게 된다고 경고를 해도 ‘조심하겠다’고 떼를 쓰는데야 말릴 재간이 없다. 하기야 내가 어릴 적엔 개구리나 메뚜기를 잡아먹기도 했으니,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기엔 조금 낯간지럽기도 하다.
아이들이 식물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아이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는 들판과 숲을 놀이터 삼아 지낸 내 어린 시절 경험이 제법 큰 도움이 된다. 소에게 풀을 먹이는 것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던 내게 식물을 장난감 삼아 노는 것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밀짚으로 여칫집을 만들 정도가 되려면 제법 기교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아주 간단한 조작만으로 식물은 얼마든지 아이들의 장난감이 된다.
풀피리나 보리피리를 불고, 토끼풀 꽃으로 시계나 목걸이를 만드는 것은 쉽다. 질경이 꽃대를 맞대어 누구 것이 질긴지 겨뤄보는 것도 간단하지만 재미있다. 좀더 나아가면 억새잎으로는 풀화살(사진1)을 날릴 수 있고, 갈잎으론 배(사진2)를 접을 수 있다. 청미래덩굴 이파리를 얇은 나뭇가지로 이어붙이면 모자가 된다. 여자아이들은 아까시나무 잎자루를 이용해 머리카락에 파마 흉내를 내기도 했다. 강아지풀이나 오뎅처럼 생긴 부들의 꽃은 그 자체로 귀여운 장난감이다. 수수깡으로 안경을 만들어 쓰고 어른 흉내를 내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이와 함께 밭에 갔다가 오랜만에 밭 옆에 있는 개울둑을 따라 걸어보았다. 거기엔 또 다른 장난감이 많이 있었다. 먼저 눈에 띈 것은 도꼬마리 열매다. 꼭 온몸에 털이 난 벌레처럼 생긴 도꼬마리 열매는 가시 끝이 갈퀴처럼 생겨서 옷에 잘 달라붙는다. 아직은 파란 도꼬마리 열매를 따서 아이의 등에 붙여주었더니, 아이는 신기한지 그것을 떼어 내 옷에 붙였다. 곧 우리는 도꼬마리 열매 던지기를 시작했다. 던지고 놀 수는 없지만, 쇠무릎의 씨앗도 옷자락에 잘 달라붙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장난감이다.
나는 이 세상 아이들이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찻잔처럼 생긴 도토리 모자를, 심장 모양으로 생긴 맨드라미 작은 씨앗을, 꽃받침과 어우러져 마치 한송이 꽃 같은 누리장나무 열매(사진3)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 회양목의 열매(사진4)는 익어 갈라져 마치 세 마리 부엉이가 꼬리를 잇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녀석은 그것을 따다가 자신만의 보물상자에 정성스레 담아놓았다. 어린 시절을 ‘천국에서 보낸 한철’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도 ‘나이 든 소년’으로 남을 것이다.

풀화살 (사진 / 한겨레 정남구 기자)

갈잎 쪽배 (사진 / 한겨레 정남구 기자)

누리장나무열매 (사진 / 한겨레 정남구 기자)

회양목 열매 (사진 / 한겨레 정남구 기자)









